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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Mar 15. 2024

집을 지으려고요.

집을 짓는다는 상상만으로도 저에겐 충분히 의미가 있어요.

강군과 나는 집돌이 집순이다. 여행을 가면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편이지만, 그렇게 작정하지 않고서는 집에 있길 좋아한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로 여러 번의 이사를 다녔다. 원룸, 고시원, 빌라와 기숙사, 아파트와 주택까지, 거의 모든 형태의 집을 살아보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사를 한 횟수만 20번이 넘었다. 강군도 이사 경력이 만만치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우린 유독 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집은 단순히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착'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어서, 나이가 들어서도 살고 싶은 집이었으면 한다. 그러니 우리가 살 집을 직접 그려보는 수밖에.

우리는 과연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어릴 때 나는 벽이 흙으로 된 농가주택에 살았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지푸라기와 흙을 섞어 벽을 만든 형태였는데, 문제는 마감이 그게 끝이 아니었다는 거다. 엄마는 깔끔한 것이 좋다며 벽지를 덧바르셨는데, 합판도 없이 발라서 우리 집 벽은 언제나 울퉁불퉁했다. 다시 도배를 하게 되어도 예전 벽지를 뜯어내는 일은 없었다. 그 덕에 벽지 무게가 커져서 손으로 치면 펄럭일 만큼 들뜨는 곳도 생겼다.

집에는 우리만 사는 아니었는데, 한 번씩 벽 뒤로 쥐가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주먹으로 쳐보면 촤르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럴 마다 나는 집이 무너지는 상상을 고, 이렇게 다짐했다.

' 이다음에 크면 벽이 반듯한 집을 지을 거야. 쥐는 얼씬도 못하게 단단한 벽을 가진 집으로.'


벽이 반듯한 집에 살게 된 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춘천으로 가게 되면서부터다. 부모님과 떨어져 친구와 둘이 자취를 했는데, 벽이 반듯반듯해서 이것이 도시의 집이구나 감탄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던 집은 반지하. 벽은 반듯했지만 여름이 되자 곰팡이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쥐는 없었지만 바퀴벌레가 살고 있었고, 어느 날 주방 문을 여니 촤~하고 사라지는 바퀴벌레 때를 보게 되었다. 그때 처음 쥐가 사는 고향집이 그리워졌다.


대학을 오며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했는데, 그 후로 나를 힘들게 한 건 쥐나 바퀴벌레가 아니었다. 벽 너머의 사람들이었다. 방음이 안 되는 고시원이나 원룸에 살 때도 크게 힘들지 않았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자 집은 더 이상 편안한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 집 바닥은 5센티도 넘는 매트로 도배되어 있었지만, 아래층 사람들은 우리 아이가 내는 소음을 힘들어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야단을 쳤고, 그것도 안 되겠는 날엔 TV를 틀어주고 그 앞에 붙들어 놓다. 하루는 멍하니 TV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보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사를 가야겠어!"

강군과 나는 그렇게 또 한 번의 이사를 했다. 서둘러 집을 알아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를 게 되었다.


이사 첫날 나는 밤늦은 시간에 쿵쿵거리며 거실을 뛰어다녔다. 한밤중에 청소기를 돌려도, 세탁기를 돌려도, 거실 한가운데에서 줄넘기를 해도 괜다는 사실이 나를 더없이 행복하게 했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 그런데 그 비가 천장에서도 떨어졌다. 거실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비라니. 그전까지 나는 빗소리를 꽤나 좋아했었다. 그런데 밖에서 들리던 빗소리를 집 안에서 듣게 될 줄이야.

우리는 며칠 동안 양동이를 바꿔가며 빗물을 받아내야 했다. 비가 그치고 얼마 후 수리 업체를 불러 지붕을 고쳤는데, 그 일이 나에게 꽤나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지금도 비만 오면 가슴이 콩닥거려 잠을 설친다. 빗소리가 다시 좋아질 날이... 오게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 짓기를 꿈꾼다. 집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은 스트레스였지만, 다른 감사할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우리는 주택이 주는 자유로움에 중독되었다.

뛰지 말라는 잔소리를 안 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이었지만, 아이들은 이 집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지냈다.

코로나로 외출이 쉽지 않던 시절에도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고, 불멍을 하고, 텐트를 치고 놀거나 텃밭을 함께 가꾸기도 했다. 집안에 탁구대를 설치해 탁구를 치기도 하고, 거실 가운데 테이프로 사방치기 선을 그려서 놀기도 했다. 주택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상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가 원하는 구조의 집을 지어보고 싶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건축비를 보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해 보는 시간아깝지 않다.

언젠가 TV에서 소액이지만 매주 거르지 않고 복권을 산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당첨되지 않더라도 복권을 산다는 건 일주일치 설렘을 사는 거라고 말던 사람.

나에겐 집을 상상하며 그려보는 도면은 복권과도 같다. 도면을 그리면 절로 설렌다.

책이 많으니 서재는 조금 넉넉했으면 좋겠고, 화분을 키울 수 있게 환기가 잘 되는 테라스가 있으면 좋겠다. 물이 빨리 식지 않는 아담한 욕조가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그림을 그릴 작은 작업실도 하나 있었으면 한다. 강군은 조용히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그러니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쩌면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일인지 모른다.


어떤 결론이든 현실이 되기 전까진 마음껏 상상하며 마음껏 설레고 싶다. 복권을 사는 마음으로. 일 년 치가 아니면 이 년 치의 설렘을, 그게 아니면 또 삼 년 치의 설렘을.


그렇게 언젠가 빗소리가 정말 좋아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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