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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Dec 07. 2021

클라이밍과 처음 만난 날, 인연이 찾아왔다 2

신경 쓰이는 댓글이 생겼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첫 댓글을 주고받은 후 우리는 서로에게 운명과 같은 이끌림, 찌릿함 이런 감정을 느껴 급속도로 친해졌다,


라는 것은  물론 거짓이다. 이후로 이렇다 할 대화를 했다던가 만날 약속을 잡았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관계의 빠른 전개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 아닌가. ‘인친’이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선생님을 괜히 신경 쓴다거나 이성으로써 호감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살면서 접하지 못한 다른 유형의 사람을 만났네, 다양한 사람도 만날 수 있고 클라이밍 정말 최고다, 같은 생각뿐이었다. 선생님과 나는 일일체험 시간에 처음 만났고, 그때 나눈 대화라고는 ‘다음, 시느 님’, ‘왼발, 그다음 오른손 나가고, 오른발, 왼손’, ‘지금 문제 뭐 푸세요? 어려운 거 있으세요?’가 전부였으니까. 서로의 매력을 느끼고 말고 할 감정을 주고받은 게 없는데 선생님이 나를 팔로우했다고 “헉, 이 사람 나 좋아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한다면 자기애가 무척 넘치는 사람이 아닐까.


다만 댓글이 자꾸 달렸다. 그리고 그 댓글들은 잔잔한 일상을 보내려고 애쓰던 내게 파동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8월 말부터 한 달간 나는 친구와 지인을 만나며 혼자 있는 시간을 가급적 줄이려고 애썼다(내향성인지라 주에 약속을 한두 개 잡는 것도 벅찬 나로선 큰 결심이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약속으로 빼곡히 채웠고, 플룻 레슨을 시작했다.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외출을 한번 할 때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찍어댔고, 그 사진과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게시물에, 스토리에.


그때마다 선생님이 댓글을 달았다는 알림이 왔다. 가령 이런 식이다.


카페 간 사진을 올리면, “선유서가도 다녀가셨네요? 호두과자 최고예요!”

감성이 차오른 밤에 운동 생각하며 클라이밍 얘기를 썼더니, “클라이밍 얘기가 있어 반갑네요!”

백신 접종했다는 글에 “아자아자 화이자! 화이자는 2차가 아프더라고요.”

마카롱 사진을 올리면 “마카롱 비주얼이 살벌하네요!”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조금씩 신경 쓰였던 것 같다.


게시물을 올리는 족족 하트를 눌러주고 댓글 창을 통해 등장하던 그. 스토리는 또 어찌나 자주 올리던지. 나도 모르게 선생님에게 친밀감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더 나중에는 어떤 댓글을 달아주실까, 이번에도 나타나려나? 하는 은근한 기대감이 들었다. 그런 나를 발견하며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주변 친구들을 생각했다. 친화력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를 떠올리며 선생님과 대조해보았지만, 그 같은 사람은 또 없었다. 별거 아닌 사진에도 친근하게 말을 걸고 발이 넓고 누구나 두루두루 잘 지내는, ‘인싸’ 성격인 친구가 더더욱 잘 없었기에(친구란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지요) 신기하게 느껴졌다.


인싸란 다들 이런 걸까. 인간에게 벽을 세운 혹은 세우려고 하는 사람이어도 상대가 허용하는 범위를 잘 알고 그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일상에 서서히 스며드는 성격의 사람. 쓰면서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선생님은 그때 당시의 내게 그런 이미지의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SNS에 들이는 에너지를 피로하게 여기는 성격이 아닌 게 느껴져서 더욱 신기했다. 팔로우하는 사람이 천 명이 넘는데 내게 댓글을 달아주듯이 이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다 댓글을 달아주는 걸까.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그런 호기심이 생겼다. 평소였다면 ‘인싸란… 떼잉, 쯧. 피곤하네’라고 생각하며 관심 두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인스타 감성으로 멋들어지게 꾸미지 않고 막 올리는 게시물 하나하나에도 정성껏 댓글을 달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자영업자의 영업 방식일지언정 시간을 들여 타인의 사진과 게시물을 읽고 댓글을 다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댓글을 신경 쓰는 마음에서 친밀감으로, 또 호기심으로 그리고 사람에 대한 호감으로 점점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마음이 머리를 들기 시작한 순간, 선생님의 스토리를 보게 됐다. 주말 동안 읽을 책을 추천받는다는 질문이 있었다. 계정을 잠깐 구경했을 때 몇 권의 책 사진과 함께 서평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책 좋아하시는구나.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어떤 장르를 주로 읽는지 몰랐으므로 책 덕후(?)의 마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의 에세이를 추천했다. 내가 즐겁게 읽은 책을 선생님도 좋아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장르 구분 없이 다 좋아하시면! 제 최애 작가님 정세랑 작가님의 첫 여행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추천드려요. 여행 에세이지만 관광지에 초점 맞춘 내용보다는 그 여행지에서 함께한 사람과의 내용이 더 많아서 울림이 큰 책이에요!”


그날 밤 선생님에게 추천해줘서 고맙다는 메시지가 왔다. 이후로 간간이 대화를 나누는 나날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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