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 얼룩으로 남은 미해결 사건. 사과 한마디 없이 죽은 전두환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도 망언만 내뱉다 자연사한 전두환이다.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은 죄인이 마지막까지 온갖 것을 누리다 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국민은 세상이 교과서 속 인과응보의 원리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라고, 역사적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시선들이 존재한다. 전두환이라는 미해결 사건의 출발점이라 할 만한 12·12 군사반란을 정면에서 다룬 영화 <서울의 봄>에 비상한 관심이 모이고 있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는 죽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끝내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의 암묵적인 동의가 작동하는 분위기다.
서울의 봄.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사망으로 유신 독재 체제가 종식되면서 잠시 불었던 서울의 봄은 그러나,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짧게 끝났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신군부에 의해 짓밟혔고, 남영동에선 온갖 고문이 자행됐고, 무고한 국민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으며, 반독재 민주화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대학생들이 쓰러졌다. 그 끝에서 쏟아진 "호헌 철폐, 독재 타도!".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전두환 정권이 퇴진하기까지 그렇게 1980년대는 전두환의 악행이 누적돼 대한민국 시계를 멈춰 세웠다.
상처받은 이들을 위무하는 건 예술이 잘하는 일이다. 영화도 이 중 하나다. "전두환? 80년대 기본사양이죠." 5·18을 배경으로 한 <오래된 정원>(2007) 기자간담회 당시, 영화에 "전두환을 죽여버려야죠"라는 대사가 들어간 것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임상수 감독이 내뱉은 말이다. 임상수 감독 말대로 1980년대는 수많은 콘텐츠의 시대적 배경이 됐고, 그 속에서 전두환은 기본사양과도 같이 존재했다.
그러나 한국 영화는 기본사양인 전두환을 다루는 데 오랜 시간 소극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이 징후는 <오래된 정원>과 같은 해에 개봉한 <화려한 휴가>에서도 포착됐다. 광주 트라우마를 겪는 소녀를 통해 5·18을 은유적으로 그렸던 <꽃잎>(1996)과 달리 <화려한 휴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모은 작품. 그러나 용감한 시도에 비해 '지나치게 안전한 연출'이란 평가를 받았는데, 5·18이라는 정치적 소재를 최대한 탈색시키고 가족드라마에 힘을 실으면서 스스로 평평해졌기 때문이다.
특히나 영화는 광주로 깊숙이 들어가면서도 학살의 제공자인 전두환을 향한 발언은 자제하는 인상을 남겼다. 학살자를 화면 안으로 불러내지 않은 건 2017년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 운전사>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그날의 비극을 재현하는 데는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만, 그날의 실질적 가해자에 대해선 소극적이었다. 대신 광주 시민을 탄압하는 사복조장(최귀화)을 <터미네이터>의 T1000을 연상케 하는 '악의 화신'으로 내세웠는데, 너무나 손쉽고 양식적인 접근이어서, 도리어 학살의 실제 주모자에 대한 깊은 고찰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스크린에 전두환이 우회하지 않고 등장하는 첫 영화로 평가받는 건 <26년>(2012)이다. 강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26년>은 그해 5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이 26년의 세월이 지난 후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암살하려는 이야기다. 강풀 작가는 연재 당시 포털사이트 '다음'에 직접 요청해 <26년>을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는데, 이유는 단 하나. 학생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다만, 전두환을 전두환이라 부르지 못하고 '그 사람'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 심정이 이랬을까. 여기엔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한 공격을 차단하고자 하는 뜻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강풀 원작 영화는 2009년 이해영 감독 연출로 세상에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배우 캐스팅까지 마친 상태에서 투자자가 돌연 투자를 철회했다. 뒤숭숭한 단어가 영화계 안팎을 휩쓸었다. 외압. 투자자가 새로 들어선 정권 눈치를 보다가 지레 '쫄아서' 자진 철수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확실한 건 영화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엎어졌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시민들이 나서서 7억원을 모았다. 가수 이승환도 선뜻 10억원을 투자했다. 그렇게 조근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나온 영화가 <26년>이다. 만듦새는 아쉽게도 이 영화에 모인 선의의 뜻을 만족시키기엔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연기한 장광의 비열한 연기만큼은 관객석 이곳저곳에서 한숨을 불러일으켰다.
전두환 암살이라는 상상은 지난해 개봉한 <헌트>로 이어졌다. 신군부의 쿠데타가 나라를 벌집으로 만든 지 4년이 흐른 시점을 배경으로 한 <헌트>는 전두환을 사냥하려는 영화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안기부 내 실세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 대립하던 두 사람이 알고 보니 '전두환 처단'이라는 같은 목적을 지녔음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던 영화는 픽션과 역사적 사실 사이의 균형을 매끄럽게 유지하며 달려 나간다. 다만, 이 영화 역시 전두환을 향해 박력 있게 달리고도, 결정적인 순간에서조차 전두환을 감췄다. 이것이 이 영화 완성도에 어떤 흠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전두환 묘사에서 이전 한국 영화가 취해온 방식. 그러니까 그를 후경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별다른 고민 없이 받아쓴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국민이 전두환에게 느끼는 감정을 과감하게 입힌 이는 <남산의 부장들>(2020)의 우민호 감독이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40일을 담아낸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전두환은 배우 서현우를 통해 전두혁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우민호 감독은 실존했던 인물 개개인에 대한 주관을 최대한 배제했는데, 전두환에게만큼은 중립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영화 엔딩. 대통령 암살로 세상이 발칵 뒤집힌 사이, 전두혁이 대통령 집무실에 몰래 숨어들어 금고에 든 현금 뭉치와 금괴를 훔친다. 방을 빠져나가려던 그의 시선이 멈춘 곳. '대통령의 빈 의자'다. 빈 의자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음흉하기 그지없다. 우민호 감독은 그렇게, 그가 얼마나 불법적으로 권력 1인자 자리에 앉았는가를 명징하게 압축해 낸다.
혹평 세례로 많은 시청자의 선택을 받진 못했지만, 1988년을 배경으로 하는 넷플릭스 영화 <서울대작전>(2022)도 전두환을 동력으로 삼은 영화다. 영화는 한 젊은 패거리가 전두환의 막대한 비자금을 탈취해 그를 응징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문현성 감독은 이 작품에서 전두환을 아예 희화화해 표현했다. <남산의 부장들>이 그랬듯, 이 영화에서도 엔딩은 전 장군(백현진)으로 등장한 전두환 차지다.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전 장군이 모자를 벗자 드러나는 익숙한 민머리. 그때 새떼가 날아가더니, 전두환 민머리를 향해 집단으로 똥을 싸 재낀다. 백현진의 바이브는 이때 또 어찌나 웃픈지. <서울대작전>은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희화화 수준으로까지 넘어갔음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등장한 <서울의 봄>. 오랜 시간 빈칸으로 남겨졌던 12·12 사태를 다룬 영화를 보기에 앞서 개인적으로 걱정스러웠던 건, 기꺼이 박수 칠 준비가 돼있는 관객들 손을 무안하게 하는 결과물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다행스럽다'를 넘어 <서울의 봄>은 만든 이들의 어떤 결기와 만듦새가 팽팽하게 작동하는 결과물이다. 전두환 모티브인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의 연기가 특히나 압권. 사실 12·12 반란은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에피스드 중 하나로 그려졌었다. 당시 이덕화가 전두환을 연기했는데, 그의 호연이 되레 전두환을 미화한다는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모르긴 해도, 감독도 황정민 자신도 그 부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주연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확실한 악마성을 찍어 보여줘야 하는 역할. 이 어려운 미션을 끌어안은 황정민은 전두광 안으로 잠입해 관객의 피가 거꾸로 솟도록 연신 돕는다. 얄미우리만큼 영리하게.
(시사저널에 쓴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