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지 않은 남자를 닮아가는 중입니다.
불안이 많던 나는 불안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대학시절 나는 기숙사에 살았다. 기숙사 근처에 비디오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가게 앞에 작은 좌판이 생겨났다. 좌판에서 팔기 시작한 것은 고기와 야채를 같이 볶아 빵에 끼워 먹는 버거. 고기 볶는 향이 어찌나 좋았던지 길을 지날 때마다 나도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맛도 맛이지만 버거의 가격은 단돈 천 원. 주머니가 가볍던 학생들은 버거를 먹는 동안 주인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중에 그곳은 학생들의 '심야식당' 같은 곳으로 유명해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날 TV에서 버거집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가게가 생각보다 커져서 전국에 프랜차이즈까지 생겨났다는 소식. 그런데 그 엄청난 성공 신화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 번도 행복해 본 적이 없어서 뭔가 잘된 이 순간에도 불안하다고. 불행이 곧 닥쳐올 것 같아서 지금을 즐기지 못하겠다고.
그 말이 내 머리를 쿵하고 울렸다. 아저씨처럼 성공한 무엇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곧 불행이 닥쳐올 것 같아 지금을 즐기지 못한다는 말이 너무 공감되어서. 나는 스스로를 별일이 있어도 없어도 불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아저씨가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자 감춰져 있던 나의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불행은 반드시 나를 찾아오기로 약속된 것 같았다. 다만 언제 올질 모르니 매일을 불안해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나는 최악을 상상하며 앞서갔다. 아이가 건강해지면 다시 아플까 봐 웃질 못했다. 어쩌다 강군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당사자보다 더 걱정이 되어 밤잠을 설쳤다. 강군이 큰 걱정 없이 잘 지내도 나의 불안은 묘하게 지속되었는데, 아마도 나에겐 '마냥 행복했던 기억'이 없었기 때문일 거다. 고요한 시간은 그저 폭풍전야라고 믿었으니까. 왜 그런 성격이 되었는지 나의 성장 과정을 되짚어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언제나 발이 공중에 살짝 떠 있는 사람처럼 불안했고, 곧 고꾸라질 것처럼 매일을 긴장하며 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불안해?"
아이를 볼 때마다 유독 불안해하던 내게 강군이 물었다.
"나는 자꾸 최악을 상상해. 그리고 그 상상이 실제로 일어날까 두려워."
그는 불안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때보다도 차분한 말투로 답했다.
"네가 상상하는 일들이 실제로 다 일어난다고 쳐. 그럼 그때, 내가 같이 죽어줄게!"
같이 죽어준다는 말이 어느 정도 진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엔 꽤나 진지한 맹세처럼 들렸다.
( 나중에 몇 번 되묻곤 했는데,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저 순간적인 기지가 아니었을까. 흐흠 )
진실이 무엇이었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 후로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상상의 끝에 '죽음'을 가져다 놓았는데, 그토록 두려워 마지않는 순간에 기꺼이 나와 죽어주겠다는 사람 하나가 있다는 게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이야. '그런 생각하지 말고 같이 잘 살아보자!'라는 말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내가 상상하는 최악의 결론에서 우린 각자의 길로 걸어가고 있지 않았을까.
그 후로 나의 불안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지금도 나의 상상이 한 번씩 앞서가려 할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눈앞에 있는 가족이 더 많이 보인다. 스스로 성장해 나가며 뿌듯해하는 아이, 대체로 유쾌하지만 위기의 순간엔 어느 때보다 진지해지는 남편이자 이젠 친구이기도 한 강군. 그렇게 내 상상은 먼 곳이 아닌 '지금'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불안하지 않은 남자를 점점 닮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