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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훈 Nov 17. 2015

챔피언 로우지의 패배,  아프지만은 않은 이유


론다 로우지가 패배했다. 그것도 너무나 허무하게 챔피언 벨트를 내줬다. 이번 로우지의 패배는 올해 스포츠계에 최고의 업셋에 해당할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충격적이다.


UFC193 메인이벤트 여자 밴텀급 챔피언전은 여자 격투기의 왕좌로 군림하고 있는 론다 로우지의 이름값에 비해 너무 일방적인 경기였다. 상대인 홀리 홈은 2라운드 시작 59초 만에 하이킥으로 TKO승을 얻어냈다. 론다의 안면이 붉게 물든 것도 놀라웠지만 실신한 후 일어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기에 더욱 놀라웠다.


로우지는 1라운드 홈의 빠른 발을 잡겠다는 전략으로 압박을 시도했다. 그러나 홈은 옥타곤을 휘저으며 로우지의 사정권 밖으로 이리저리 빠져 나가기 일쑤였다. 로우지의 펀치가 홈의 안면에 꽂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강력한 홈의 카운터 역시 로우지의 얼굴에 적중했다. 스탠드는 완벽한 홈의 승리였다. 로우지의 발은 무거워졌고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서브미션의 최강자, 암바의 여제라 불리는 로우지가 테이크다운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로우지는 1라운드에서 두 번의 테이크다운을 시도했다. 첫 테이크다운은 암바로 이어지는 듯 했으나 홈이 몸을 재빠르게 돌리며 빠져나와 다시 타격전이 됐다. 이후 시도한 로우지의 두 번째 테이크다운은 오히려 홈에게 상위 포지션을 내주며 파운딩을 당하는 꼴이 됐다. 그러나 홈은 바닥에서 곧장 일어나 다시 스탠드를 요구했다.


1라운드를 끝나자 로우지가 조급한 것이 느껴졌다. 1라운드를 뺏겼을 뿐 아니라 홈의 복싱 실력은 로우지가 그동안 상대한 선수보다 월등했다는 것을 그녀도 알아챈 듯 보였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부분은 홈을 따라다니느라 로우지의 체력은 이미 바닥났다는 점. 로우지가 옥타곤 위에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다는 걸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2라운드 시작도 1라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로우지는 쫓아가기 바빴고 홈의 카운터를 모두 허용해 코와 입에서 피가 흘렀다. 이후 다리가 풀린 로우지는 홈의 하이킥에 그대로 쓰러졌고 경기가 열린 호주뿐만 아니라 세계를 경악케 했다.


‘무적’ 로우지의 장기집권 무너지다


홀리 홈은 누구인가? 34살인 홈은 복싱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낸 여성 파이터다. 2002년부터 활동해온 베테랑 복서로 복싱 38전, 킥복싱 3전, 종합격투기 9전을 치룬 경력이 있다. 복싱 3체급 타이틀 석권, 20여 차례 방어전을 치를 정도로 그의 복싱 실력은 수준급이다.


그러나 홈의 승리를 낙관하는 전문가와 팬은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론다의 상대들은 모두 최고의 테크닉과 타격 실력을 겸비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었다. MMA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부터 무패인 선수, 로우지를 만나기 전까지 상승세를 이어가던 선수 등 다양했다. 그런 선수를 상대로 로우지는 챔피언전 6경기 연속 피니쉬라는 UFC 대기록을 세우는 등 승승장구 했다.


타이틀 방어전에서 로우지의 위력은 가히 세계 최강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을 만큼 대단했다. 레슬링이 주력인 상대에게는 레슬링으로, 타격으로 로우지를 쓰러뜨리겠다는 상대에게는 타격으로 정면승부를 펼쳤다. 결과는 언제나, ‘무적’ 로우지의 승리로 끝났다. 어렸을 때부터 유도를 배운 로우지는 경기를 치를수록 성장했고, 완벽한 MMA 선수로 거듭났다. 이전 챔피언전인 UFC190은 브라질에서 열렸다. 브라질 출신의 베스 코레이아는 홈에서 론다를 타격으로 이기겠다고 도발했다. 경기 시작 후 오직 타격으로 난타전을 벌이던 두 선수 중 먼저 꼬꾸라진 선수는 베스 코레이아였다. 7차 방어전 이전까지 당분간 챔피언을 꺾을 수 있는 선수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높았다. 로우지의 챔피언 장기집권은 당연한 듯 받아들여졌다.  


패배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낯설었던 경기


론다 로우지이기에 팬들과 전문가는 앞의 경기들과 비슷한 양상을 예상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경기 서머리를 살펴보면 총 타격횟수 홈 38 로우지 21, 홈 38(100%) 로우지 17, 테이크다운 홈 1 로우지 0로 홈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이번 타이틀전에서 로우지의 KO장면을 빼고 가장 놀라운 두 장면에 대해 말할까 한다.

로우지는 왜 상대를 넘어뜨리지 못했을까? 로우지의 서브미션 승률은 75%에 달한다. 역대 최고의 상대로 꼽히던 캣 진가노를 1라운드 14초 만에 잠재울 정도로 그녀의 암바는 알고도 당한다는 고급 기술이다. 어떤 상대, 어떤 상황, 어떤 자리에서도 로우지의 암바는 위력적이었다. 이번 경기에도 로우지는 그라운드에 누우면서 바로 암바를 시도했다. 그러나 로우지가 그라운드에서 홈을 컨트롤한 시간은 거의 없었다. 긴 다리와 긴 팔을 가지고 있는 홈은 유유히 론다의 빗장을 풀고 나와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완벽한 수비는 홈이 얼마나 많은 연습량을 소화했는지 짐작케 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로우지가 홈의 카운터를 잇달아 허용한 뒤에 나왔다. 경기를 뒤집고자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던 로우지가 눈앞에서 홈을 놓친 것이다. 항상 상대와 정면에서 맞붙고 도망가던 상대를 스피드와 압박으로 잡아 쓰러뜨렸던 로우지에게 상대를 놓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치 만화처럼 홈은 빠른 발과 상체 무브를 통해 로우지의 눈앞에서 사라졌고, 홈을 찾아 고개를 돌리는 로우지의 안쓰러운 장면이 흘러나왔다.


로우지의 스타일상 격투 인생 시작부터 지금까지 통틀어 상대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날 로우지는 패배(UFC)를 비롯한 모든 것을  처음 경험했다.  


1패는 완벽한 로우지가 되기 위한 과정


이번 경기를 두고 여러 패인요소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그 중 로우지의 훈련 소화량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로우지는 언제나 그렇듯이 감당할 수 없는 이상의 훈련을 소화했고 별다른 부상도 없었다.


로우지가 영화, 방송 등에 모습을 보이느라 훈련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챔피언은 경기 승리뿐만 아니라 흥행에도 막중한 책임을 진다. 팬들과의 소통은 기본이며 방송에 나와 다음 경기를 홍보해야 한다. UFC 주최 측은 상대와의 언쟁을 통한 기사 쏟아내기는 물론 아름다운 외모의 로우지를 상품으로 포장해 티켓을 최대한 많이 팔아야 한다. 로우지는 가끔 그의 SNS를 통해 이런 고충을 얘기하기도 했다.


‘로우지의 흥행 파워’는 UFC190에서 이미 증명됐다. UFC는 현장 티켓값과 PPV(페이 퍼 뷰)로 돈을 번다. PPV란 별도의 요금을 내는 유료시청자 수입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경기를 보려면 반드시 PPV를 내야 한다. 지난 UFC190에서 PPV가 90만개 이상이 팔리면서 로우지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보여줬다.   


로우지의 패인은 코치진의 전략 실패가 가장 커보인다. 로우지는 이번 경기에서 펀치와 상체 클린치만으로 홈을 상대했다. 홈에 대한 접근방식이 완전 잘못됐다. 로우지의 강점인 태클은 찾아볼 수 없었고 아웃 파이터 홈을 쫓다가 체력은 금세 바닥이 났다.


물론 현존하는 최고의 챔피언 론다 로우지에게 타격이 강한 상대를 두고 레슬링 위주로 경기를 풀자는 제안은 자존심때문에 무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로우지는 항상 힘으로 상대를 꺾어왔다. 그리고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이번 경기도 로우지는 기존 경기 스타일을 유지했다. 다만 홈이 로우지의 약점을 모두 파악했고 좀 더 냉정했을 뿐이었다.


로우지의 1패가 그녀의 격투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길 바란다. 이번 1패는 전략적으로도 완벽한 로우지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될지도 모른다.


로우지에 대한 은퇴설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UFC가 이런 빅매치를, 최고의 흥행 카드 론다 로우지를 내버려 둘리 없다. 곧 리벤지는 성사될 것이라 본다. 그리고 로우지라면 반드시 리벤지를 선택할 것이다.

난 여성스포츠를 보면서 재미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조금 더 섬세하다는 점을 빼고는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아 흥미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로우지는 여성스포츠가 얼마나 박진감 넘치는지를 직접 증명한 인물이다. 그것도 타 스포츠에 비해 여성을 찾기 힘든 MMA에서 최고의 격투가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말이다.


로우지는 아직 젊다.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그의 강한 멘탈은 이번 패배를 좋은 경험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로우지의 타고난 운동신경과 강한 정신력, 거기에 코치진의 전략이 더해진다면 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멋진 여자 론다 로우지가 다시 한 번 경기에 집중한 그만의 심각한(?) 표정으로 옥타곤으로 돌아와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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