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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톤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재밌다

by 최안나

드디어 해커톤이 끝났다. 이 여운이 다 사라지기 전에 얼른 기록해둔다.



해커톤 신청기

AI 해커톤 공고를 봤을 때, 맘 한켠에 참여는 하고 싶었다. 다만 사람을 모으고 신청하는 일이 귀찮게 느껴졌다.
그런데 마감 직전, 팀 개발자들이 해커톤 참여한다기에 나도 뒤늦게 끼어 참여하게 됐다.



팀 구성

처음엔 PM인 나와 백엔드 개발자 두 명이 모였다. 여기에 추천을 받아 마케팅 두 분이 더 합류했다.
PM 1, 백엔드 2, 마케팅 2. 구성만 보면 제법 단단해 보인다.



시작 전의 갈팡질팡

해커톤을 시작하기 전, 먼저 internal(내부 사용자 대상)과 external(실제 앱 고객 대상) 중 무엇을 선택할지 정해야 했고, 우리는 일단 선택 폭이 넓어 보이는 external로 가기로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주제 후보는 많지만, 5명이 모두 납득할 만한 아이디어로 좁히는 과정이 꽤나 지난했다. 투표도 해보고, 모여서 디테일을 털어보기도 했지만 뾰족하게 꽂히는 주제가 없었다. 신선하면서도 현실성이 있고, 고객의 pain point에 맞게 스토리텔링까지 가능한 아이디어라니… 계속 머리를 싸맸다.



해커톤 당일

전날 일부 인원이 모여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아놨지만, 막상 다 같이 모이자 또 주제 논의가 처음부터 이어졌다. “이 해커톤의 핵심 주제는 뭐냐”를 이야기하는 데만 다시 한 시간이 흘렀다.

A: 해커톤 시작했는데도 아이디어 논의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Claude: ㅋㅋㅋㅋ 전형적인 해커톤의 모습입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야 구체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개발자 두 명이 접근 방식으로 한 시간 넘게 논쟁을 벌였다.

A: 고객 인입은 어디예요? 여기서 선택하면 어떤 흐름이에요? 이 화면 구성은요?
B: 아니 그냥 간단 플로우만 그리면 되는데, 지금 단계에서 이 디테일들이 필요한가요?


두 사람이 실랑이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혼자 조용히 플로우를 그렸고, 마케터는 계획서 초안을 정리했다. 그리고 논쟁이 정리된 뒤 그 플로우를 설명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개발자 설득을 다시 반복했다.

나: 고객이 a를 하면 b를 거치고, 그에 따라 c를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어요.
A: 근데 우리 처음 주제는 a를 해서 c를 받게 하자였는데, 이러면 b는 필수가 되고 c는 옵션이 된 거 아닌가요?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남은 시간은 고작 1시간. 그 1시간 동안 모두가 맡은 항목을 쏟아내듯 써내려갔다.


핵심 기능, 범위, AI 활용 계획은 내가,
문제 정의, 기존 솔루션 분석, 사용자·비즈니스 가치 정리는 마케터가 담당했다.


결국 마감 1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계획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1차 AI 심사

저녁 식사 후, 1차 AI 심사 결과가 발표됐다.

26등. (대략 1/3 수준)

“꼴등만 아니면 돼”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높은 순위였다. 왠지 팀 분위기가 갑자기 달아올랐다.


계획서만 넘기니 개발자들이 있어서인지 그 다음 작업들은 확실히 빨랐다. 개발 환경 세팅은 이미 되어 있었고, 프롬프트를 통해 프론트 화면을 만들고, 결과를 보며 다시 개선해나가는 방식이었다. 생각보다 AI가 개발 결과물을 빠르게, 또 꽤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디테일은 몇 번 손봐야 했지만.



2차 심사위원 심사

심사위원이 팀들을 돌아다니며 3분 발표와 시연을 듣고, 1분 동안 Q&A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마케터의 스토리텔링 플로우에 맞춰 발표와 시연을 두 번 진행했다. 큰 탈 없이,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종 3차 임원 심사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해커톤이 끝난 후 남은 생각들

1. 해커톤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 우리 팀 주제가 새롭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예상보다 높은 순위를 받았다.

결국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풀어냈는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심사위원이 어떤 사람이냐도 꽤 큰 변수로 보였다.(심사위원에 데이터분석가가 있는 팀은 데이터 관련 Q&A가 깊게 논의됐다고 한다.)


2. 마케터와 함께한 구성은 정말 좋았다.
PM으로 오래 있다 보니, 도메인의 지식과 구현 가능하고 실제 의미있는 기능이냐에 계속 갇혀 있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마케터 두 분은 그런 제약 없이 아이디어를 던져줘서, 사고가 확 열렸다.
(다음 해커톤에 또 참여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디어 논의에서 내 의견은 너무 밀어붙이지 않아야겠다는 작은 반성도 했다.)


그리고 숫자 감각이 좋은 동료가 있다는 건 진짜 큰 장점이다. ROI나 매출/비용 정리가 훨씬 빠르고 깔끔했다.


3. 매일 보던 개발자들의 새로운 모습도 좋았다.

나: 우리 팀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요?
A: 안되면 그냥 연차 내는 거죠, 뭐.

진짜 그렇게 할 리는 없지만, 가장 많은 고민을 하고 신경을 쓴 건 A였다. 해커톤 당일 11시에만 오면 된다고 해놓고, 결국 제일 먼저 와서 모니터까지 세팅해놨다.


4. AI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평소에도 가끔 쓰긴 했지만 실무에 깊게 녹여본 적은 없었다. 이번 해커톤을 거치며, 내가 하는 여러 반복적 고민을 AI가 어떻게 덜어줄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마무리

돌아보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게 아쉽다.

그리고 우리 팀은 흔히 말하는 ‘밤새는 해커톤’을 하진 않았다. 체력 싸움까지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부딪혀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중간에 스트레스를 받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일상적인 루틴을 잠시 벗어나 시야를 넓히는 데엔 충분히 값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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