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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Dec 27. 2022

<재벌집 막내아들>은 왜 용두사망 드라마가 되었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JTBC)이 끝났다. 명품 드라마 반열에 오를 기회를 막판에 스스로 걷어차면서. 시청률이 26.9%(닐슨코리아 전국유료가구 기준)까지 치솟은 마지막 16회가 방영되는 동안 에스엔에스(SNS)와 드라마 커뮤니티는 흡사 민원 폭주로 아수라장이 된 성토장 같았다. 진도준(송중기) 몸에서 깨어난 윤현우(송중기) 입에서 “이젠 안다. 빙의도 시간여행도 아니다. 그건 참회였다. 진도준에 대한 참회, 그리고 나 윤현우에 대한 참회”라는 대사가 나오는 순간엔 분노의 덧글이 불기둥처럼 치솟아 공습 직후의 전쟁터가 됐다. 이 결말은 최선이었을까.      


창작은 본래 경계 없이 열려 있는 것이니 (윤현우가 죽고 진도준이 사는) 원작 웹소설 엔딩과는 굳이 비교하지 않겠다. 중요한 건 각색 과정에서 시청자가 용인할 만한 합당한 설계를 했는가이니 말이다. 그 점에서 드라마 엔딩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드라마는 1회와 16회 두 편만 봐도 하등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2회~15회까지 쫄깃하게 이어지던 진도준의 빌드업 서사를 똥째로 날려도 결말은 관람하는 데 무리가 없다. 흙수저 윤현우가 금수저 진도준의 삶을 살지 않았어도 결말 판도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건데, 이건 좀 너무 허무하지 않나. 15회 동안 달려온 재벌에 대한 세계관과 그 안에 응축돼 있다고 믿었던 양면적인 문제의식을 스스로 배반한 꼴이기도 하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재벌집 ‘머슴’에서 재벌집 막냇손자로 환생한 주인공이 전생의 기억을 무기로 허들을 척척 넘는 모습으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녹이면서 미래를 아는 주인공이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정서 속에서 상상으로나마 ‘제2의 인생’을 살아보고픈 대중의 열망을 건드리던 드라마는, 그러나 마지막 회에 이르러 ‘참외’라 쓰고 ‘이 모든 건 꿈이었다’로 읽히는 결말로 판을 뒤집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발현된 문제는 캐릭터 붕괴다.     


연인 진도준을 죽인 범인을 찾겠다며 20년 넘게 검은 옷만 입고 다니던 검사 서민영(신현빈)이 사건 해결 직후 세상 청순한 옷을 입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진도준 사망에 개입한 윤현우 앞에서 활짝 웃는 기이한 모습은 그렇다고 치자. 결정적인 건 윤현우의 기억을 간직하고 살았던 진도준 캐릭터에 대한 물음표다. 윤현우가 순양가에 머슴처럼 충성하다 죽임당할 뻔했던 남자일 뿐이라고 규정하기 이전에, 이 인물이 IMF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서민이자, 사채를 갚기 위해 ‘투잡’을 뛴 실질적 가장으로 그려졌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서사가 윤현우에게 부여한 건 ‘한 흙수저 개인’보다 ‘사회 시스템 피해자’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리고 이는 진도준으로 2회차 인생을 살게 된 주인공이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발현하는 데 있어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했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이런 면죄부가 사라진 진도준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진도준이 윤현우가 아니라 그저 진도준일 뿐이었다면? 그렇다면 그가 재벌 응징을 위해 부동산과 주식을 운용한 방법은 그가 그토록 배격한 집안사람들이 부를 축적한 방식과 다를 게 무엇이었나. 진도준이 앞서 경험한 정보를 이용해 위기를 뚫고 간다는 판타지는 힘없이 철수하고, 워런 버핏도 울고 갈 투자의 신이었다는 판타지만 남았다.     


드라마에서 시청자의 가장 큰 열광을 이끌어낸 인물이 순양그룹 진양철(이성민) 회장이라는 지점도 결말의 선택과 불협화음을 낸다. 드라마를 사전 제작하면서 제작진은 진양철의 인기를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재벌을 너무 미화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까 조심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쩔 수 있나. 시청자가 진양철에게 깊은 호감을 느껴버린 것을. 이는 이성민이 연기를 너무 잘해낸 영향도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을 바라보는 지금 시대의 시선도 작용했다. 드라마에서 진양철은 악독한 자본가이기 이전에 자신의 능력 하나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부를 쌓아 올린 인물로 그려진다. 사회 전반에 반재벌 정서가 있는 건 사실이나, 동시에 대중은 성공 신화에 열광한다.     


그런 진양철의 꿈은 단 하나. 자식과도 같은 순양을 지키는 것. 그것이 ‘장자승계’라는 자기 안의 원칙을 깨고 손자 진도준에게 순양을 넘기려고 한 이유였다. 그러나 드라마 결말에선 그 바람과 달리 순양이 전문 경영인 체제로 바뀌었으니, 진양철에 감정 이입을 깊숙이 한 시청자는 애매한 상황에 던져져버렸다. 이것이 ‘부의 세습’보다 옳은 방향이란 걸 알기에 통쾌해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저승에서 울고 있을 진양철이 더 신경 쓰이는 이상한 상황인 것이다.     

되짚어보니,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도준과 의기투합했던 투자 전문가 오세현(박혁권)을 통해 여러 차례 복선으로 깔아놓았다. 오세현은 <타이타닉> 투자를 결정하며 이야기했다. “부자들이 골탕 먹는 얘기야. 사람들이 극장에 달려올 수밖에 없어. 현실에는 없는 얘기니까.” ‘메이드 인 코리아’ 딱지가 붙은 주식이 뉴욕 증권시장에서 제값을 못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재벌 경영세습을 꼽으며 이런 말도 했다. “올림픽에 나갈 선수를 뽑는다면서 국제경쟁력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아버지가 메달리스트였는지 딱 그 하나만 보겠다는 말이잖아요?”     


부의 세습이 아닌 능력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그려보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를 뭐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여줘온 것’ 사이의 괴리에는 할 말이 없지 않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흥미로웠던 건 특정한 가치에 편입하지 않고 재벌을 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나름 균형추를 맞추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온 지점이었다. 그랬기에 그 무게추가 막판에 갑자기 재벌 응징이라는 메시지, 그러니까 이전에 흔히 봐온 클리셰로 기울어져 버린 것은 여러모로 아쉽다.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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