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고 온 날

불 꺼진 주방에 서서

by 서지현
외식하고 돌아온 날, 불 꺼진 주방에 서서


불 꺼진 주방이 적막하다. 물기 마른 주방이 낯설다. 주부의 손이 미치지 못한 게 불과 몇 시간 남짓인데 주방에서 밥을 짓던 일이 마치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습관대로 주방 앞에 섰을 때 불현듯 밀려드는 허전함, 이 느낌은 도시 뭘까.



오빠네 가족으로부터 한 상 잘 차려진 한정식을 대접받고 돌아온 참이었다.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찬의 가짓수가 넘쳐났다. 평소 집에서 먹는 일을 생각하면 분명 과분하고 호화로운 정찬이다. 그런데 왜 난 빛 좋은 음식 앞에서 오늘 처리했어야 할 냉장고 속 식재료를 떠올리고 있었을까. 부족함 없는 식사에 단 하나 빠진 게 있었던 것이다. 생략된 요리의 과정, 어떤 식으로든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주부의 손 직접 닿지 못했다는 사실, 다만 그것이었다.



돌아와서는 식당에서 남긴 잔반과 식재료를 되뇌기 시작했다. 아까 쌈채소로 먹고 남긴 배춧잎이 아른거린다. 그거 몇 장이면 보글보글 단맛나는 우거지 된장국을 끓일 수 있었을 텐데. 절임 음식이라 몇 젓가락 집어먹지 못한 장아찌도 있었지 참. 장아찌라면 그 정도 적은 양으로도 누룽지에 곁들여 너끈히 한 끼 해결할 수 있을 걸. 아까 통째로 남긴 공기밥은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게 볶음밥용으로 딱 좋았을 걸. 이렇게 미련이 많을 바에야 다음번엔 찰아리 잔반을 야무지게 싸오는 게 낫겠다고 다짐을 두게 된다.




어쩌면 난 밥 짓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주방에 물기 마를 날이 없다며 투덜댔던 건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던가. 한 끼 한 끼 내 손으로 밥을 짓고 내 작은 살림을 매만지는 일에 이토록 속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정작 나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마음을 별안간 깨닫고서는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외식이나 배달음식, 밀키트나 반조리 식품은 간편하지만 요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당장은 만족스러울망정 그것이 전부다. 여윳돈이라고는 전혀 없는 통장의 잔고처럼 각박하게 느껴진다. 돌아서면 어김없이 또 다른 허기가 찾아올 것이다. 이어질 끼니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주부의 사명일찐대, 이처럼 한 치 앞에 대한 대책이 없어서야 될 일인가? 외식은 한 번씩 기분전환으로 삼을 일이다.



집밥을 짓는 일은 식사 뒤 뜨신 숭늉을 한 대접 들이키는 일과 같이 푸근한 일. 어느 정도의 품을 들여야 하지만 그 수고의 대가를 넘치도록 누리게 된다. 언뜻 성가신 일같으나 결국은 남는 장사다. 그래서일까? 한 번 주방 살림에 맛을 들이면 끝이 없는 집밥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대파 손질은 시작했다 하면 한 단이고, 토마토도 박스로 들일 때가 많다. 사먹는 콩나물은 당췌 질기고 맛이 없어서 아예 집에서 토분에 길러먹기 시작했다. 이참에 <집밥중독>이라는 큰 테마를 정하고 대파 한 단 이야기부터 풀어나가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