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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니네마당 Mar 08. 2019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글· 다금바리/ 그림·조인숙 ( Vol.09 "하자보수" 중)

지난 초여름, 사내 심리상담실 실장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정기 마음건강 테스트 결과가 좋지 않아 상담이 필요할 것 같다고. 인생이 정말 절묘한 것이, 때마침 내 몸과 마음이 지쳐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자 매번 전화를 붙잡고 친구들에게 호소하던 그 시점에, 전문가의 손길이 다가온 것이다. 물론 그때부터 내 몸도 급격히 나빠졌던 것 같다.


사람들은 계속 돌아가는 익숙한 쳇바퀴 속에 있을 땐 그 쳇바퀴 속이 제일 안전하고 그 통 속에서 달리는 일이야 말로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상담을 하면서 내가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몇 년간 다변하는 삶 속에서 가정과 일, 두 가지를 다 잡으려는 적응 자체가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삶에 여유롭게 적응하기보다는 이 쳇바퀴 속에서 일탈하지 않고 달려 자리를 지키리라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부서 내 인간들의 이기심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했고, 나는 나름대로 성과를 내려는 욕심에 허덕이고 있었다. 나는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다 할 수 있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역량 부족으로 상사한테 까이는 거라면 철퇴를 맞되 역량을 향상해서 복수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절대적, 상대적 시간이 모두 부족했다. 시간을 일에만 쏟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육아에서 아이의 1차적 보호막이 우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나의 땜방을 하면서 불만만 토로하기 일쑤였다. 장기전을 계획하기에 내 멘탈은 매일 너덜너덜했다. 그러다 상담을 하면서 ‘오늘 하루만 살자’는 마음을 먹었고, 오늘 끝내야 하는 일이 아니면 야근을 안 하기로 했다. 눈치고 뭐고 그냥 집으로 왔다. 남편이 좋아하고, 아이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내 몸과 마음이 좋아졌다.


내 몸뚱이는 8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했고 항상 재발을 두려워하며 건강을 최우선으로 두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내 명함이 내 과거이자 내 현재의 8할이라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명함이 없는 엄마라는 굴레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굉장히 촌스럽고 무능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역할의 구멍을 친정엄마와 남편이 메꿔주기를 바라면서 난 더 욕심내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살아온 흔적 어딘가에 국한된 것도 아니며, 쌓아온 지식과 경험치의 통합체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나를 둘러싼 세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때 나의 마음 또한 요동치고 변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작년부터 서너 번에 걸친 희망퇴직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있어서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뭐라고 회사가 나에게 심판권을 준 양 그리 생각했을까.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퇴직을 더 나은 결정이나 기회로 삼은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회사라는 터전은 계속 사람들을 위협했다. 필요 없으면 내쳐지는 존재가 될 거라고…. ‘나가라고 하기 전까진 버텨야지. 나 정도 성과면 5년은 문제없을 거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곳에서의 유한한 시간을 두고 그런 오만한 마음으로 가을을 맞을 무렵, 갑상선암이 재발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앞둔 요즘, 딸아이에게 자기 전 읽어주는 동화책 중 『브레멘 음악대』가 유독 와 닿는다. 인생에 낙오나 한순간 미끄러짐이 있더라도 또 다른 희망 ‘브레멘’으로 방향 설정을 해놓으니 원래 머물던 곳이 아니어도 마음만 편하다면 그곳이 브레멘이 되는 것 말이다. 이제 나의 명함은 내 가족, 내 딸의 엄마, 내 남편의 아내로서의 몸뚱이에서 밀렸다. 이제 나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주변을 짓밟고 옭아매고 스스로 옥죄는 이들한테서 한발 떨어져서 보니, 모든 것이 참으로 우스워졌다. 이들이 지금을 사는 우리의 아빠, 엄마, 언니, 동생일지언정…. 나도 불과 몇 개월 전,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위태로운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비웃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을 바꿔보니 그 차이는 마치 종이 한 장의 결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과감히 퇴직원을 작성하고 나오는 길에 무언가 마지막 돈지랄이란 생각으로 근처 럭셔리의 상징인 판교 현대백화점 식품관에 갔다. 무지개색으로 예쁘게 만든 1조각에 7천 원짜리 롤케이크 하나를 들고 집에 오는 길은 생각보다 시원했다. 내가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이 기분은 가볍고 자랑스러웠다. 집에 와서 딸내미에게 ‘무지개 빵’이라고 주었더니 게 눈 감추듯 먹고 일주일이 넘은 지금까지 나만 보면 ‘엄마, 무지개 빵’ ‘무지개~~’하며 징징 거리기 시작한다. 아, 역시 겉보기 좋은 자본의 맛은 참 앙큼하구나. 내 마음이 언제 또 돈의 맛, 관운의 맛을 보고 싶어 다시 변할 수도 있다. 남편한테 6개월만 쉬고 더 재밌게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할 거야, 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일 말고도 할 게 엄청 많은, 이 불확실성에 은근한 기대와 설렘도 솟아난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살 수 있는 보석 같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변하겠지. ‘흔들리는 것은 나뭇가지가 아니라 내 마음’이라는 선문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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