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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May 12. 2020

물감이 아니라 빛으로,

검정 (20191129)

저는 갈락시아스 마을 11번지에 살고있어요. 여기 갈락시아스에 사는 우리는 별 이라고 불린답니다. 우리는 공전도 자전도 하지 않아요. 근데 저기 머나먼 밀키웨이솔라마을에서 우리 별들을 다섯개나 여섯개 뾰족한 뿔이 있다고 믿는대요. 왜그럴까요? 사실은 이렇게 둥근 타원형인데. 우리는 작고 하얀 쌀 한톨처럼 생겼죠. 엄밀히말하면 모두 하얗다고 말할 순없겠네요. 우리는 살면서계속 색이 변하거든요. 어떻게 변하냐구요?? 옆집인 23번지에는 빨강별이 살고있어요. 완전히 빨간색은 아니고 아직은 연한 파스텔 빨강이랄까. 만약 제가 이 빨간 23번지친구와 꽤오랫동안 논다면, 저도 그 색으로 물이 들거예요. 그렇다고 옆에서 오래토록 시간만 함께 보낸다고 해서 물이 들지는 않아요. 그 별과 내가 비슷한 에너지로 같은 주파수로 진동해야만 물이 드는거죠. 그러니까 짝짜꿍이 잘 맞으면 물이 들어요. 저는 요즘 한동안 27번지 가족들과 함께 밤에 술도 많이 마시고 바이올린 연주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더니 저는 지금 그 가족들처럼 하늘과 연두색 사이의 별이 되려고하나봐요. 그 27번지 가족들은 초록별이거든요. 

아무리 각자의 색이 다양하고, 그 농도도 천차 만별이고, 그 색은 살면서 계속 변하지만, 누가뭐래도 동경의 대상은 하얀별이예요. 순백, 청정 순진무구 ,,, 다른 별들을 물들이지 않는 깨끗함? 뭐랄까,,고상함이 있지요. 그런데 물이 너무 쉽게 들기 때문일까 하얀별들은 하얀별들끼리만 놀아요. 우리랑 같이 있으면 그 흰색이 다칠까봐 늘 피하는것같아요. 하얀별들끼리는 담합을 해서 아기별들을 위한 유치원도 따로 지었답니다. 우리는 그래도 늘 하얀별이 되고 싶어해요. 이미 색이 물들어버린 우리같은 별이 하얀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구요? 하얗거나 하얀별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보이면 돼요. 가끔 하얀별들을 기분좋게 하면 그별들이 ‘옛다' 하면서 같은 주파수로 진동해주거든요. 제 옆집 친구인 12번지는 원래 파란별이었는데,, 하얀별이 너무나 되고 싶어했어요. 그렇게 6억 년동안 하얀별들에게 철썩같이 달라붙어서 결국 하얀 별이 되었답니다. 그 과정에서 12번지 파란별은 우리랑은 절대 놀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더이상 소식은 알 수 없지만, 듣는 소문에 의하면 그친구의 몸은 관성때문인지 계속 파란별로 되돌아 가려고 해서 괴로워한다고해요. 하긴, 우리의 생각 에너지가 색깔을 만들어내는데, 그 생각에너지를 바꾸는건 참 쉽지 않겠죠. 아무튼 그 12번지 친구는 하얀별을 포기할 수 없어서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서 하얀별들에게 잘보이려고 하나봐요. 그러면서 12번지 친구 몸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고 해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있나봐요. 더 많이 쓰면 그 친구가 공중으로 흩어져버리진 않을지 걱정이 되지만, 우리랑 닿을 길이 없어 슬퍼요. 


저는 얼마전에 저쪽 건너편에 사는 검정별을 봤어요. 저 검정별은 우리 마을에서 정말 유명한 친구예요. 우리도 사실 저 검정별을 무서워하거든요. 하얀별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색깔을 띠고 있는 우리인데도 말이예요. 검정별의 검정색은 너무너무 강력해서 조금만 같이 놀아도 우리 몸이 금세 물이 든대요. 그래서 저 검정별이랑 함께 지내는 걸 들켰다가는 왕따가 될지 몰라요. 그런데 저 검정별은 어쩌다가 검정별이 되었을까? 모든 별들과 주파수를 맞춰서 모든 색의 영향을 받았을까? 저 검정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가끔은 혼자 노는 검정별이 불쌍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도 검정별이랑은 놀고싶지 않아요. 왕따가 되는 것은 너무도 싫은 일이고 저는 지금의 제 색깔이라도 지켜야 하거든요. 그래요. 사실은 저도 하얀별이 되고 싶답니다. 노력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은근하게 파스텔 색깔 별들에게 잘 보이려고 늘 신경쓰고 있어요. 파스텔 색깔 별들은 하얀 편이지만 자기들만을 위한 유치원까지 세울 정도로 예민하지는 않거든요. 최소한 저랑 대화는 해줘요. 저는 가끔 16번지 연보라별에게 쿠키를 들고 가서 상냥한 미소를 띠고 노골적이지 않은 선에서 마당 청소까지 해주고 와요. 물론 연보라 16번지 별도 제가 본인에게 잘보이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걸 아는 모양이예요. 노골적으로 마당이 더러운 날 놀러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뭐 별수없죠. 나랑 최소한 주파수가 통하는 대화는 해주니까. 저는 일주일에 네 번정도 그렇게 16번지 집에 갔답니다. 그런데 최근 몇주간 유난히 그 연보라 16번지 별의 마당이 너무도 더러웠어요. 매번 청소하는데 3천년이나 걸렸답니다… 그리고 16번지 별은 자기 얼굴 한번 비치지도 않고 저보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집에 가라고 해요. 그리고 저는 그날은 16번지 친구가 너무 걱정이 되어서 몰래 방 안쪽을 훔쳐봤어요. 아니,,, 16번지 연보라별은 어느샌가 핫핑별이 되어버렸지 뭐예요. 저는 너무 화가났어요. 어떻게 이렇게 성실하게 사는 나에게 이럴수가 있지?? 


너무 속상한 마음에 터덜터덜 집으로 오는 길에 그 검정별을 만났던 거예요. 사실, 검정별 눈을 피해 몰래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검정별이 하얀별 유치원 울타리에 그림을 그리는 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 그림은 너무 아름다운 밀키웨이솔라마을이었답니다. 우리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서 잘 보이지조차 않는데 어떻게 이렇게 그렸지? 그래서 저는 말을 걸어버렸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거는 순간 생각났어요. 더 놀라운 것은,,, 지금 어떻게 하얀별 유치원을 더럽힐수가 있지? 하얀별 친구들을 기분상하게 했다가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구. 난 평생 하얀별이 못 될지도 모른단말이야. 정말 말도 안돼. 저 검정별은 하얀별 집단에서 정말정말 블랙리스트가 되고 말거야. 어쩌려고 블랙…. 그리고 저는 순간 세 가지를 알 수 있었어요. 이 검정별은 하얀별이 될 수가 없지!. 그리고 될 필요가 없구나!. 그리고 난 이 검정별이 부러워! 검정별은 모든것을 흡수해도 그대로 검정별이예요. 더이상 변할 색깔도 없죠. 저는 검정별이 좋았어요. 내가 애써서 잘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됐거든요. 그리고 검정별은 제가 하는 모든말을 다 귀기울여 들어줘요. 그리고 또 검정별은 그림을 정말 잘 그려요. 검정별은 제가 청소하러 가는 시간동안 매일 다른 마을을 구경하고 그걸 그림으로  항상 그렸나봐요. 저는 검정별의 그림을 좋아했어요.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됐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청소하러 가지 않고 검정별의 그림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검정별은 제 음악이 그림과 너무 잘 어울린다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더욱 많이 그렸어요. 저는 제가 음악을 이렇게 잘 만들수 있다는것을 왜 이제까지 몰랐을까요? 너무 신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검정별은 역시나 너무 강렬했던 걸까요? 제 원래 친구들과는 7억년을 같이 보냈고 검정별과는 고작 3천년씩 두세번 놀았을 뿐인데, 제 몸의 색깔이 변하는 걸 친구들이 먼저 눈치챘어요. 왜이렇게 어두운 별이 되고 있냐면서 친구들은 저와 놀기를 싫어했어요. 저랑 함께 놀면 친구들도 점점 검정색이 될거니까요. 저는 너무 슬펐어요. 7억년을 함께 해온 친구들이 저를 왕따시키는 거니까요. 저는 다시 하얀별처럼 밝아질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검정별과 그만 만나고 친구들 사이로 돌아가야할까요? 그렇게 훌쩍훌쩍 혼자 울고 있는데 검정별이 다가왔어요. 그리고는 검정별은 천천히 말을 시작했어요. 

'블랙홀이 뭔지 들어본적 있지? 별이 바깥쪽으로 힘을 내뿜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너무 강해지면 주변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끌어당겨버리는거야. 심지어 우리를 보게해주는 빛까지 다 끌어당겨버려서 볼수가없어. 그래서 검정 구멍 한개만 남게 되는거지. 내 안쪽으로의 힘이 너무 강해서 블랙홀이 생긴다…. 그래서 난 이 블랙홀처럼 내가 검정이된다고 생각해. 아마 사람들은 이 검정의 힘에게 자기를 빼앗길까봐 두려운가봐. 사실 빼앗기지 않는것은 정말 쉬운 일인데. 남의 색이 끌려다니기보다는 자기 안쪽으로 향하는 힘이 더 강하기만 하면 되는건데.,,,'


‘검정별아 무슨말인지 잘 모르겠어.’ 사실 알것도같았는데 평소에 말을 별로 많이 하지 않는 검정별이 조금 어색했어요.

'너도 알다시피 모든 물감 색을 다 섞으면, 검정색이 되지. 마치 지금 별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색을 서로가 서로에게 물을 들이는 것처럼,,, 근데 물감이 아니라 빛을 섞으면 흰색이 되는거 알아? 모든 빛깔을 다 섞으면 하얀색이 되는거지.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때? 우리의 색깔이 수동적으로 ‘받은’ 물감같은 색이 아니라, 각자가 각자의 힘으로 ‘내뿜는’ 빛의 색이라면 말이야. 각자의 별들이 내뿜는 빛, 그 빛이 한꺼번에 비춰지면 그 자리는 흰색이 되는거야.

지금 별들은 남들의 색깔에 영향을 받는데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 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잡다한 색깔들이 다 섞인 진흙탕물같은 검정이지. 그런데 남의 색에 영향을 안 받고 본인의 빛깔을 마음에서부터 내뿜는다면… 그 시선이라면 난 흰색이야. 그러니까 각자의 별들이 남의 기준아닌, 자신의 빛으로 나를 바라볼때(비춰줄때), 난 검정이 아니라 흰색이 되는거야. 그 모두가 되고 싶어하는 흰색.' 


그리고 그때 저는 볼 수 있었어요. 검정별은 저에게 더이상 검정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이 서로를 비추었어요. 그리고 하얗게 빛을 반사하고 있었어요. 그 모두가 되고싶어하는 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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