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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못생겼다는 사회적 낙인

by siwoorain


얼굴은 한 사람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도구이자, 정체성을 함축한 기호다. 첫인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다. "왕이 될 상인가?" "체면(面子)을 구겼다" 역시 얼굴에서 기인한 말들이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한술 더 떠 얼굴을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창이라고 봤다. 연상호의 <얼굴>은 얼굴을 통해 다층적인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불편하지만 묵직하다. 직접적인 묘사가 아쉽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지만 곱씹을 지점을 여럿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인 작품이다.


시각장애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손끝의 감각으로 아름다운 도장을 만들어온 전각(篆刻) 장인 임영규(박정민·권해효). 핸디캡을 딛고 하나의 예술이 된 그를 세상은 '살아있는 기적'이라고 부른다. 아들 동환(박정민)은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임영규를 밀착 취재하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가운데, 동환은 경찰로부터 40년 전 실종된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는 전화를 받는다. 타살 가능성이 있다는 경찰의 말에 동환은 동요하고, 임영규의 삶을 취재하던 방송국 PD 수진(한지현)은 특종을 노리며 정영희의 죽음에 관심을 보인다. 동환은 수진과 함께 사진 한 장 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얼굴>은 5개의 인터뷰와 1개의 클로징 멘트로 정영희의 뒤를 추적한다. 동환은 이 과정에서 한 핏줄인가 싶을 정도로 엄마에게 매정한 외가 친척들, 1970년대 엄마 정영희와 피복공장에서 일했던 동료들, 봉제공장 사장 백주상(임성재) 등을 만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입을 모아 묘사하는 정영희의 외모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정영희에 대해 말한다. "못생겼다"고. "괴물 같았다"고. 어떻게 생겼길래, 이토록 무례한 '얼평(얼굴 평가)'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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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이 2018년 쓴 동명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다. 한 여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르포 형식을 취했지만, 이 영화의 방점은 그녀가 '어떻게' 죽었느냐가 아니라 '왜' 죽었는가에 찍혀있다. 스펙터클보다 질문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영화란 의미다. 이야기 층위가 두터워서 어떤 인물에 포커스를 두고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감상을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얼굴>의 특징이다.


먼저, 정영희다. 정영희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회적 낙인이 찍혀 고립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흥미롭게도 신현빈이 연기한 정영희는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주변 인물의 증언을 통해 묘사될 뿐이다. 관객은 그녀의 외모가 사람들의 증언처럼 못생겼는지 (마지막 순간까지) 알 수 없다. 다만 외모로 인해 점점 더 집단 내에서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돼가는 정영희를 보며 반문하게 된다. 외모 낙인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떤 불평등을 미치는지.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서 정영희의 미추를 함부로 재단한 사람들과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인터넷 공간에 숨어 누군가의 외모를 품평하는 게 일상화된 작금의 시대에 <얼굴>은 무심코 던진 외모 평가가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동시대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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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임영규에 이입해 보면 이 영화는 '모멸감'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취재하러 온 PD에게 "앞 못 본다고 남의 눈을 신경 안 쓴다는 건 일종의 오해"라며 "우리처럼 안 보이는 사람일수록 눈 멀쩡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고민을 남들의 배로 한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발언이다. 임영규에게 '아름답다'라는 개념은 시각적 기준일 수 없다. 그는 타인의 반응을 통해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할 뿐이다. 문제는 이것이 그의 '불행의 씨앗'이 된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임영규는 정영희가 절세미인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정말 그렇게 믿어버린다. 정영희와 결혼까지 한 이유다. 아름다운 여성과의 결혼을 통해 장애인으로서 자신이 겪어온 멸시를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미인이라 했던 주변인들의 평가가 실은 '눈 못 보는 장님'을 향한 일종의 장난이었음을 그는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 삶의 희망이라 여기고 결혼한 여성조차 실은 멸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어릴 적부터 쌓아왔던 상처가 뾰족한 방향으로 폭발해 버린다. 모멸감이란 이름으로. 이 모든 게 결국 자신의 결핍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그 안에 있던 일말의 자존감마저 무너뜨리고 만다.


영화는 타인의 반응으로 미추를 가늠하는 임영규를 통과하며, 여론에 쉽게 흔들리는 불안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폭로한다. 타인을 통해 진실을 가늠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가도 생각하게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알고리즘으로 걸러주고 확증편향을 선물로 안기는 시대임을 상기했을 때, 타인의 평가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인물 설정은 여러 시사점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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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영화는 자극적인 이슈에 몰입하는 김수진 PD를 통해 미디어의 역할을 묻는다. 앞과 뒤가 다른 백주상을 통해서는 "나쁜 사람이 착한 척을 하면 착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느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도 논쟁할 만한 이야기가 넘친다. 다만 연상호 감독은 <얼굴>에 대해 "성장 중심 시대를 겪어온 근현대사에 대한 우화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는데, 임영규의 가족사를 근현대사로 확대해 바라보기엔 거친 면들이 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가 구현해낸 메시지보다 앞서간달까.


<얼굴>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제작 방식이다. 2억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20명의 최소 정예 스태프와 단 12.5회 차 촬영만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감독은 <부산행>을 만들었던 천만 감독 연상호이고, 주연배우는 충무로의 허리를 떠받치고 있는 박정민(그는 이 작품에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인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만드는 사람들의 뜻이 모이지 않았으면 실현 불가능했을 실험적인 프로젝트다. 작은 사이즈의 영화로도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얼굴>이 증명해 보일지 주목된다.


확실한 건 <얼굴>은 연상호의 작업 방식이 한층 더 유연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에서 블록버스터로, 그리고 일찍이 OTT로도 선회해 몇백억원대 시리즈를 선보인 감독이 2억원대 예산의 영화로 껑충 뛰어내리는 추진력을 보면서 새삼 연상호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업계의 시류에 굉장히 잘 올라타기도 하고, 반대로 거스르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창작 돌파구를 찾아내려는 사람. 지금 연상호의 얼굴(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시사저널>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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