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의 이념사 - 프리드리히 마이네케(한길사) ●●●●●●○○○○
국가 생활에서 정신과 자연의 해명할 수 없는 인간관계를
사람들은 항상 인정해야 하나 찬미해서는 안 된다.
국가이성의 기원은 두 가지 원천으로 귀착될 수 있다. 지배자의 개인적 권력충동과, 그에 대한 대가를 받음으로써 기꺼이 지배받고 자기 자신의 잠재된 권력충동 및 생활충동에 의해 지배자의 충동까지 동시에 조장하는 피지배 민중의 욕구가 그것이다. 이 때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공통의 유대와 공동체를 지향하는 인간적인 근본욕구를 통해 얽히게 된다. 그런데 일단 획득된 한 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권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옹호되어야 한다. 이것이 권력의 본질이기도 하다.
권력은 일단 획득되면 조직화되어야 한다. 일단 조직화되면 독립된 강대한 것,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마음을 쓰고 봉사하고 특히 그것을 요구하고 획득하는 데 노력한 당사자가 앞장서서 봉사해야 하는 초개인적인 것이 된다. 지배자는 스스로 권력의 하인으로 변질된다. 권력의 목적은 개인적 방종을 제한하기 시작한다. 즉 국가이성의 탄생을 고하는 것이다.
- p. 65. 국가이성의 본질
.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 이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그에 이어 또다시 마키아벨리즘을 다룬 책을 읽는다. 르네상스 이후의 격렬한 찬반논쟁을 거치며 살아남은 마키아벨리즘이 이후 유럽 - 특히 독일에 준 영향을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독일 사상서를 번역한 책들이 으레 그렇듯 진입장벽은 높고 문장 하나하나는 꽤나 불친절하지만, 머리를 싸매게 하는 비유와 번역서 특유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복문을 과감히 패스하고 넘어가면 구도 자체는 의외로 간단하다. 국가의 생존과 힘을 우선시하는 마키아벨리즘과 그 후예들, 그리고 그에 대항해 신과 도덕(근대 이전), 인권(근대)을 내세우는 반대파들의 대립. 여기에 매 장마다 근세-근대 유럽의 세력 구도가 배경으로 제시되어 있어서, 이 틀만 확실히 잡아가면 생각만큼 그렇게 버겁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 문제는 구도나 사상 그 자체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6-18세기의 유럽 역사가 우리에게 정말 낯설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시대의 유럽 역사에 대해서는 영국 앞바다에선 아르마다, 독일에서는 30년 전쟁, 동지중해에선 레판토 해전 등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전쟁들을 다루는 정도가 고작이고 통합된 역사라고 해봐야 '프랑스 혁명이 있기 전 이곳저곳에서 절대주의 왕정이 백성들을 착취했다' 정도로 끝나고 마니까. 애초에 정치사상이라는 건 당시의 현실에 기반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현대의 기준으로 사상서를 읽어봐야 뜬구름잡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예송논쟁이 그렇듯이.
. 결국 이 책을 굳이, 꼭 읽어야 한다면, '군주론'과 그 시대를 다룬 책들을 먼저 읽고나서 이어 읽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결국 이 책은 시대와 정세에 따라 마키아벨리즘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내용이니까. 거칠게 정리해보자면, 애초에 마키아벨리즘은 훌륭한 인품을 가졌던 피렌체의 대통령 피에로 소델리니가 이끌던 도시국가 피렌체가 스페인의 거대한 힘을 등에 업은 메디치 가에 패하고 무너지는 상황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여파로 한순간에 백수가 된 전직 공무원 마키아벨리는 종교와 도덕만으로는 결코 국가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고, 국가가 생존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설령 종교와 도덕,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더라도 국가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는 더 이상 개개인이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자생해야 하고 이를 위해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되는 힘과 자아를 가진 조직이 되었다. 그게 국가이성이다.
. 그러나 당시 유럽의 거대국가들 사이에서 중소 도시국가가 원리원칙만으로 생존하는 것은 어려웠고, 그래서 마키아벨리즘은 필연적으로 '음모와 술수'라 불릴만한 부분들을 포함하게 된다. 자연히 마키아벨리즘을 반대하는 이들은 이 점을 집중적으로 비난했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들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강대국이나 초국가적 종교집단에 소속된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글에 나오는 프랑스의 보댕이나 장티에,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왕처럼. 반대로 독일에서 마키아벨리즘이 국가이성이라는 형태와 명분을 띠고 다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나폴레옹이 등장하고 온 유럽이 전란에 빠진 18세기 말의 일이었다. 군사전략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놓은 나폴레옹 앞에서 분열되고 정치적으로 낙후되었던 독일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독일의 패전과 영토 할양, 분할 등 굴욕적인 현실을 보면서 헤겔과 피히테, 트라이치케 같은 피끓는 사상가들은 지금은 계몽주의의 단꿈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라 국가의 힘을 우선시해야 하는 시기라고 주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주장은 비스마르크를 거쳐 1, 2차 대전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독일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그 이외의 결론을 서둘러서 끄집어내야 할 것이다. 국가이성, 권력정책, 마키아벨리즘과 정책 그 모두가 국가생활의 자연면과 불가분으로 합쳐져 있으므로 결코 배제될 수 없을 것이다. 또 역사학파가 언제나 역설한 것도 권력정책과 전쟁은 단지 파괴적 작용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작용도 지닐 수 있으며, 그리고 악으로부터 선이, 원초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이 도처에서 발생된다는 것 또한 시인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이상화하는 것은 절대 회피되어야 한다. 거기서는 이성의 계략이 아니라 이성의 무력이 나타난다. 그것이 그 자체의 힘으로 승리할 수는 없다. 이성이 제단에서 순결한 불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점화한 것은 순수한 불꽃은 아니다.
- p. 650. 회고와 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