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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이 사회의 눅눅한 공기가 기세를 집어삼킬 때도
두 발 꼭 붙이고 서 있던 사람이다.
J는 대단했지.
폭력과 광기의 시대를 버티면서도
구원과 희생의 신성함이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J가 믿던 가치를 전부 이해할 수 없었으면서도
숭고한 말들에 나는 맞장구나 쳤다.
그렇다고 말을 삼키는 겸손한 학생은 아니었는데,
빗나가는 말을 두려워했다.
그냥 J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던 거야
나의 욕망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J는 그런 나를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었다.
사람이 다 그렇다는 얄팍한 위로를 건네는 대신
사랑할 수밖에 없던 모순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J와 함께 있으면
진부한 것들은 나의 전유였다.
그래도 다행이지
J를 만나지 않았다면
시시한지도 모를 날들을
좋아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