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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May 12. 2020

기다림에 관하여-부재 혹은 죽음

주제 : 기다림 (20191115)

기다림


 다시 또 보름달이 떴다. Y는 베란다에 서서 한동안 달을 바라본채로 그대로 있었다. 어느새 날씨가 추워진 걸 Y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오랫동안 밖에 서있기가 조금 힘들다. 

"잘 가고 있겠지?"


 Y와 S가 결혼한지 5년. 러시아에 온지는 4년. 그리고 S가 아주 길고도 먼 여행을 떠난지는 3년,,, 하늘과 별에대한 동경을 수십년 간직해 온 S는 순수한 천문물리학자이다. 전문성과 사회성은 반비례하는 것이었을까, S는 하나에 깊이 몰두할 수 있는만큼 사회적이지 못한 면이 컸다. 반면, 유난히 한가지에 몰입하지 못하고 모든 것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주의가 매우 산만한 그런 Y는, 딱 한가지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배팅하는 S를 향해 존경심이 들었다. 동시에, 연민도 들었다.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그 감정은 둘을 부부라는 세상이 정한 범주 안으로 데리고왔다. 단, 연구가 걱정 된 S는 본인 앞길을 결정할땐, 본인의 연구를 일순위로 정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S의 사회적이지 못한 성향은 해가갈수록 더욱 짙어졌다. 그럴수록 Y는 S를 더욱 지키고 싶었다. Y는 S와 함께하고 싶었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 본인의 꿈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S를 지지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Y의 순애보는 이 둘을 러시아라는 생면부지의 땅에 데리고왔다. Y는 아무것도 배울 생각이 없다. 그저 낙천성만 들고 따라왔을 뿐이다. 그래도 그 낙천성 덕에 생계를 유지하기는 수월했다. 결혼기념일, 생일, 월급일, 처음 만난날, 심지어 입주일까지 축하해야한다며 집 근처 꽃집을 어지간히 간 덕에, 선천적인 낙천성이 발휘되어 주인과 친해졌다. 주인은 배우지 못하고 생계를 열심히 꾸려가는 소시민이었는데, 그래도 Y와 S부부를 살뜩히 초대해 러시아 전통 음식을 대접하고 많은 생활 잡지식을 공유했다. 


 덕분에 S는 본인의 주제인 ‘헤비터블 항성계’라는것에 밤낮을 투자한다. S 말에 따르면 그것이 어떻게 별이 형성되었는지, 더 나아가는 그것으로 우주가 왜 태어났는지 알 수 있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지식과는 상관없는삶을 살아온 Y는 도대체 그걸 아는게 인간사는것과 무슨 관계가있는지 알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된다면, 인간이 왜 만들어졌는지 알 수라도 있는거란 말인가. 

  한편 그 항성계라는걸 확인하기 위해선 21세기의이 삐까뻔쩍한 기술조차 턱없이 부족하고, 가장빠른 방법은 실제 우주로 나가서 확인하는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S는 망설임없이 자진해서 우주를 가겠다고 했다. Y는공감을 할 수도 반박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보낼 수밖에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 뿐이었다. 돌아오는 날짜는 미정. 아무런실패없이 모든 임무를 완수할 경우는 통계상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게 가능한 기적이 일어나면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S는 본인의 능력을 믿으라며 1년 안에 모든 일을 완수하고 올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리고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잘 가고 있겠지?'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생면부지의 땅에서, 홀로 사는것은 Y에게는 많이 버거웠다. S가 너무 보고 싶을때마다 혼자 울며 지샌 밤도 많았다. 돌아갈까 생각도 수도없이 했지만, 지금 집을 팔 자신도, 새로운 터를 찾을 자신도 자신도 없었다. 그래도 많이 웃고 살갑게 지낸 덕에, 작은 가게 상인들과 친하게 지냈고, 애완견 한마리도 들일 수가 있었다. 꽃집 주인에게 러시아어 공부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Y는 안정을 찾아갔다. 기다림이 익숙해진 Y는 가끔 본인이 S를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는다. 까먹었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내면 왠지 S에게미안하고 더 애틋해진다. 1년 이내에 돌아온다는 말은 지키지 못했지만, 센터에서는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S의건강검진표를 보내줬다. Y는 안도감과 희망을 느끼며, S를 기다리는 동안 건강검진표가 오는 날을 또다른 기념일로 삼기로한다.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으면 우주에서도 정보를 받을수가있네?' 

세상은 이미 영상 정도는 기본으로 우주까지 송수신이 가능한 걸 알 턱이 없는 Y였다. 

 저 우주속 한 점에서 골똘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그리고마침내 가까운 훗날 행복한 미소를 가지고 금의환향할 S를 생각하니 Y도 기분이 좋아졌다. S가 보고싶지만, S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보내준 것에 후회는 없다. 

그리고,, 3년전 우주로 출발한 지 며칠만에 우주의 저기압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여 S는 우주 곳곳으로 먼지가되어 이미 흩어졌음을 알 턱이 없는 Y였다.   



Y는 얼마전 B라는 새로운 사람을 알게되었다. 꽃집 주인 대신 잠시 가게를 봐주던 중, 국적이 같아보이는 B가손님으로 들어왔고, 본인과 비슷한 이유로 그리고 비슷한 시점에 이 먼땅에 오게됐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기본적 큰 차이점이 있다면, 지식과는 무관한 Y와 다르게 B는 법조계에서 일하는 대단한 지식파로, 이곳에 오기 전 러시아어를 모조리 다 배우고 왔다는 거였다. 그러나B에게는 정말로 깊고 길던 암흑의 시간이 있었다. B는 배우자인 K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B는 그 사고에 대한 뉴스를 때마침 보고 있었고, 그래서 동시에 사망자 확인 요청 전화를 받았다. 애써 실낱같은 희망만을 붙잡으며 그곳에 가 보았지만, 돌아올때에는 절망뿐이었다. B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허탈함. 아무리 기다려도 만날 수 없다는 그건 도대체 무슨 의미지. B는 그렇게 깊은 우울증의 늪으로 영원히 빠지는 듯 했었다.  


Y는 B에게 힘들었던 시간 얘기를 이미 알고 있다. 되살아나고싶은 B의 본능덕에, 그리고 피나는 노력 끝에 B의 생활은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세상으로 다시 나와 삶을 살 수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본인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다.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많은 성과도 이룰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이제 B는 더이상 아픈 사람이 아니었다. 

Y는 B를 오랜만에 집으로 초대한다. 건강검진표를 보여준다. S가 이렇게나 건강하게 잘 지낸다며 기념을 하는 날이라고 B에게 알려준다. B는 이렇게 불러주고 옆에 함께 있어주는 Y가 고맙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Y는 B가 딱하다고생각하며 왠지 모를 우월감을 느꼈다. Y는 기다리면 언젠가 S를만날수있으니까. Y는 본인이 무척 다행인 사람이고, 보다 더 행복하고 복받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B는 안됐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Y는 B가 사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을 하고있다고 믿는다. B는 괜찮지 않아야만 합리적이라고 믿는다. Y와 다르게 B는 아무리 기다려도 K를 만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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