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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Mar 27. 2024

약간의 요가가 필요합니다.

단순하게 살고 싶어 요가를 합니다.

티비를 틀고 거실 가운데 요가 매트를 편다. 제대로 하려면 주변을 최대한 조용히 하고 내 몸에 집중해야겠지만,  요즘 나의 요가 시간은 꽤나 시끄럽다. 시선은 온통 티비에 가 있어서, 요가라기보다 그저 스트레칭 정도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다음 달부턴 요가 수업에 다시 나가기로 했다. 간만에 이런저런 일을 시작하게 되어 가성비가 좋은 수업으로 신청해 두었다. 동사무소 문화센터 강좌인데, 몇 번은 빠져도 아깝지 않을 금액이라 출석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덕분에 4월이 조금은 기다려진다.


한동안 우울감으로 무기력했던 시기가 있었다.

다들 자연을 보라고 하지만, 그럴 땐 경치도 눈에 잘 안 들어온다. 더구나 운동이나 건강, 그런데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거기에 마음 쓸 여유가 없다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우울하면 몸을 움직이라고 하는데, 몸은 하루를 버텨내는 일만으로도 천근만근이었으니까.


대학시절 우울증을 앓던 시기에도 나는 며칠을 그저 방안에서만 보냈다. 내 방은 해가 잘 들지 않는 작은 창이 전부였고,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저녁인 듯 어두웠다. 그때 먹을 것이 떨어져서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문을 여는 순간 뒷걸음질 쳤다. 그날은 눈이 부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화창했고, 빛이 너무 밝아서 문 밖은 꼭 다른 세상 같았다. 내 방과는 너무도 다른 밝음. 나와는 다른 사람들 살 것 같은 괴리감에 한 발을 내딛기도 무척 힘들게 느껴졌다.

만약 조금은 큰 창이 있고, 그곳으로 해가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조금은 덜 두렵지 않았을까. 그때 내 방은 밖으로 나가는 연습을 하기엔 너무 폐쇄적이었다.

마음은 몸도 아니면서 건너뛰기가 잘 되지 않았다.


지금 요가는 내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는 창문과도 같은 운동이 되었다.

매일, 열심히, 꾸준히 하는 운동은 아니지만 몸을 쓰는 일이 낯설지 않다 느끼게 한다.

처음 요가를 배우러 가던 날, 선생님은 말했다.

"삼 개월 후엔 몸도 생활도 달라져있을 거예요."

'몸도 마음도'가 아닌 '몸도 생활도'라니. 그 말이 무척 설레었는데, 그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운동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뇌라는 참 단순해서, 일단 운동을 하니 내가 그런 여유가 있는 사람처럼 착각하게 된다. 몸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 이럴 여유도 있고, 요즘 괜챃은가봐.' 하는.


언젠가 머릿속이 복잡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등산을 했는데, 막상 등산을 시작하니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었다. 산을 오르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정상이 어디지? 얼마나 더 가야 하지?라는 생각만 남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은 그대로인데 분명 나는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었다는 거다. 나를 사로잡고 있다고 믿었던 생각이, 적어도 등산을 하는 동안엔 나에게서 한발 물러나있었다. 내가 이 고민을 잠시 내려놓을 수도 있구나 싶어서였을까, 그렇게 커다래 보이던 고민이 조금 우스워졌다. 아무리 크고 대단해 보여도, 내 육체에게는 져버린 고민이었으니까.


요가도 마찬가지, 일 년을 넘게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나에게 힘든 운동이다. 정적으로 보이는 동작들은 머릿속 생각들을 모두 내쫓아버릴 만큼 좀처럼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일 내 몸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요즘도 나는 조금 복잡하다 싶은 문제들이 생기면 요가를 한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엔 생각이 한없이 단순해지는 나를 보며, 어쩌면 내 몸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 힘든 문제는 아니었구나 싶어다.


포기하지않으면 어제보다는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발전해 있다. 뻣뻣하기만 하던 내가 이제는 제법 유연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싶은 세상에서, 내 몸 하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사실이 적잖은 위로가 된다.


산책하기 좋은 봄날이다. 겨우내 나를 힘들게 했던 생각들을 봄볕에 조금씩 말려야지. 매일을 달리기 하듯 열심히 살진 못해도 느리게 걷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가야지.

자꾸만 수업에 빠지더라도, 나갈 수 있는 날엔 그래도 요가를 배워야지 마음먹어 본다.

오늘도 에겐 약간의 요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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