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메트 방문의 추억과 다음 방문의 다짐
2023년 5월 미국을 횡단했다. LA부터 한달간 달려 뉴욕에 도착했다. 일주일 가량 맨해튼 매디슨 스퀘어 가든 근처 숙소에서 묵었다. 셋째날 센트럴파크 한쪽 귀퉁이에 차지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다. 9년간 뉴욕에서 머물면서 미술을 공부한다는 전문가가 작품을 설명하며 무리를 이끌었다. 메트로폴리탄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우리 일행만 25명이었다. 떼로 움직이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에꼴 드 루브르 출신이 4시간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생애 최고의 미술관 투어였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오디오 설명을 반복해서 들으며 하루종일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메트로폴리탄 가이드 수준은 형편없었다. 설명이 수박 겉핥기 수준이었다. 실망만 거듭하다 혼자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일행에서 빠져나와 고흐 고갱 르누아르 모네 같은 인상파와 세잔 드가 작품 위주로 보고 다녔다. 고흐 작품은 인상파를 흉내 내던 초기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고갱 작품 몇 점은 훌륭했다. 타히티에서 그린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특유의 몽환적 터치가 인상적인 르누아르의 작품은 많았다. 최고의 작품은 세잔의 사과였다.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본 것을 한 화면에 담았는데 훗날 피카소 같은 입체파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작품이 걸려 있었다. 렘브란트가 도박 빚에 재산을 탕진한 뒤 그린 자화상을 비롯해 빛과 어둠, 음영을 기가 막히게 그린 작품들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더 보고 싶었지만 체력이 다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 지나 패트릭 브링리 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었다. 저자는 자기 우상이자 친구이자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친형이 죽자 슬픔과 비탄에 빠져 메트로폴리탄으로 숨어버린 뉴요커다. 10년간 메트로폴리탄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그가 날마다 감상한 작품들을 특유의 관조적 시각으로 풀어냈다. 이집트 수묵화부터 중국 북송 수묵화와 정원을 거쳐 르네상스 유화와 조각, 인상주의 유화, 근대 흑인 퀼트 작품까지. 그리 풍부한 작품을 스치고 지나갔다니 어리석었다. 충분히 공부하고 다시 가봐야겠다.
다시 간다면 빼먹지 않고 보고 올 작품들을 정했다. 중국 북송(1080년)의 거장 곽희의 수색평원도다. 세로 35cm 두루마리(비단) 수묵화다. 화가는 수시간 명상 뒤 팔을 휘젓듯 단번에 일필휘지로 그렸다. “풍경화는 일상 세계의 굴레와 족쇄로부터 두루미의 비행과 원숭이의 울음소리가 우리의 가까운 벗이 되는 곳으로 도피할 수 있게 한다.” 작품 못지 않게 멋진 말이다.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를 볼거다. 라파엘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건축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천재 예술가로 꼽힌다. 작품 <아테네 학당>이 유명하다. 르네상스 회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를 놓친게 아쉽다. 베첼리오는 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는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기법을 개척하여 서양 미술의 기본을 확립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티치아노는 베네치아 회화의 최고 대표 작가로, 그의 작품은 색채의 조화와 인물의 생동감 있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주요 작품 '풀밭 위의 콘서트'(1510), '천상과 세속의 사랑'(1514), '성모의 승천'(1516~1518),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 '카를 5세의 기마상'(1548) 등이 있다. 특히 풀밭 위의 콘서트를 봐야겠다.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판화가로,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다. 빛의 화가로 불리며,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는 '야경꾼'(The Night Watch), '자화상', '마리아의 죽음', '성 가족' 등. 작품 <야경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 직관했다. 빛과 그림자의 극적 배합을 통해 인물들을 생동감있게 표현했다.
개인적으로 인상파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흐와 고갱은 예외지만. 마네 모네 르느와르 같은 인상파 화가들은 장면들을 빛에 흐물거리거나 물컹거리는 느낌으로 표현하는 터라 대단한 작품이라 감흥이 오지 않는다. 미감이 다른 건지 모자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Meules)>는 꼼꼼히 봤다. 모네가 빛과 대기의 변화를 탐구하기 위해 같은 주제를 다양한 시간대와 계절에 걸쳐 반복적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건초더미> 시리즈 총 25점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시카고 미술관 등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건초더미> 중 한 작품은 2019년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1억1070만 달러(한화 약 1315억 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나는 운좋게도 메트로폴리탄과 시카고 미술관 두곳에서 건초더미를 볼 수 있었다.
모네의 1880년 작품 <여름의 베퇴유 (Vétheuil in Summer)>는 놓쳤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베퇴유의 풍경을 담았다. 모네가 자연의 빛과 색을 포착하기 위해 야외에서 작업했다고 한다. 세느강을 배경으로 한 풍경을 그린 것으로, 강 주변의 나무와 건물, 하늘의 색 변화를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메트로폴리탄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이 없다. 대신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스케치들을 볼 수 있다. 목탄으로 남자 모델의 근육과 뼈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소묘 작품들이다. 일반에 자주 공개하지 않는 작품들이라고 한다. 미완성인 탓일게다. 로마 바티칸 베드로 성당과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미켈란젤로에 푹 빠졌던 적이 있을 정도로 미켈란젤로를 좋아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직관했다. 그의 작품 대다수는 로마와 피렌체에 몰려 있다. 다시 메트에 가면 내 최애 작가의 날것 같은 미완성 소묘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