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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Apr 03. 2024

행복을 미뤄두지 않길 잘했어요.

조금은 유치하고 오글거려도,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행복'이라는 말이 들어간 글은 잘 읽지 않는다. 어쩐지 그 단어는 일상을 멀리서 바라보고 대강 얼버무리듯 괜찮다고 말해버리는 느낌이다.

sns로 그림일기를 쓰다 보니 다른 작가들의 글도 많이 보게 되는데, 삶을 위로하는 글에는 '마음' , '행복' , '긍정'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때마다 조금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닌데, 크게 도움은 되지 않는다 싶은 이야기. 그런데 막상 내가 글을 쓰려고 하니 '행복'이라는 단어 외에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감사'나 '만족'은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음. 결국 돌고 돌아 '행복'이다. (과거의 나를 잠시 반성해 본다.)


나는 스스로를 조금 부정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우울에 빠질 수 있는. 그래서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었다. 다행히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노력이 아닌 습관이 되었다고 느낀다. 누군가 내게 긍정적인 편이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불안한 순간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긍정에 관한 기억들은 꽤 많이 남아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엔 작은 원룸에 살고 있었다. 그땐 생활를 벌기 위해 학원과 학교에서 강사를 했었는데, 전임 근무하기에는 공부 시간이 부족해 최소한의 수업만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 한 번씩 변수가 생기면 경제적으로 들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가장 취하기 쉬운 대안은 월세가 저렴한 고시원으로 이사를 가는 것.

나는 밤마다 옆방 사람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었다. 서울시내에 길거리에 나앉지 않고 등 붙이고 잘 방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하고.


강군과 신혼생활을 했던 곳은 경기도에 있는 작은 복도식 아파트였다. 늘 원룸생활만 하다가 아파트에 살게 되어 신혼살림을 장만하는 내내 참 많이 설레어했다. 사실 아파트 근처에 공장과 창고가 많아 생활환경이 썩 좋은 곳은 아니었다. 밤이 되면 술 취한 사람들이 좁은 인도를 차지하고 있어서 혼자 지나다니기 무서운 순간들도 있었다.

그래도 동우를 낳고는 산책 삼아 동네 공원에 나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아파트의 조경정도도 안 되는 열악한 공원이었다. 그런데도 그 공원이 있는 게 어찌나 감사하던지. 동우와 나는 거기에서 꽤 즐거운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강군과 그때 살던 동네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그 공원이 뭐 그렇게 좋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나갔을까 싶어서. 사진은 뭘 또 그렇게 많이 찍었던지, 웬만한 여행지보다도 많이 남았다.


긍정에 관한 기억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강군이 차를 사고 처음 놀러를 갔을 때의 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다른 승용차가 우리 차 옆구리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많이 놀라긴 했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아이와 함께 뒷자리에 타고 있었고, 사고가 난 순간 내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이런 거였다.

"아,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다. 동우도 괜찮은 것 같고, 우리 복 받았네!"

복 받을 것까진 없겠지만,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있었다. 더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그때도 종교는 없었지만 이 세상 모든 신들이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 이 정도라서 정말 다행입니다 하고.


강군은 명예나 권력에 대한 욕망은 크지 않아 직장에서도 승진을 갈구하는 유형은 아니다. 그저 안정적으로 오래 근무할 수 있다면 그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그가 작년에 갑작스러운 이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집 가계 경제를 강군에게 대부분 의지하고 있다 보니, 이직은 분명 엄청난 이슈였다. 고정비용이 적지 않아서 이직이 성공적이지 않다면 많은 것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다행히 이직은 잘 마쳤다.)

항상 위기가 오면 능력을 보여주겠다 큰소리치던 나였지만 딱히 능력을 발휘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신기한 것은 그 상황에서도 마음은 크게 불안하지는 않았다는 건데, 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생겨서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시간이 온다 하더라도, 그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 과거의 나도 그리 넉넉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그 나름의 행복이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보다 많은 것들을 줄이게 되어 거슬러 거슬러 원룸에 살던 시절로까지 돌아가게 된다 해도, 나는 감사할 것들을 찾으며 살 것 같았다. 과거의 나도 그랬으니 미래의 나도 잘 살아내지  않을까 싶어서.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다소 과장되게 희망적인 단점이 있다. )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을 미뤄두지 않기로 한다.

내가 바라는 행복이 미래에 있고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까진 그저 견디는 시간이라면, 그때 닥쳐오는 위기는 그저 절망일지 모른다. 괴로운 과거로 돌아가는 절망.


그러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에서도 감사할 것들을 찾아내 본다. 아이가 아프지 않아서, 그래서 아이와 따뜻한 봄길을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오늘은 아이와 함께 봄을 온몸으로 느끼며 동네 여기저기를 걸었다. 완연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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