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타가 내 인생의 '대박'이 되다
콘서타 복용 시작 1~2일 차
브런치 도서 '젊은 ADHD의 슬픔'의 저자 정지음 작가는 ADHD 약물의 효과 중 하나가 사람이 굉장히 차분해진다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과잉 행동을 보이던 사람이 말수가 없고 조용해진다고 한다. 아토목세틴만을 복용했을 때는 그와 같은 효능을 겪지 않았었다. 그런데 콘서타를 복용하니 바로 그 효과가 나타났다.
콘서타 복용 1~2일 차에 내가 체감적으로 느낀 약의 효과는 놀라웠다.
1. 사람이 조용해지고 차분해진다. 머릿속이 뿌연 브레인 포그 현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브레인 포그 현상의 개선은 아토목세틴 복용 시에도 나름 효과를 보긴 했었다)
2. 글자가 잘 읽힌다. 그 전과 달리 글이 읽힌다. 약물 치료를 시작하기 전, 그리고 아토목세틴 복용 시에도 나의 '난독증'에는 개선이 없었다. 글자 하나하나 읽다 보면 앞에 있었던 내용을 바로 까먹어서 단어는 인식이 되지만 문장 단위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런데 콘서타는 내게 기적을 선사했다. 내 인생 22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읽고 머릿속에 저장되는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글을 읽고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바로 빠져나오는 증세의 치료에는 콘서타가 더 효과적이라고 하셨다. 그 말이 정확했다.
난 그때까지 살면서 기사나 책을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순간의 단어를 읽었을 때의 감정이나 인상만이 흐릿하게 남을 뿐이었다. 내 ADHD 증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심각하게 느낀 증세였다. 콘서타 복용 직후 길을 걷는 데 갑자기 길거리 상점 간판의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더니 내 머릿속으로 흡수되는 듯한 현상을 느꼈다.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는 아닌 듯싶어 그 길로 바로 내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노트북을 켜 네이버에 있는 '항생제 과다 복용 및 내성'에 대한 기사를 쭉 읽어 내려갔다.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왜 항생제를 과다 복용하면 내성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기억하고, 스스로 설명할 수 있었다. 기사 본문의 주요 내용과 통계 자료가 뇌 속에 분명히 각인되었다.
정말이지 당시의 난 눈물 날 정도로 기뻤다. 22년을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머저리로 살아왔었다. 극복을 위해 별 짓을 다 해보았다. 콘서타라는 약 하나로 해결될 문제였다니... 기쁘면서도 동시에 허무했다. 콘서타를 처방해 준 의사 선생님께 뽀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3. 글을 쓸 수가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 생각, 잡념, 아이디어를 정제된 문장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뇌에 심각한 과부하를 주었다. 5분 이상 글을 작성할 수 없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정말 두뇌 양측 관자놀이가 깨질 듯이 아팠다. 날카로운 칼날로 머리 양측을 쑤시고 가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데 콘서타 복용 직후에는 아예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 당시 일기처럼 블로그 글을 작성했었는데 블로그 글을 쓰는 과정이 그토록 재밌던 적이 처음이었다. 글 쓰는 과정에서 고통뿐만 아니라 창작의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눈물이 원체 없는 성격이라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눈물샘을 전기로 자극해서라도, 근육에 있는 수분이라도 쥐어짜서라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콘서타 복용 3일 차
1~2일 차는 토, 일 주말이었다. 집중을 크게 요하지 않는 취미 활동을 주로 했다. 그래서 콘서타 효과의 체감도가 비교적 덜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을 위해 학교에 나오는 평일 날 콘서타의 효과는 훨씬 더 와닿았다.
이날은 교양 '댄스 스포츠' 수업의 12주 차 수업이었다. 이 날 홀로 느낀 감격을 겹강하는 친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처음으로 수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인생 처음일 지도 몰랐다.
댄스 스포츠는 그간 나에게 곤욕이었다. 교수님께서 무언가 말을 하며 지도하셔도 이 동작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왜 배우는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자이브가 원체 어려워서가 아니냐고?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일반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이해할 사항들조차 머릿속에 흡수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이 날은 내가 수업 내용을 머릿속으로 나름 구조화하며 정리할 수 있었다. 특정 동작이 언제 사용되는 것인지 설명할 수 있었다. 그동안 쭉 배워온 내용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겠지만 감격스러웠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왔구나.. 나와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은 나와 다르게 수업을 들어왔구나..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교수님, 옆 학생 자이브 동작을 흘끔흘끔 보며 따라 하는 데 급급했던 나 자신이 수업 내용을 머릿속에 담아내다니..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약 하나로 해결될 문제였다는 것을 22년 동안 알지 못한 허탈감이 순간 몰려왔다.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단지 남들과 다른 뇌를 가졌다고 해서 내내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야 했구나..
이 게으른 내가 수업이 끝난 후 집에 오자마자 어지러운 집안을 정리했다. ADHD의 만성적인 악습관이 미룸이 사라졌다.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미리 머릿속으로 순서를 생각한 뒤 집안 청소를 할 수 있었다. 수건은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를, 빨래는 바구니에 먼저 집어넣은 다음 세탁기에 돌려야 한다는 점을, 일단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바로 이반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할 수 있었다. 기쁨과 허탈감이 집 안에서도 공존했다.
콘서타 복용 4일 차
이 날은 친한 과 동기들과 졸업앨범을 같이 촬영하였다. 약간 약속보다 늦어 허겁지겁 동아리방에서 양복으로 갈아입고 촬영장에 허겁지겁 내려왔다. 숨을 헐떡이며 흥분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차분히 양복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과거의 나라면 뇌 속은 빙빙 돌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옷은 무엇을 먼저 갈아입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넥타이는 어떻게 매는지 방법도 까먹고 새로 산 양복의 비닐도 바로 뜯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약을 먹은 나는 양복은 어느 순서로 입을지 먼저 생각하였다. 양복 가게 사장님께서 알려 주신 넥타이 매는 법을 곰곰이 떠올린 후 차분하게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갈아입는다.
친구와 함께 있는 촬영장에서는 콘서타의 영향으로 평소보다 차분해졌다. 내가 굳이 꺼내도 되지 않을 말을 입 속에 삼킬 수 있었다. 일종의 난독 증세가 사라져서 라운지 내부 팻말에 적힌 졸업 앨범 가격 설명을 읽고 기본요금 45,000원 이외 추가 비용은 고화질 사진 파일과, 사진 인화, 액자 구매를 위한 것임을 이해한다.
ADHD 약물 치료의 결과는 다양하다고 한다. 열 명 중 한 명은 효과가 없지만 그중 한 명은 '대박'이라고 한다. 보통은 나쁘지 않지만 만족스럽지 않거나 대단하진 않지만 나름 만족스럽다고 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대박'의 케이스였다.
콘서타 복용 5~6일 차
햇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는 법. 콘서타로 인한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이틀 연속 식욕과 성욕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틀 연속으로 하루 한 끼만 먹었다. 약 복용 12시간 이후로는 집중력 개선 효과가 현저히 떨어져 원래의 나로 돌아가 버린다. 약효가 사라진 이후로는 심장이 터질 듯 불안증이 심해진다. 5일 차에는 밤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펄렁이는 심장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 2시간 동안 도림천 산책길을 무작정 걸었다. 6일 차의 멘토링 알바에서는 피곤했는지 수업 후 칠판에 붙인 현수막을 떼오는 것을 깜빡했다. 덜렁거리는 ADHD 기질을 살짝 원망한다. 하지만 괜찮다. 약 효능 아래 있는 나는 최소한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ADHD의 만성적 고충, 잘못을 고치려고는 하지만 까먹어서 또 잘못하는 행위를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자신감으로 작은 실수를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복용 7일 차는 정신과 내원 예약일이었다. 콘서타가 내게 선물한 기적을 의사 선생님께 하루빨리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들떠 있었다.
※ 본 글은 저의 개인적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콘서타의 효능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며, 부작용도 각기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약물치료에 대한 모든 것은 본인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글은 참고만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