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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너에게 쌓이는 시간

she should know she's royalty.

by 시루

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그림책 편지

: 아이들이 홀로 설 때 주려고, 못다한 마음을 씁니다.



오늘 엄마가 들려준 노래 기억나?


“I guess I learned it from my parents.

That true love stars with friendship.

... she should know she's royalty.”

- Jax, <Like my father>


오디션 참가자가 부른 짧은 소절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 줄이야. 소녀의 따뜻한 음색에 너도 함께 빠져들었잖아. 몇 번을 반복해서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어.

그래 뭐든 '갑자기'란 드문 일이지. 어릴 적부터 차곡차곡 받아온 빛과 사랑이 피부 위로 두툼하게 내려앉아 쌓여야 이런 마음이 생기겠구나 싶더라. 사랑을 보여준 부모를 위해 만든 곡이지만, 거꾸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드러나 더 애틋하게 들렸어. 받은 사랑을 잘 쌓아왔음을 증명하듯, 목소리마저 참 단단하고 사랑스러웠거든.


그러니, 우리 같이 읽었던 그림책 『차곡차곡』이 떠오를 수밖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장면과 소리, 콕 집어 남기고 싶은 한 가지를 모아 차곡차곡 기억하고 싶게 만드는 그림책이었잖아. ‘엄마 안녕’ 하고 잠들면 하룻밤 사이 훌쩍 커버리는 너희처럼. 계절마다 싱그럽고 선명해서 펼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지.

이 그림책으로 우리 북클럽 활동도 했었는데, 그때 네가 적어둔 글을 다시 찾아봤단다. 열세 살의 너는 이렇게 썼더라고.


‘더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

어떤 일에 잘 대처하는 법,

나의 목표와 그것을 이루는 방법들을 차곡차곡 쌓고 싶다.

- 2022.04. 첫째의 차곡차곡.’


세상에, 너는 벌써 네 안의 세계를 쌓고 있었구나! 그때의 너를 다시 한번 잘 기억해 둘게. 이 시간을 함께 쌓고, 새로운 길 위에 너를 놓아주고, 언제든 뒤돌면 손 흔들어 줄 수 있도록.


여름 소나기가 놀래켜도 괜찮아. 잠깐 지붕이 되어줄 무언가를 찾는 눈이 생기거든. 젖은 머리를 털고 물 고인 웅덩이를 넘을 때 짜릿함에 웃음이 터질지도 몰라. 이 감각이 쌓이면 언젠가 '용기'라는 새 이름으로 네게 와 줄 거야.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조금씩 그 방향으로 가보는 건 어때? 발자국을 남기듯 천천히, 네 리듬을 믿고 걸으면 돼. 방향키를 잡고 있는 건 언제나 너니까. 차곡차곡 마음이 쌓여 서로 기댈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네 곁에 있길, 손을 맞잡고 겨울을 지날 수 있길 기도할게.

네가 차곡차곡 쌓아갈 걸음을 오래 지켜보고 싶다. 품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우리 딸에게, 엄마가 건네줄 수 있는 게 아직 많이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 또 한 번 훌쩍 성장한 너를 축하해!



"까슬까슬 마른 빨래에서는 가을 햇볕 냄새가 납니다.

속이 꽉 찬 채소들에게

여름 내내 애썼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바람과 풀벌레 소리로 가득한 들판.

다시 계절들이 쌓여 갑니다."

- 서선정, 『차곡차곡』(시공주니어, 2021)



# she should know she's royalty.

# 우리 딸이 자신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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