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J는 중립을 지키는 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보편적 도덕의 잣대를 넘어선
자신만의 아슬한 ‘선’이 있었다.
그 '선'이 이해되지 않을 때면
캐어도 물었지만,
J는 가끔 ‘그냥’ 하고서는
방싯 웃었다.
맹랑한 대답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J의 말에는 그런 힘이 있었지
J는 무언갈 판단하는데
감정을 배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속엔 켜켜이 쌓인 감정의 층위가 있었다.
J는
감정을 책임지는 사람만의 생기와 당당함을 누릴 줄 알던 사람.
그러니 네게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는 무서운 게 아니었어.
하긴
뜨겁거나, 차갑거나, 미지근하거나
온도에나 차이가 있지,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바래지 않은 꿈을 꾸며
위태로운 젊음을 유영하던 J는
따지자면 뜨거웠던 쪽이었고.
하지만 J야,
난 실은
너의 허무도
우울도
비틀림도
모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