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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Feb 20. 2023

골방

Hotel (1)

 


 과연 내가 이곳에 쉽게 물들 수 있을까. 물론 눈먼 자들의 도시에 눈 뜬 사람이 찾아온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눈먼 척하며 살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일 테지.
















  ‘나는 책을 좋아한다.’라는

  이 짧고 강렬한 문장은 서로 다른 많은 이야기를 한 줄에 담고 있다. 뱉는 사람에 따라 뜻은 한층 달라진다. 나도 이 말을 가끔 한다. 나도 책을 좋아한다.

  고전 문학은 말 그대로 좋다. 가장 많이 읽는 이야기다. 하지만 스릴러나 SF 장르의 이야기는 내 시선을 그렇게 끌어당기지 못한다. 재미가 없다. 같은 이유로 영화나 뮤지컬의 원작이 되는 책은 아껴 읽거나 아예 쳐다보지 않거나 한다. 소설에서 대화와 독백의 비율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의 비평은 책을 고를 때만, 아주 조금만 신경 쓰려고 한다. 잔잔한 이야기는 때론 강렬한 소설보다 더 큰 충격의 파도를 가지고 있어서 좋다. 인문이나 교양서적은 재밌게 읽히지만 재미를 붙이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유난히 마음에 오래 남는 책은 영어 원서를 사서 공부할 양으로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시와 산문은 언제나 사모한다. 책은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주로 읽는다. 재미있을 땐 두세 시간 동안 읽기도 하지만 보통 한 시간이 되기 전에 책갈피를 꽂고 책을 덮어 서랍에 넣는다. 많을 땐 동시에 네 권을 읽기도 한다. 물론 중간에 읽기를 멈춰버린 책들도 많다. 사놓고 1년이 넘도록 펼치지 않은 먼지 쌓인 책도 많다. 그런데도 장바구니에 책을 추가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책을 좋아한다는 문장은 내게 이런 뜻이다.

  나는 이런 독서를 한다. 이라크에 와서도 이걸 잃기 싫은 마음에 책을 몇 권 챙겨 왔다. 딱 다섯 권. 다섯 권만 가져왔다. 이 책들은 이라크에서의 1년을 내내 즐겁게 만들어 줄 것들이다. 나한테만 귀한 것들이라 도둑맞을 걱정도 없는 것들, 내가 앉은자리를 작은 골방으로 만들어 줄 엄청난 것들이다. 그중에는 나를 환기시켜 줄 산문집이 한 권 들어있다. 길어 봤자 두세 쪽뿐인 잔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책을 펴면 최소한으로 읽으려고 한다. 다음 화가 기대되는 드라마와는 반대로 오히려 연속해서 읽으면 이야기를 제대로 못 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1년 동안 아주 천천히 읽으면서 책갈피의 위치로 내가 보낸 시간, 내게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책시계로 쓸 심산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주 가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펴려고 한다.















  산문 하나를 읽는 데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두 번, 세 번 같은 이야기를 다시 읽어도 시간은 거의 그대로 멈춰 있다. 잠시 이야기를 곱씹고 나면 책의 다음 장을 펴고 책갈피를 꽂는다. 책은 금세 덮인다. 보통은 이렇게 책시계를 관리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다음 이야기의 첫 장이 아니라 이미 읽은 이야기의 중간에 책갈피를 꽂고 책을 덮는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있을 때, 다음에 책을 펼칠 나를 위해, 그리고 그런 놀라운 이야기를 또다시 남겨준 작가에게 아주 소극적인 감사 인사를 이렇게 남긴다. 그렇게 이야기에 책갈피라는 도장을 찍어내고 나면 어느 날 하루를 보내는 동안 이야기 속의 다채로운 순간과 몇 가지 문장이 이따금씩 생각난다. 우연한 순간에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 입꼬리가 작게 올라간다. 나는 책을 이래서 좋아한다. 특히 산문집이라면 더욱 말이다.

  이것과 비슷하게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품었던 뜬구름 같은 생각들 중에도 갈피의 도장이 찍힌 것들이 있다. 떠올랐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 것들이자 꼭 언젠가 하나의 꼭지로, 혹은 문장들로, 단락들로 완성시키리라 다짐한 것들이다. 대부분은 핸드폰 메모장에 적히거나 녹음된 채로 클라우드에서 제 때를 기다리며 반짝이고 있다. 그런데 산문집의 그것들처럼 도장이 찍힌 이것들도 한 번씩 일상 속에서 튀어나온다. 막연했던 그것이 여느 하루에 문장이 되어 튀어나온다. 처음에는 아주 경이로운 경험인 듯 일기에 적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순간의 강하면서도 뚜렷한 개념을 잊기 전에 기록하기 위해 전심을 다한다. 무의식이 내게 보낸 편지는 읽는 순간 사라지고 없어져 버려서 그렇다.
















  이라크에 내려서 황토색 땅을 밟은 그날. 작업장에 처음 도착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그때도 하나의 문장이 마음속에서 만들어졌다. 책갈피를 이야기의 중간에 꽂을 만큼 나에게 중요한 다짐이 그때도 강하게 튀어나왔다.

  ‘나의 골방을 지켜야겠다.’

  바로 이 문장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 왔으니 눈이 먼 척을 해야겠다는 생각, 그렇지 않으면 나는 골방을 잃고 지내다 결국 마음에서 영영 잊어버리고 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나의 삶에서 이미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해 버린 꿈을 잃으면 나의 지난 시간뿐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마저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끼기 마련이다. 나한테는 골방이 그런 역할을 한다. 자신만의 골방을 이미 갖고 있고 또 즐기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그들의 배경이 되어 나의 시간을 온전히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골방은 아주 작은 방이라는 뜻이다. 기독교에서는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곳을 말할 때 골방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나도 골방을 비슷한 의미로 꽤 오래전부터 혼자 사용해 왔다. 작고 비좁지만 조용하고 평화롭기 때문에 사유와 몰입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 예술가들은 작업실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은 독서실이라는 이름으로, 당신께서는 서재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요즘은 카페라는 이름으로 골방을 사용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의 골방엔 조금 다른 특징이 있다. 내가 바라는 골방은 명확한 주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디에 있든 그것이 만들어지면 그저 신나게 골방을 이용한다. 때론 음악이, 때론 아름다운 날씨가, 때론 한 권의 책이, 그리고 때론 그저 맑은 정신이 내가 있는 곳을 골방으로 만들어준다. 물론 본래의 목적대로 조용하고 평화로워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인데, 골방은 조금 불편한 것이 좋다. 가령 혼자 쓰는 공간이라도 바로 옆에 푹신한 침대가 나를 유혹한다면 그건 골방이라기보단 침대방에 더 가깝다는 말이다. 누군들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떠올렸던 골방을 사수하자는 다짐은 이런 시간을 이라크에서도 반드시 보내고 싶다는 기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라크 생활은 어느 정도 골방이 보장된다고 볼 수 있었다. 내가 묵을 곳이 다행히 수도인 바그다드에 위치한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5성급 호텔이라면 적어도 방음이 잘 되고 깔끔하겠지, 어느 정도 침대와 공간이 분리된 책상을 쓸 수 있겠지 생각하면서 호텔에 도착하길 기다렸다. 이제는 퇴근 버스로 이름이 바뀌어버린 셔틀을 타고 삼십 분 정도를 갔다. 바그다드 외곽에 있던 우리는 점차 시내와 가까워졌다. 다리를 타고 넓은 강 위를 넘어가자 창문 너머로 서너 층높이의 오래된 건물들과 그 앞 거리를 메운 사람들이 들어섰다. 일행들과 잘하면 리버사이드뷰라고 불릴지도 모르는 전망 좋은 방에서 지낼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바그다드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큰 강이 굽어 흐른다. 우리나라의 한강처럼 티그리스 강이 바그다드에 흐르고 있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바로 뒤편에 티그리스강을 끼고 있었다. 보자마자 티그리스 강인가 보다! 하고 알아챈 건 아니다. 호텔 위치와 넓은 강의 이름을 알고자 핸드폰으로 지도를 켰더니 ’Tigris’라는 이름이 보였다. 어려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배웠을 때의 기억이 아주 오랜만에 꺼내어졌다. 갑자기 내가 세계의 어떤 고대의 장소에 왔다는 느낌이 든 것도 그때였다. 이름에, 혹은 한 단어에 담긴 기억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곧 호텔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가 라푼젤이 되어 머리를 길게 기르게 될 성은 ‘바빌론 로타나Babylon Rotana’ 호텔이었다. 외부로부터의 안전과 인력 통제, 사고 예방을 이유로 성 안에서만 지낼 수 있게 하는 대가로 회사에서 고급 호텔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라크 물가를 생각하면 상당히 비싼 숙박비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호텔 가장 바깥에는 2미터가 훨씬 넘어 보이는 아이보리색 외벽이 호텔을 감싸며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 성벽의 높이로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로비에서 방을 배정받았다. 이미 투숙객이 많은 상황이라 남아 있는 방 위주로 배정해 줬다. 높고 넓은 방은 받을 수 없었다. 나는 1층에 묵게 됐다. 함께 도착한 우리 일행 대부분이 1층인 걸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에 갇혀 있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잠시 뒤,  양손 가득한 짐이 드디어 제 집에 도착했다. 물론 피로를 가득 담아온 내 몸도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첫 날부터 벌써 이곳을 집이라고 불렀다. 내 방에서는 티그리스강이 보이지 않는 대신 호텔 전면부의 작은 건물들이 보였다.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은 아니어서 방에서 보이는 거리는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았다. 한층 평화롭게 느껴졌다. 성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이라서 그런 걸까. 나는 부지런히 짐을 풀고 골방이 되어줄 책상부터 정리했다. 부담스럽게 자리 잡고 있던 룸서비스 어매니티들을 치운 뒤 챙겨 온 책과 블루투스 스피커, 노트북 거치대와 노트북으로 빈자리를 채웠다. 다행히 주황빛 스탠드가 이미 자리를 맡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되었다.

  나의 작은 골방이 마침내 자리를 잡았다.












 짐 정리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 나는 달콤함을 느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개운함과 드디어 다리를 뻗고 누웠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함이 한가득 몰려왔다. 하지만 그런 노곤함 속에서도 여전히 불안을 느꼈다. 눈이 먼 척을 해야 한다, 골방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이 아직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군대에서 오래 지냈다 보니 눈앞의 상황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됐다. 폐쇄적인 곳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더 마음을 기대려고 한다. 특히 무료한 저녁시간과 주말이라면 더욱 기댈 곳을 찾는다.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서로에게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특히 술이라는 좋은 구실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골방은 자주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 섰다. 골방은 작고 좁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거니까. 눈이 멀지 않을 걸 들켰다간 하루도 골방을 못 누릴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내향적인 사람으로 지내야 하나. 누구와 얼마큼 가까워져야 할까. 넓고 얕은 관계를 우선해야하는 걸까. 얼마나 웃어야 할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이라크에서의 첫 밤에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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