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성모들

미술사 속 이색 성모 마리아들

by 크레센도


성모가 된 왕의 연인

Fouquet_Madonna.jpg 장 푸케, 믈룅 제단화(부분) 천사들에 둘러싸인 동정녀, 1452-8년 경, 패널에 유채, 93x85cm, 안트베르펜 왕립 미술관

천사들이 둘러싼 권좌에 아기 예수를 안고 앉아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미술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도상이다. 15 세기 프랑스 화가 장 푸케(Jean Fouquet, 1420-81)가 그린 <천사들에 둘러싸인 동정녀>에도 성모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한 눈에 보기에도 독특한 인상을 준다. 성모의 창백한 피부, 빨간 입술, 홍조를 띤 얼굴, 잘록한 허리, 풀어 헤친 옷과 드러난 풍만한 가슴. 성모 마리아는 정숙하고 성스러운 느낌 보다는, 화려하고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거기에 후광 대신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된 왕관을 쓰고 있다는 점, 흰색 어민 족제비 모피로 만들어진 망토와 푸른 드레스 그리고 정교한 금세공이 눈에 띄는 허리띠등은 지금봐도 너무나 화려하고 패셔너블 해 보인다. 그녀가 않아 있는 왕좌 역시 대리석과 온갖 금은보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천국의 여왕으로서, 성모 마리아의 아름답고 화려한 면모를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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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얀 반 에이크, 루카 마돈나, 1437년 경/(우)로베르 캉팽, 화로 앞의 성모, 1440년 경


가슴을 드러낸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물리는 성모 (Virgo Lactans)"의 도상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 도상은 중세 시대부터 꾸준히 그려졌고, 특히 초기 르네상스 시기인 15세기 북유럽화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난다. 대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의 입에 젖을 물리거나, 혹은 젖을 가까이 들이대는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기의 인간적인 친밀감을 강조하는 도상이다.

20250805_101219.jpg 빨강, 파랑 두 가지로만 그려진 천사들은 하얀 성모와 대조되어 마치 부조 장식처럼 보인다. 흰색, 빨강, 파랑은 왕가의 문장을 상징하는 색이다.
20250528_130615.jpg 아기 예수는 마리아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푸케의 작품에서 성모와 아기 예수 사이에 그러한 따뜻한 유대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는 권좌에 앉아 있다기 보다는 마치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기 예수를 안정적으로 무릎 위에 앉혀 놓았다는 느낌이 약하다. 성모도 젖을 물리려 하지 않고, 아기 예수 역시 젖을 먹기위에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성모자의 모습은 그림에 기이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아기 예수는 왼손의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키는데,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주문자인 슈발리에와 그의 수호성인인 성 스테파노이다.

20250520_113949.jpg 장 푸케, 믈룅 제단화, 1452-58년경 , 패널에 유채 95.9 x 85 cm(each), 안트베르펜 왕립 미술관

이 작품은 원래 두폭으로 제작된 제단화인데, 현재는 분리 되어 각각 다른 장소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이 원래 소장되어 있던 장소가 프랑스 믈룅에 있는 대성당이었기에, 흔히 믈룅 제단화(Melun Diptych) 불린다. 경첩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이 작품의 왼쪽 패널에는 두 남자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의 주문자이며, 프랑스 궁정의 행정관이었던 에티엔느 슈발리에(Étienne Chevalier, c.1410-1474)와 그의 수호성인인 성 스테파노이다. 스테파노 성인은 자신을 상징하는 지물인 돌을 책 위에 얹어 들고 있고, 다른 손으로는 슈발리에를 성모 쪽으로 이끌어 주고 있는 모습이다. 슈발리에는 이 제단화를 성당의 자신의 가족 예배실에 설치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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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장 푸케, 천사들에 둘러싸인 동정녀 (부분)/ (우) 작자미상, 장 푸케의 작품 모작, 아네스 소렐의 초상, 1526-1550년경, 드로잉

이 작품이 주목을 받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품 속 성모의 실제 모델이 작품이 그려지기 2년전에 사망한 프랑스 국왕 샤를 7세의 정부, 아네스 소렐(Agnès Sorel, 1422-1450)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소렐의 초상화들을 살펴보면, 믈룅 제단화 속의 성모 마리아와 상당히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소렐은 아주 창백한 피부에 세련되고 화려한 패션 감각이 돋보였던 미인으로,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녀는 샤를 7세로 부터 성을 하사받고, 공주 세 명을 낳았을 정도로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리고 28세에 넷째를 임신 했을 무렵, 갑자기 사망 하게 된다. 이질에 걸려 죽었다는 설도 있고, 소렐보다 한 살 어린 샤를 7세의 아들이 독살했다는 설도 있다. 아버지에게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소렐을 제거하기 독약을 사용했을 거라는 의심이었다.

이 최근에 와서 남아 있는 유해에 관해 과학적인 조사를 한 결과, 그녀의 사인은 수은 중독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것이 타살의 증거가 될 수는 없었다. 이 그림 속에서도 유난희 희고 창백한 피부는 그녀가 죽은 사람이라는 느낌과 동시에 살아생전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수은 성분은 미백 작용이 뛰어나서 중금속의 위험성을 모르던 과거에는 여성들의 화장품의 재료로 애용되었다. 어쩌면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해주었던 아름다움이 그녀의 사인이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Jean_Fouquet_006.jpg 성 스테파노가 기도하는 슈발리에를 성모자에게 이끌고 있다. 성 스테파노는 성인을 시기 질투한 유대인들의 돌팔매질로 순교하였다. 성경 위에 놓여진 돌은 그의 순교 방식을 암시한다

왕의 행정관이었던 슈발리에가 왜 왕의 죽은 연인의 얼굴을 닮은 성모의 그림을 자신의 가족 성당 예배당에 놓을 제단화로 주문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자신이 측근에서 모셨던 왕이 사랑한 여인을 성모의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왕에 대한 경의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유럽 역사에서 샤를 7세는 백년 전쟁을 종결시킨 왕으로 유명하다. 백년전쟁은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영국과 프랑스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지속했던 전쟁이다. 샤를 7세는 아라스 조약으로, 오랜 갈등 관계 때문에 영국편에 섰던 브르고뉴를 다시 프랑스 편으로 만들면서, 영원할 것 같던 백년전쟁을 마무리 지었다. 샤를 7세는 그 과정에서 '백년 전쟁'의 영웅인 잔다르크 덕분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위해, 맨 마지막에는 잔 다르크를 배신하고 그녀가 영국에서 사형 당하도록 방관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이 냉혹했던 군주 샤를7세의 사랑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왕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여인은 독특하고 불가해한 매력을 지닌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되살아나, 미술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목이 긴 성모

Parmigianino_-_Madonna_and_Child_with_Angels,_known_as_the_Madonna_with_the_Long_Neck.jpg 파르미지아니노, 목이 긴 성모, 1535-40, 패널에 유채, 216 × 132 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파르미지아니노(Parmigianino / 본명 Francesco Mazzola,1503 –1540)의 이 작품은 성모마리아의 목이 마치 순정만화 여주인공처럼 길어서, '목이 긴 성모'라고 불린다. 근데 자세히 보면 길게 늘여진 것이 성모의 목만은 아니다. 성모의 몸 자체도 너무 크고 길어서 화면이 위아래로 거의 꽉 찰 뿐만 아니라, 작은 머리, 가녀린 상체에 비해, 하체는 너무 비대하게 그려져 있다. 천사들의 다리도 지나치게 길다. 아기 예수의 팔다리도 너무 길고 몸이 큰데, 자는 건지 죽은 건지 이상하게 허우적대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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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음을 주장한 성 히에로니무스. 성모의 몸은 예수를 잉태한 항아리에 비유되기도 했고, 교회 자체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천사가 항아리를 들고 있는 이유이다.

한편 화면 오른 쪽 아래 작은 남자가 그려져 있다. 성 히에로니무스(St. Hieronimus·347년경~420년경)이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히브리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해서 기독교 보급에 큰 역할을 한 성인인데, 그가 등장하는 이유는 성모가 입고 있는 옷과 관련이 있다. 보통 성모는 아기 예수와 함께 등장할 때는 붉은색과 푸른색 겉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지금처럼 흰색과 푸른색 옷을 입는 경우는 성모가 원죄 없이 태어났다는 임마큘리스트(Immaculist)의 의미를 담고 있을 때이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마리아의 원죄 없이 태어났음을 주장한 최초의 성인이다.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성모 숭배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에 구교도 진영에서는 반대로 성모의 위상을 더 공고히 하려 했고, 성모도 예수와 마찬가지로 원죄없이 잉태되었다는 신성화 이론이 각광 받았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성 히에로니무스는 나머지 인물들에 비해 너무 크기가 작아서, 다른 요소들과의 거리감과 신체 크기의 비율이 어긋나고 있다. 또 뒤로 높은 기둥 하나가 보이는데, 하단 부는 여러 개의 기둥이 뒤로 겹쳐져 있는 것으로 그려져있는 반면, 기둥 윗부분에는 하나의 기둥만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이 미완성작임을 감안하고 보더라고, 모호하고 이상한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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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라파엘로,황금방울새가 있는 성모자, 1505–1506/ (우)파르미지아니노, 목이 긴 성모, 1535-40

<목이 긴 성모>보다 20-30년 정도 먼저 그려진 라파엘로의 작품의 작품과 비교 해보면, 파르미지아니노의 특징은 더욱 뚜렷하게 느껴진다. 라파엘로는 전성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답게, 그림에서 완벽한 균형과 조화가 느껴진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세례 요한의 인체 표현과 자세는 안정되고 균형잡혀 있으면서도 우아함이 느껴진다. 인물과 풍경의 조합도 자연스럽다. 반면 파르미지아니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신체 비례도, 자세도 과장되거나 왜곡 되어 있다. 인물들은 화면 왼쪽으로 몰려 있는 반면, 화면 오른쪽은 거리감이 모호한 공간이 펼쳐 지고 있다.

그림1.jpg 매너리스트들은 우아한 아름다움의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실성을 왜곡하거나 과장했다. 성모의 긴 목과 뼈가 없는 것 같은 손가락도 그러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보통 기존 관행에 갇혀 변화하는 현실의 요구와 새로움에 둔감해지고 권태로워진 상황을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표현을 쓴다. 미술사에는 이 '매너리즘'이라는 용어를 보통 1520-1600년 경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시기에 등장한 예술 양식를 일컫는데 쓴다. 이 시기 일군의 화가들이 새로운 내용의 추구 없이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선배화가들이 이루어 놓은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의 형식적인 요소들을 과장하고 왜곡 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했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말이다. 매너리즘 화가들은 앞선 거장들이 완성해낸 아름다움을 모방하고 취합하여 최고의 우아한 아름다움,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선배들의 방식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기교적으로 답습한 결과, 이들의 작품은 오히려 조화와 균형, 합리성, 명확성과는 반대되는 특징들, 즉 왜곡, 과장, 불균형, 부조화, 모호함, 기이함 같은 특징을 보여주게 되었다. 파르미니아니노의 작품 <목이 긴 성모>는 그러한 매너리즘 회화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 작품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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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르미지아니노, 목이 긴 성모, 1535-40/(중)비너스제너트릭스, 2세기경/(우)미켈란젤로, 줄리아노 묘지 조각, 1526-33, 산 로렌초 성당

보통 성모 마리아는 풍성한 옷을 입기 때문에, 성모의 몸이 부각되는 예가 좀처럼 없다. 하지만, 파르미지아니노의 성모는 마치 옷을 입채 물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의상이 몸에 착 달라어 있어 성모 몸의 실루엣이 드러나고 있다. 때문에 성모 마리아는 묘하게 관능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러한 표현은 고대 여신 조각에서 여신의 관능성을 부각 시키는 방식으로 흔히 볼 수 있다.

성모의 다리 모양도 상당히 특이한데, 드레스가 휘감은 두 다리는 마치 조각처럼 그 형태 지나치게 부각 되어 있고, 애매하게 벌어져 있다. 이는 미켈란젤로의 피렌체 메디치 분묘 중 줄리아노의 다리 형태를 참고한 것이다. 이처럼, 고대 조각이나 앞선 대가 작품의 조형적 특징을 응용해서, 조화롭게 융합시키 방식은 많은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매너리즘 화가인 파르미지아니노의 작품에서 이러한 조합은 더 이상 조화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질감과 부조화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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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파르미지아니노, 이테아: 젊은 여인 초상, 1535년/ (우) 파르미지아니노, 목이 긴 성모(부분), 1535-40년경

이 그림에서 가장 설명하기 힘든 요소는 바로 성모 뒤쪽에 서 있는 천사의 얼굴 이다. 화면 바깥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듯한 이 천사의 시선과 표정은 그림 속 다른 어떤 인물과도 상호작용 하지 않는다. 분명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이 그림의 분위기와 동떨어져,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에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이 천사의 얼굴 역시 화가가 앞서 그린 작품인 ‘아테아: 젊은 여인의 초상화’의 주인공, 화가의 연인으로도 알려져 있는 여인의 얼굴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기본적인 방향성은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조화롭게 융합시키는게 있었다. 하지만 파르미지아니노 같은 매너리스트들은 그러한 르네상스 미술 규범을 충실히 따르기 보다는 그것을 해체했다. 그 결과 그림들은 이 작품에서처럼 왜곡, 과장, 불균형, 부조화, 모호함, 기이함 같은 특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미술 변화의 배경에는 당시 사회적, 정치적 불안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1527년 5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칼5세가 에스파냐 군과 독일 군으로 구성된 다국적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침공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군대는 약 3개월간 약탈과 강간, 방화, 고문, 고대 유물 파괴 등 만행을 자행했고, 결과적으로 교황청의 권위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인문주의 붕괴를 가속화 되었다. 또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과 그로 인한 개신교의 확산을 막으려는 카톨릭의 반(反)종교개혁도 르네상스 예술의 쇠퇴와 위축을 가져왔다. 르네상스 미술의 많은 작품들이 더욱 엄격해진 카톨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자유롭고 창조적인 표현을 통제당했기 때문이다. 매너리즘 미술은 이 같이 기독교라는 절대적 가치가 무너지던 혼돈과 전환의 시기, 그 시대적 변화와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



빨간 머리 성모 마리아

그림1.jpg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수태고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1850 캔버스에 유채, 72 x 42 cm 테이트 브리튼


" … 새벽녘, 하얀 침대에서 그녀는 잠을 깼다. 무섭진 않았다. 전혀. 그러나 태양빛이 비출 때 ,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때가 되었음이 두려웠기 때문에...” – 로제티가 쓴 소네트 중에서



마치 정신병원 병실처럼 온통 하얀 색 벽으로 둘러싸인 방. 하얀 옷을 입은 창백한 소녀가 하얀 침대 위에 앉아 있다. 소녀의 빨간 머리카락과 빨간 입술은 그녀의 피부를 더욱 창백하게 보이게 만든다. 침대 앞, 흰 백합꽃이 수 놓아진 빨간 색 천이 걸려 있다. 한편 침대 옆에는 소녀와 마찬가지로 긴 하얀 의상을 걸친 인물이 서 있는데, 손에는 역시 흰 백합꽃을 들고 있다. 그리고 백합 위에 흰색의 비둘기 한마리가 보인다. 소녀는 지금 막 잠에서 깨서인지, 아니면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존재 때문에 놀란 것인지, 벽쪽으로 약간 움츠린 채, 알 수 없는 모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 두 인물은 성모 마리아와 대천사 가브리엘로, 이 그림은 일명 <수태고지>라 부르는 성서의 내용을 담은 종교화이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처녀인 성모 마리아의 방을 찾아, 그녀가 성령으로 아들을 임신하게 될 것임을 알려주는 성서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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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필립 드 상파뉴, 수태고지, 1644 / (우) 바르톨로오 무리요, 수태고지, 1660년대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전하러 온 대천사 가브리엘과 마주 하는 순간에 나눈 대화이다. <수태고지>는 성화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 중의 하나로, 프라 안젤리코와 보티첼리 같은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자주 다루었고, 이후에서 서양 미술사에도 같은 내용을 꾸준히 다루어져 왔다. 보통은 천사는 조심스럽게 성모에게 다가가고, 성모는 놀라면서도 다소곳하고 겸손한 분위기로 천사를 마주한다. 또 성모의 순결을 상징하는 흰 색 백합꽃, 성령의 흰색 비둘기, 사랑스런 천사들이 단골로 등장하며, 성스러운 후광과 빛으로, 종교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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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라파엘로 세례 요한과 성모자(부분), 1507 / (우) 로제티, 수태고지(부분), 1850

하지만,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가 그린 <수태고지>는 종교화 특유의 성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성모와 천사의 후광이 없었더라면, 침실에서 젊은 남녀가 만나고 있는 장면처럼 보일 뿐이다. 성모 마리아는 임신 소식을 듣고 놀라 얼어버린 평범하면서도 약간은 퇴폐적인 분위기의 십대 영국 소녀의 모습이고, 천사 가브리엘 역시 한 남성이 흰색 천을 맨몸에 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둘의 조우는 처음 마주한 현실의 남자와 여자의 만남 처럼 불편하고, 심지어 묘한 성적 긴장감까지 느껴진다. 성모마리아는 화가의 여동생 크리스티나를, 가브리엘 천사는 남동생 윌리엄을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성화임을 암시하는 몇 가지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상화되지 않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 표현은 예상치 못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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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없이 맨몸위에 흰 천만 걸친 대천사 가브리엘. 천사임을 표현하기 위한 머리의 후광 표현와 공중에 떠 있는 발의 표현 또한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이 작품은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도 이전의 전통적인 서양 회화와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일단 화면 전체의 색채가 지나치게 밝다. 전통적으로 서양 회화에서는 어두운 갈색 배경을 바탕으로 원근법과, 명암 표현을 통해, 공간감과 입체감을 만들어내는데, 이 그림은 화면 전체에 흰색이 너무 강해서, 공간이 평면적으로 보인다. 또 천사의 왼쪽 옆얼굴에 붙어 있는 것같은 후광 표현이나, 불꽃을 일으키며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천사의 발도 어색하고 미숙하게 보인다. 화면 오른 쪽의 흰벽과 바닥으로 연결되는 방의 공간감도 불명확하고, 침대의 기울기도 너무 가파르게 보인다. 인물들만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렸을 뿐, 전체적으로는 오래전 중세시대나 초기 르네상스 시대 그림처럼 템페라화나 프레스화처럼 비합리적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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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40-42, 프레스코, 176 x 148cm, 산 마르코 수도원, 피렌체/ (우)로제티, 수태고지, 1850

이는 화가 로제티가 주요 멤버로 활동했던 라파엘 전파의 회화적 특징과 관련이 있다. 라파엘 전파는 19세기 중반 영국 런던에서 일군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라파엘로 이전(pre) 시대 미술, 즉 중세 미술이나 초기 르네상스 미술의 ‘소박함’과 ‘순수함’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던 예술가 그룹이다.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이 지나치게 원근법, 명암법 등을 강조하며 기교적이고 도식적으로 변질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중세나 초기 르네상스 시기의 그림들처럼 그렸다. 오래전 프레스코화나 템페라화를 연상시키는, 명암 표현이 거의 없고 밝은 색채 선호했으며, 원근법도 입체감도 불확실하게 표현하곤 했다. 한편 늘 '자연에 충실한' 그림을 지향했기 때문에, 인물이나 풍경 등 대상들은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치밀하게 관찰하여 그렸다. 로제티의 <수태고지>는 이러한 라파엘전파 회화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로제티의 이 그림은 당시 미술계에 많은 논란을 불러 있으켰다. 대부분은 종교적으로 심각한 신성 모독이며, 화가의 재능을 낭비한 졸작이라는 부정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 작품은 복고주의와 사실주의가 결합되면서, 의외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19세기 대표적인 종교화로 평가 받고 있다.


매질하는 성모 마리아

max-ernst-the-virgin-spanking-the-christ-child-before-three-witnesses.-andre-breton-paul-eluard-and-the-painter-1926.-oil-on-canvas-196-x-130-cm.-museum-ludwig-cologne-germany.jpg 막스 에른스트, 세 명의 목격자: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그리고 화가 앞에서 아기 예수를 체벌하는 성모 마리아, 1929, 캔버스에 유채, 196x130cm, 루드비히 미술

건장한 체격의 아줌마가 아이를 자기 무릎에 엎드려 놓고 궁둥이를 때리고 있다. 아이의 엉덩이는 이미 엄마의 매운 손맛을 여러번 맛 본 듯, 빨갛게 변했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고 엄한 표정으로 막 엉덩이에 또 한번의 스윙을 날릴 참이다. 그런데 이 아줌마의 모습이 낯익다. 빨강색과 파란색 옷, 머리 위에 떠있는 가는 황금 후광. 성모 마리아다. 그렇다면 매맞고 있는 어린 아이는 자연스럽게 아기 예수일 수 밖에 없다. 아기 예수는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후광이 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다. 만약 예수가 어릴 적에 말썽꾸러기 금쪽이였다면, 아무리 성모 마리아라도 어쩔 수 없이 이처럼 손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이 그림에서 범접할 수 없는 신성과 권위를 지닌 전통적 성모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성모의 뒤 쪽에 있는 핑크색 벽에는 작은 창문 너머로 남자 세명의 모습이 보인다. 얼굴과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세 남자는 성모 마리아의 훈육 장면을 창문 너머로 목격하고 있다.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이끈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문학가인 폴 엘뤼아르, 그리고 화가, 즉 에른스트 자신이다.

초현실주의자란 20세기 초 이성과 논리로써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꿈, 무의식과 잠재의식, 본능과 감성 등을 탐구했던 예술운동이다. 그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이론가, 문학가, 미술가 세 사람이 모여, 아기예수가 성모에게 매를 맞았다는 것을 증언하는 듯,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구세주의 탄생을 증언한 성서 속의 동방박사 3인 처럼 말이다.

사본 -max-ernst-the-virgin-spanking-the-christ-child-before-three-witnesses.-andre-breton-paul-eluard-and-the-painter-1926.-oil-on-canvas-196-x-130-cm.-museum-ludwig-cologne-germany.jpg

성서의 이야기도 아니고, 성모자의 초상도 아닌, 어쩌면 신성 모독 논란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이런 작품을 화가가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화가가 활동했었던 초현실주의 미술의 성격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던 참혹한 현실 속에서 시작되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성, 논리, 합리, 과학 같은 것들의 발달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물이 세계 전쟁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반대로 비이성, 무의식, 잠재 의식, 본능, 환상의 세계가 새로운 시대의 예술적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기존의 미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자 했으며, 또 역설적이게도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들에게 도발적이면서도 황당하고 발칙한 상상력은,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예술의 개념을 새롭게 확장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다시 이 그림을 살펴보면, 호된 매질을 당하고 있는 아기 예수는 절대적인 권위, 즉 유럽의 오랜 미술 전통과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 등을 의미할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우아함과 고상함을 벗어 던진 채, 그런 아기 예수의 엉덩이를 때리며 모질게 훈육하고 있다. 이러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고정관념과 타성에 빠진 미술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비판 했던 초현실주의 미술 운동을 은유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그것이 브르통, 엘리아르, 에른스트 세 명의 초현실주의자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권위에 도전하고 새로움을 추구했던 초현실주의의 반항정신은 전통적인 회화에 씌워졌던 후광을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땅에 떨어진 채 굴러다니는 아기 예수의 후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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