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동생 소식이, 응급실이라니

by 꿈이

일어나야 되는데, 10분만 있다가 일어나야지. 알람인 줄 알았던 진동은 전화였다. 남쪽 동네에 사는 둘째의 전화다. 이른 새벽 전화는 괜히 덜컥 겁이 먼저 난다. 아니나 다를까. 부모님이 응급실에 가고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남동생이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고, 보호자가 있어야 해서 급하게 옷만 입고 출발을 하셨단다. 둘째는 평소와 다른 일정 때문에 자기가 바로 가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부모님이 너무 놀라셨으니까. 무슨 일인지는 한두 시간이라도 지난 후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죽 아팠으면 119를 직접 불러 응급실에 갔을까 싶어 남동생도 걱정이고, 자식들 일에는 같은 마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아들 늘 마음에 걸려 있던 부모님께 응급실로 오라는 연락에 얼마나 놀라셨을지.

나는 평소처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데 차 안에서 어느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졌다.

별일 아니겠지, 직접 연락하고 누나 번호까지 알려준 거 보면 괜찮겠지. 우선은 나를 다독였다.


꾸역꾸역 청소기를 밀고, 빨래를 돌리고, 저녁에 먹을 김치찌개도 해두고, 체험제품 후기를 위한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밀어냈다. 아버지께 연락을 드렸다.

"응 괜찮해~"

예상했던 멘트가 먼저 들렸다. 의사 말로는 다행히 빨리 와서 안 좋은 상황은 면했다고. 괜찮다는 대사와는 다르게도 축축하게 젖은 아빠의 목소리에 마음이 아파온다.

늘 단단하던 골판지가 물에 젖은 것 같다. 숭숭 뚫린 구멍은 너무도 빠르게 물을 머금었고, 묵직해진 종이는 휘어지고 힘이 없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시기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는데, 여전히 칠십이 넘은 노부부는 자식의 보호자로 응급실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를 동의서에 싸인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는 아들의 침대 옆 간이침대에 이불을 편다.

괜찮다고 하던 아빠는, 수술실 앞에서 아들의 전화번호도 생각이 나질 않고 핸드폰에서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유난히 약한 부모님인 것을 알다 보니 그 모습과 마음이 어땠을지 눈에 그려졌다. 그래도 아빠는 전화기 너머에서 괜찮다고만 하신다. 오지 말라고, 그 먼 데서 뭘 오냐고, 오히려 언니와 동생에게 연락한 둘째를 나무랐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럴 때 부모는 괜찮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아픈 자식 앞에서 절대 힘들거나 슬픈 내색을 할 수 없다. 밤 새 간병을 하며 쪽잠을 자더라도 고단하지 않아야 한다. 의사의 말보다 더 희망적이어야 하고,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며칠 후를 바라봐야 한다.


급하게 기차표를 알아보니, 주말이라 역시나 다 매진이다.

주말에 움직이는 사람이 일 년 내내 이렇게 많다니. 좋은 일은 한 달 전에 미리 알거나 계획을 세워 그나마 표를 예약할 수 있지만, 위로가 필요한 일들은 늘 급하게 다가온다.


부모님과 통화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닌데,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드렸다. 지금은 막내가 월차를 내고 병원에 도착했고, 나는 토요일에 병원으로 바로 가겠다고. 힘들게 뭣하러 오느냐고 하신다. 옆에 있는 우리끼리 알아서 한다면서. 일 년에 한두 번도 볼까 말까 하던 동생인데, 아플 때 가족이 있으니, 누나가 있으니 힘내라고. 엄마 아빠가 다 감당하기엔 당신들 건강도 걱정이 되어 있을 수가 없었다. 아파서 누워 있는 동생도 힘들지만,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도 지금 많이 힘드시니까. 멀어도 너무 멀리 살아서 이렇게 죄송할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화장품 파는 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