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의 끝에서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곧 육아 휴직이 끝나는 데 돌잡이 두고 진짜 회사 나갈 거냐며 진지하게 묻는 남편.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되지 않냐는 양가 부모님.
돈도 돈이지만 지난 30년간 살아온 내 인생과 맞바꿔야 하는 앞으로의 또 다른 30년.“
알아요. 그 맘 알아요.
왜 세상은 온통 '나 하나에게만 선택을 강요하는 건지.'
아이를 낳기 전, 당연하게 휴직 후 복직을 할 거라 자신했던 사람들도, 마음 한편에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되지 않을까 아직 결단 짓지 못했던 사람들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내가 벌지 않으면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엄마면 당연히 아이를 직접 키워야 된다고 자신했던 사람들도 모두 같은 고민을 합니다.
왜냐하면, 육아는 너무나 힘들고 고되며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꼭 돈 때문에 회사에 나가야 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전업맘으로 살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은 것은, 전업맘의 삶이 결코 녹록치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30년간 한 방향으로 달려왔던 내 인생과는 근본부터 다른 삶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잘나가던 샐러리맨 시절, 커리어를 결코 놓고 싶지 않았기에, 아이가 태어나면 당연히 누군가(?)에게 맡기고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겠다는 마음이 반, 워킹맘의 자녀로 살았기 때문에 내 아이에게는 그런 인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정확히 반이었습니다. 반반 치킨도 아니고 정말 정확히 마음이 반반이었습니다. 둘 중 어느 결정을 내리더라도 결코 후회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희 엄마는 제가 태어난 지 딱 한 달이 되고나서 바로 직장에 복귀했고, 집에서 시어머니가 함께 살며 저를 키워주셨기 때문에 아이 양육에 대해 전혀 신경 쓸 것이 없었습니다. 허둥지둥 아침에 아이를 준비시켜 어린이집에 맡겨야 할 필요도 없었고, 퇴근 시간에 전전긍긍하며 직장을 박차고 달려 나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유치원에서 엄마를 부르더라도 언제나 대체재인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요리와 청소, 빨래, 아이 양육까지 풀코스로 모든 것을 도맡아주신 할머니 덕에 엄마는 오로지 직장일 하나만 매진하면 되는 속편한 커리어우먼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워킹맘은 사정이 다릅니다. 시어머니나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시더라도 서로 각자의 집에서 출퇴근해가며 봐주시는 경우가 허다하고, 부모님의 사정이 생기는 날에는 워킹맘이 휴가를 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이 이유식이며 반찬도 직접 준비해야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청소나 빨래는 부모님 퇴근(?) 후 워킹맘이 직접 처리해야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본인의 커리어가 아무리 소중한 워킹맘이라도, 아니, 생계형이라 도저히 관둘 수 없는 워킹맘이라 할지라도 직장을 때려치우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워킹맘의 몸은 하나뿐이니까요.
한편, 아이는 엄마가 꼭 키워야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를까요? 아이가 태어나면 정말 잘 키울 자신이 있었는데, 집에서 편하게 생활비 받아쓰면서 아이만 잘 돌보면 되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애를 낳아 1년 정도 키워보니 중노동도 이런 중노동이 없네요. 다시 직장에 나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납니다. 밭 맬래? 애 볼래? 하면 밭맨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가지 마음 모두를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양쪽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그런 후 내린 결정이기에 정말 많은 시간이 들고, 갈등이 있었고요.
처음 준이가 태어나고 1년 동안 저는 완전히 '용수철 인간'이었습니다. 저를 대신해서 애를 봐줄 사람만 나타나면 아이로부터 튕겨나가 저만의 시간을 가지고 아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었지요. 그만큼 갓난쟁이를 키우는 육아는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다시 사회생활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기회만 되면, 여력만 되면 당장 재취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제 마지막 커리어의 연봉이 꽤 높았기 때문에 재취업을 하면 입주형 시터를 쓰더라도 제 월급이 많이 남을 수 있겠다는 계산도 서 있어서 모든 게 가능해보였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마음에 걸리는 그것. 바로 내 아이.
앞서도 밝혔지만 정말 어렵게 얻은 귀한 내 아이. 내가 언제부터 내 아이를 천덕꾸러기처럼 취급했었나? 반성이 되고 미안해집니다. 말 안통하고 떼쓰고 말썽만 부려 밉지만 한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얄밉 종결자 내 아이 때문에 얘를 떼놓고 다시 '구직'을 하자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은 꾸준히 왔음에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제가 과도기 시절에 내렸던 결정이 바로 '부업하는 엄마'였습니다. 집에서 부업하며 돈도 벌고 애도 볼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였지요. 허나 애도 보며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부업도 나름의 업무강도가 있었고, 집에서 애를 보던지 애를 안보고 부업을 하고 있던지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가 낮잠이라도 잘 자주면 그 틈을 타서 얼른 일을 끝낼 텐데, 애가 잠도 안자고 징징거리는데, 클라이언트는 납기를 독촉하기라도 하면!! 모든 것은 멘붕, 아이를 혼내고 다그치거나 뽀로로를 틀어주는 등 아이에게 학대 아닌 학대를 하게 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차라리 어린이집에 얌전히 맡기고 그 시간에 일을 끝내는 게 낫지, 애와 같이 있으면서 애를 구박하는 것도 못할 짓이더라고요. 남의 돈 버는 일이 힘든 것은 부업이나 전업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온전한 전업맘의 인생은 그렇게 자의반타의반 시작되었습니다. 도저히 애를 떼놓고 직장에는 못나가겠고, 그렇다고 부업도 안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하니 어쩔 수 없이 전업맘이 되었지요. 하지만 처음에는 자의반타의반이었지만 (이것도 역시 반반이네요) 지금은 너무나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업맘이 워킹맘보다 수월한 측면은 분명히 있지만 전업맘만이 가지는 어려운 면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면들이 인내와 끈기, 의지를 가지고 버티고 이겨내니, 극복이 되더란 것입니다.
제가 전업맘 생활을 어떻게 해? 라고 고민했던 점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내 수입이 없다.
2. 내 정체성이 없다.
3. 육아가 힘들다
4. 하루 종일 티 안 나는 살림살이에 매몰되고 싶지 않다.
5. 인간관계가 재편된다.
1. 내 수입이 없는 것은 지금도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적게 살고 절약하면 어느 정도 숨구멍이 생깁니다. 저는 식대를 많이 아껴서 여유자금을 모으는 편인데요, 여유자금을 모아서 따로 저축을 합니다. 외식을 줄이고, 식재료를 저렴하게 구입합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구매를 계속 미루고요. 그렇게 해서 저만의 잔고를 조금씩 채워나갑니다.
2. 내 정체성이 없는 부분은 시간이 해결할 문제였습니다. 저도 한 3-4년 괴롭고 힘들었지만 아이가 자라고 커가니 '준이 엄마'로서의 정체성에 적응이 되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와의 교감, 엄마라고 믿어주는 그 굳은 신뢰를 온몸으로 받다보면 내 정체성보다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더 행복할 때도 있습니다.
3. 육아가 힘든 것은 단 3년간의 일이었습니다. 물론 둘째가 태어나면 3년 추가겠지만 아이를 하나밖에 낳지 못한 저로서는 만 36개월이 지나자 육아가 너무 쉬워졌습니다. 익숙해지기도 했고, 잘하게 된 면도 있습니다. 잘하게 되니 더욱 육아가 쉬워졌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내 시간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육아 때문에 힘들어, 애보기 싫어 밭매겠다는 마음은 싹 사라졌습니다.
4. 살림도 늘더군요. 요리는 빨라지고, 청소도 무리한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타협하니 한결 낫습니다. 살림하는 주부로서의 정체성보다,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에 방점을 찍으니 살림살이에 그렇게 목매지 않게 되었습니다.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인 것이 살림입니다.
5. 나와 뜻이 맞는 엄마들을 만나니 새로 맺은 인간관계도 즐겁습니다. 물론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거나 사고방식이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지인으로 두게 되었고, 그들과 교류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렇게 품었던 고민들이 하나씩 서서히 해결되어 나가니 전업맘 생활만큼 보람된 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내 아이가 너무나 단단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꽃피우기 위해 내가 거름이 되는 것이 비참한 것이 아니라, 즐겁고 보람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이상의 은퇴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정년을 채운 은퇴이든, 그렇지 않든 그 누구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저는 조금 이른 은퇴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은퇴 후의 삶을 설계하고 조금 후에 제 2의 인생을 살 것입니다. 제 꿈이 회사원이 아니었듯이, 회사생활이 끝났다고 해서 이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회사원이 아닌 다른 인생이 제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지금 숨고르기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회사원으로서의 최대 생존기간은 끽해야 20여년입니다. 그 중 반절을 달려왔으니 이제 10년이 남은 것인데, 그 10년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또 짧은 것입니다. 아이가 열 살쯤 되면 어차피 끝나게 될 직장생활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아이가 어려서 엄마 손길이 더 필요할 때 함께 있어주는 것이 앞으로 사춘기를 맞이하고 성인이 되어갈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에게도 은퇴는 옵니다. 먼저 은퇴해본 사람으로서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에 남편을 함께 끼워줄 여유도 가져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서 부모 손을 덜 타게 되면 그 때쯤 은퇴하게 되는 남편과 함께 해볼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먼저 준비된 사람으로서 남편을 잘 이끌어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