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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May 12. 2020

먹는 대신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먹다 (20191220)


  나는 폭식증 환자다. 그렇다고 생활에 지장있을정도 심각한건아니다. 감당 가능한 수준이고 아무도 나의 사적인영역은 알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난 뚱뚱하지않다. 성인남자 3인분 음식과 콜라 두병을 매일 밤마다 먹어치우고는 두시간이 채 되지 않아 모두 개워내는 정도다. 먹고 바로 누워있으면 음식들은 위장아래로 바로 갈 수 없어서 그 작업들이 조금 쉽다. 안 좋은 방향인걸 알지만 내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일종의 배설의 해방감은 꽤 나쁘지않다. 내 유일한 의사인 담당 치과의사는 언젠가부터 내 치아와 잇몸이 산성물질에 계속노출되는걸 알아차렸다.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그러고는 바로 나를 상담하기 시작했다. 의사샘은 그런행위를 계속할경우 고작 30대에 모든 치아를 잃고 틀니인생을 살거라고 무시무시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경고했다. 당장 멈추라면서. 나를향한 관심이 꽤싫지 않아서 나는 그러기로했다.  

  사실 나는 알고있다. 내 폭식증의 원인은 포만감을 느끼게하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의 결핍에서 시작된다는걸. 그리고 그 원인은 자존감이 부족한 나약한 나 자신때문이라는것도. 그 호르몬은 밥이나 초콜릿같은 맛있는걸 먹었을때 분비되기때문에, 마지막 한방울까지 짜내서 기분이 나아지고 싶어서 나는 매일밤 이짓을 하고있다는것도. 모든 원인과 과정을 알면서도 이걸 계속하는걸 나를 나도잘 모르겠지만 심각할수준은 아니니까 그냥 한다.  

  의사샘말을 듣고 잠시 멈췄지만, 내 이 본능을 컨트롤할수있는건 잠시뿐. 며칠후 오히려부작용으로 난 기존보다 더 많은 양을 먹게됐다.다만 개워내는 행위만은 관두기로했다. 나에게 이빨은 소중하니까. 그래도 난 그 포만감으로부터나오는 짧은 행복을 포기할수 없었다.  


 그렇게 식도와 치아는 지켰지만 나는 감당할수없을만큼 살이쪄버렸다. 원래 물만먹어도 찌는 이런체질인지는 알았지만 나이가 드니 생각보다 더욱 빠르게 가속화되었다. 사람들이 보기가 싫었다. 달라진 내몸을 요목조목 따져가며 반드시 평가할것이고 너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문제는 따로있었다. 돈이 모자랐다. 내 행복을 위해 투자한다고는 하지만, 폭식하는 횟수가 내급여를 받는 횟수보다 현저히 많아지고 있었다. 난 좋게말하면 프로파일러 안좋게말하면 사기꾼이다. 불법 다운을 하는 사람을 잡아서 정부기관에보고하기전에 가벼운 벌금을 나에게 내고 끝내자 라고 경고하는 일이다. 먹는걸 포기할수도없고 급여는 제한되어있다. 그리고 난 뚱뚱해지는게 너무 싫다. 그래서 나는 광합성패치를 사러간다.  

  광합성패치는 지구를 생각하는 '착한'사람들덕에 제작될 수 있었다. 요즘은 채식주의가 대세다. 오죽하면 같이 밥먹으러가서 육류를 시키기가 눈치보인다.닭고기 섭취자는 그나마 착한편에속한다. 돼지고기 메뉴를 시키면 중범죄지은 사람마냥 다들 쳐다본다. 고기를 먹으면 환경이오염돼. 동물을 생각하자.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플라스틱을 사용하지말자.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진짜 모르는걸까? 진짜 환경을 위하는 일은 숨만쉬어도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우리 인간이 없어지는거라는걸. 환경은 핑계일 뿐이다. 근데 진짜로 환경을 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환경을 위해 식물처럼 살려고 노력했다. 식물은 햇빛 물 말고는 다른걸 먹지 않는다. 그런데도 성장하고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할뿐아니라 깨끗한 산소를 내뿜어공기를 정화하는 완전 생물체다. 그들이 투자해 만든 광합성패치는 동물실험까지만 마쳤으며 비주류 상품이기 때문에 나같은 폭식증환자들에게 임상실험 겸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밖으로 나가려는데 비가온다. 하늘도 잿빛과 황토색이다. 별것도아닌 비오는 궂은 날씨. 나는 자연스럽게 빨간우산을 펴고 길을 걸어갔다. 내 뚱뚱한 몸을보고 나를 깔보는 간호사들을 뒤로한채 몇가지 부작용에대한 가능성이 적힌 용지를 들고 빗길을 걸어왔다. 이 패치를 삽입하면 나도 정말 광합성을 할수 있는거다. 음식도먹지않고 그럼 살이빠질거고 물과 햇빛만으로 삶을 유지할수있을거다.  

  생각보다 살은 빨리 빠졌다. 물만 먹고 볕좋은 점심에 두세시간 누워있었을 뿐인데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삶에 필요한 호르몬과영양소가 생성되는것 같았다. 가장 편리한건 화장실에 갈 필요가 없는거다. 생각보다 화장실가는 시간은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단걸 깨달았다. 집의 이산화탄소를 내가 흡수하고 맑은 산소를 내뿜으니 집안이 생기돌고 머리도 맑아졌다. 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루에 두세건인 사냥은 열건으로 늘릴수있었다.  


  그런데 그 부작용이라고 하는것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목이 너무 말랐다. 피부가 미친듯이 타들어가서 사막마냥 얼굴이 갈라질것만 같았다. 그리고 티가 날 정도는 아니지만 낯빛이 약간 검붉어졌다. 얻어맞아 물든 피멍처럼 온몸이 초록생 멍으로 번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몸이 날씬해지다못해 앞뒤로 짜부되어 얇아지고있다. 날씬이아니라 납작해지고있다. 그리고 나는 행동이 눈에띄게 느려졌다. 순간 든 생각은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것.. 내 몸은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임을 줄이고있다. 그렇게 생각까지 느려진다.   

  그렇게 적당한 이득과 적당한 부작용을 가진채 시간이 계속 흘렀다. 내가 인식하지 못한사이 나는 더욱 느려졌고 다른 빠르고 얍삽한 애들에게 사냥감을 계속 빼앗겼다. 몸은 계속 납작해지고 초록 멍이 심해져서 밖에 나가는게 꺼려진다. 목은 계속 타들어가서 수돗물을 십분에한번 마시러간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초록색 설사를 하게됐다. 매뉴얼을 확인해보니 햇볕부족..하긴 생각해보니 꽤 오랫동안 계속 집에만 있었다. 모자를 쓰고 몸이안보이게 겨울옷을꺼내입고 밖에나가기전 물을 한병마시려고 수돗물을 틀었다. 그런데 황토색 물을 파삭파삭 뱉더니 그후로는 나오지가 않았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말했다. 옆동네에서 수도관 전체를 사가는 바람에 매일 길라다 마셔야한다고. 한참전부터 현관에 공지했는데 한번도못본거냐고. 가격이 너무 올라서 우리도 어쩔수가 없었다고. 물사가는 대신 그사람들이 인공램프 몇개 선물로주고갔으니까 나도 가져가라고.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화분에 꽂아놓는 그 영양제가 가끔필요할거라는 패치 판매직원 말이 생각났다.

  기운이 쏙 빠진채로 물부터 사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매점앞에서 마시는 수돗물 물한병달라고 했다. 응,,? 나는 내가 잘못들은줄알았다. 천원하던 물한병이 5만원이라고? 심지어 정수되지않은 수돗물 한병이?? 판매원은 요즘 그 광합성패치인지 딱지가 너무 유행하면서 돈많은 사람들이 물시장을 다 먹어버렸다고한다. 정수물은 만원..이라 어쩔수없이 그걸 사먹고 영양제를 사러갔다. 영양제는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테스트하다가 흘리고 간 영양제라도 간신히 조금 얻어왔다. 갑자기 또 복통이오며 초록설사의 조짐이 느껴졌다. 얼른 공원에 가서 태양빛을 좀 쐬야겠다고 조급해진다. 그런데 태양세를 받는단다. 한시간에 십만원.. 아니 도대체 태양세, 빛세, 이게 다 무슨 딴세상이야기인지. 옆에 광합성 패치를 퍼렇게드러내고 광합성을 하는 한 사내가, 국가 자본 70퍼이상을 차지하는 큰회사 세 개가 담합하여 태양빛 사업을 먹었다고 한다. 도대체 내가 설수 있는 곳은 어디란 말이지.

  돈을 다 털어서 저렴한 생수라도 일단 두병을 샀다. 비가오고 있었다. 우산은 쓰지않았다. 나는 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3일동안 내내 비가 왔다. 나는 설사를 계속했다. 옆동네에서 놓고갔다는 인공햇빛을 쬈다. 진짜 태양을 모방해서 밤에서도 해를 볼 수 있도록 먼 옛날 발명했다는 전구라지만 진짜 해에 비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해를 만들수가 없다. 세상에 태양은 한개뿐이며 우리는 도를 넘지 말아야한다. 결국 인간은 이상적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가 없는건가. 나는 무슨잘못을 했을까. 근데 그것보다 대체 다른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생수를 한 병 들이키고 기운이 빠져 자동반사적으로 풀썩 누웠다. 잠이 들것만 같다. 그래 그냥 자자.  

근데 내일 나는 일어날 수 있을까,,,?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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