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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Mar 20. 2024

너도 공부가 조금은 즐거웠으면 좋겠어.

나중에 떠올리면 좋은 순간들도 생각나길 바라.

마당의 수도를 보온재로 싸두었었는데, 어느덧 걷을 시기가 왔다. 주택에 살다 보니 철마다 해야 하는 일들로 계절을 실감한다. 그리 크지 않은 텃밭엔 작년에 심어놓은 토마토 줄기가 말라있다. 마지막 수확을 끝으로 걷었어야 했는데, 동네에 길고양이가 많아 그러지 못했다. 아무것도 심어져 있지 않은 밭은 길고양이의 전용 화장실이 되곤 하니까. 올해 농작물을 심을 때까진 그대로 둘 생각이다.

마당의 토마토는 동우가 작년에 학교에서 받아온 모종을 옮겨 심은 것이었다. 개미가 너무 많아 굳이 텃밭을 가꾸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관찰일기를 써야 한다며 마당에 심겠다 고집을 부렸다.

우리 집은 식물킬러들이 살고 있다. 강군도 나도 식물엔 똥손이다. 집의 구조상 해가 잘 들지 않고, 환기도 쉽지가 않다. 맞창이 아니라 고기를 구우면 냄새가 일주일은 다. 그러니 식물이 잘 자랄 리 없다 핑계를 대보기도 하지만, . 실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파트에 살 때도 마찬가지긴 해서, 집안에 들인 식물은 한해를 넘기지 못하고 시들어버렸다. 지금은 딱 두 개의 화분이 남아있는데, 그마저도 시들해서 올해를 넘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 마당은 달랐다. 여름이면 풀은 마당을 점령하듯 자라났고, 텃밭에 심은 식물도 풀이 자라듯 거침없이 자랐다. 덕분에 동우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관찰일기를 쓸 수 있었는데, 모종 하나가 저렇게까지 클 수 있냐며 신기해했다. 관찰일기를 제출하던 날 자신만큼 잘 키워 온 친구가 없었다며 자랑했다. 토마토 모종을 나눠주며 학교에서 달성하고자 했던 학습목표를 가장 성실하게 달성한 아이가 아니었을까. 덕분에 나는 고양이들로부터 모종을 지켜내느라 힘들었지만 말이다.


조금 생뚱맞지만, 요 몇 달 나는 과학에 빠져있었다. 갑자기 과학에 빠지게 된 건 동우 때문이었다. 과학 잡지를 보다가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에 답을 해주다 내가 학창 시절 지구과학이나 화학 과목을 꽤나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나에게 과학은 내 주변을 이해하게 하는 과목이었다. 달 모양이 왜 변하고 물은 왜 전기를 흘려보내는지, 소금을 뿌리면 배추는 왜 절여지고, 눈이 오면 제설차들은 왜 염화칼슘을 뿌려대는지, 그 수많은 '왜'에 답을 알려주는 과목이었으니까. 나를 둘러싼 세계를 설명해 주는 과목이어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문과적인 낭만이 있긴 했었는지, 야자시간 지구과학을 공부하다가 친구와 함께 운동장에 나와 직접 달을 보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달의 모양을 보고 태양의 위치를 가늠해 보다가 별자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공부가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수학의 미적분과 통계 부분을 공부할 땐, 대학 가면 수학은 다시 쳐다도 안 본다를 다짐하곤 했지만.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인데, 어째서 학창 시절엔 공부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과학을 좋아했지만, 나에게도 그때의 과학은 수능의 한 과목으로서의 의미가 컸다. 점수가 잘 안 나오면 한동안 과학은 꼴도 보기 싫었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과학을 보면 설렌다. 의 학창 시절엔 다시 떠올려봐도 좋 순간들이 다. 선생님께서 수업 중간중간 해주시던 이야기들, 다소 썰렁했지만 나쁘지 않았던 농담까지 꽤 세세 것들을 억하고 있다.

무엇보다 참 많이 웃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학을 조금은 '사랑'했던 게 아닐까. 내가 사랑했던 게 과학'시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동우그때 썼던 관찰일기를 점수로 다고 다면, 마냥 즐거울 수 있었을까? 토마토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관찰하기보다, 다른 친구들보다 잘 키워 좋은 사진을 찍고, 좋은 글로 남기고를 고민했어야 한다면 말이다. 그건 그저 과제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동우는 그맘때 <크레이지 가드너>라는 만화에 빠져있었다. 토마토를 키우 신도 작가처럼 어엿한 식집사였고, 식물을 키우는꽤나 재주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동우 자존감 토마토와 함께 높아져 있다. 평가를 한 것이다면 그만큼 즐기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런 동우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 대부분을 점수로 평가받아야 하는 시기. 지금부터의 점수는 갈 수 있는 고등학교를 결정하고, 그 후엔 대학을 결정하게 될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 듯하다. 대학을 안 가도 되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 한, 그저 즐길 수만은 없는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즐겁기까지 바라는 건 물론 욕심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하게 될 공부가 조금은 즐거웠으면 겠다. 설령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더라도, 모르던 무언가를 알게 되어 기쁜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과정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기억도. 좋은 기억들만 골라 오래 기억해 두었으면.

내가 세상에 대해 가졌던 의문을 풀게 되어 기뻤던 것처럼, 그리고 야자시간 올려다본 밤하늘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처럼, 같이 밤공기의 청량한 냄새를 맡던 내 옆의 친구를 따뜻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동우도 그기억들로 조금은 즐거운 학창 시절이길, 또 다른 토마토모종 같은 경험찾아내길 바라본다.


엄마 나는 그래서 너도 공부가 조금은 즐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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