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배우러 국제학교에 온다고?

국제학교는 영어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영어로 공부하는 곳입니다.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기 전 부모들이 가장 오해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국제학교에 다니기만 하면 자신의 아이가 영어를 원어민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과연 정말 그럴까? 내 아들의 경우를 빌어 말하자면, 그들의 이런 생각에 나는 당당하게 반박할 수 있다.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만....!"


곧 만 11살이 되는 아들이 말레이시아에 와서 국제학교에 다닌 지, 곧 만 2년이 된다.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 영알못이었던 아들의 영어 실력은 지난 2년 동안 나름 일취월장했지만, 읽기 실력에 비해 영어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능력은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아들이 영어 하는 모습을 보면 조선 시대 선비들이 지금 우리 아들과 같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한다. 한문으로 쓴 책은 거침없이 읽으면서, 정작 중국 사람과 대화는 자연스럽게 하지 못했던 사람들.

아들이 그렇다. 이제 영어로 쓰인 소설도 거부감 없이 읽지만, 정작 영어로 말해야 할 때는 나름 훌륭한 문해 력을 뽐내던 실력은 봄날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지난 2년 간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본 결과, 영어 읽기와 듣기 능력은 노력하는 만큼 느는 게 보였지만, 말하기 능력은 이들에 비해 좀처럼 쉽게 늘지 않았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혹은 국민학교를 다닐 때를 생각해 보자. 학교에서 한국말을 잘하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그런 걸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는 이도 없었다. 그냥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한국말로 가르치는 내용을 듣고,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한국어로 하고, 그러다 간혹 한국말로 발표를 하기도 하고.... 이렇게 학교 생활을 했다.

여기 말레이시아라고 다를까. 이곳 학교 생활도 한국과 다르지 않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영어로 하는 수업을 듣고,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영어로 하고, 아주 자주 영어로 발표를 한다. 하지만, 많이 다른 건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수업을 듣는다는 것. 그리고 조금 다른 건 발표를 자주 해야 한다는 것.


영어로 된 교과서로 공부하니 독해 실력이 자연스레 향상되고, 수업 시간 내내 영어로 수업을 들으니 귀가 트이지 않으면 이것이야 말로 이상한 일이다. 웬만한 우리나라 성인들도 잘 모를 것 같은 '초식 동물', '꽃술', '소장(小腸)'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만 10살의 어린이가 아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건, 학교에서 영어로 된 교과서로 공부하면서 누릴 수 있는 큰 혜택이다. 이렇게 어릴 때 자연스럽게, 반복적으로 배운 단어는 (내 경험상) 아주 오래오래 머리에 남아 있는다.


물론 말하기도 독해 실력 못지않게 늘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아이의 성향과 학교 환경에 따라 많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아들이 지금 다니는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영어 실력은 새로운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말을 나누기 힘든 수준이었다. 게다가 아들은 새로운 친구에게 먼저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같은 반에 있던 한국 아이와 어울릴 수밖에 없었고, 여전히(이제는 영어로 다른 친구와 교류할 수 있음에도) 처음 연을 맺었던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한국 친구와 놀 때는 한국말로 대화한다.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나, 쉬는 시간에 쓰는 것까지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향적인 성격에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아이가, 한국말을 사용하기 힘든 환경의 국제학교에 다닌다면 영어는 모든 영역에서 빠르게 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걸리는 시간의 차이일 뿐, 어릴 때부터 영어로 공부하고 배우는 학교에 다닌다면, 언젠가는 영어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성인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국에는 영어를 수준급으로 잘 가르치는 어학원들이 동네 곳곳에 있고, 학생들의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영어 마을을 운영하는 지자체들도 있다. 영어 공부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외국까지 나와서 외화 낭비하며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나 같은 부모들은 한국을 떠나 어린아이를 굳이 낯선 나라까지 데리고 와서 국제학교를 보내는 걸까?


물론 영어를 목적으로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들도 많지만, 나는 영어만을 가르치기 위해 아이와 함께 이곳 말레이시아에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있는 학교를 다니면, 영어보다 더 소중하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다음 글에서 적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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