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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Aug 12. 2019

좋아하는 일에 재능이 없는 나는,

어설픈 재능으로 천재들 사이에서 닭 같이 살기로 했다.

살다 보면, ‘내가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믿음이 견고 해지는 순간이 있다. 상을 받을 때, 감탄 어린 시선을 받을 때, 남들보다 빨리 끝마칠 때, 어른들이 해보라고 부추길 때 등. 


내게는 글쓰기가 그랬다. 책을 좀 읽는 애였고, 그래서 글도 좀 쓰는 애였다. 무럭무럭 자란 기대감이 썼다 하면 베스트셀러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정점을 찍을 무렵,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했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전공학점은 꽉 채워 들었고, 졸업학점까지 얼마 남지도 않아서 학교에 왔다 갔다 놀러 갈 때였다. 마지막 학기라는 특별함을 이유로 나는 가장 듣고 싶었던 문예창작과 수업을 수강 중이었다.     


과제는 단편소설 읽고 감상문 쓰기. 교수님은 매주 잘 써온 감상문의 일부분을 빔프로젝터 스크린에 띄워서 읽어주시며 소설을 감상하고 해석하셨다. 글이라면 자신 있으니까. 나는 내 감상문이 스크린에 자주 오르내릴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도 내 감상문은 언급되지 않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임팩트가 없었나. 안 뽑힌 내 글만 생각하느라 다른 이의 감상문을 안 볼 때가 많았는데 그 날은 단편소설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스크린에 띄워진 감상문을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 이 사람 진짜 잘 쓴다.’ 게시판에 감상문을 올리기 때문에 올린 사람의 이름을 볼 수 있는데 거의 주마다 뽑힌 감상문을 쓴 사람이었다. 졸업한 지 오래돼서 지금은 감상평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감상문을 읽던 순간은 기억난다. 내 애매한 재능으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진짜 천재의 재능을 목도한 순간.     


샤이니라는 그룹의 한 멤버가 그랬다지. 선척적인 재능으로 우아하게 사는 백조가 있다고. 그 날 스크린에 띄워진 감상문의 주인은 백조였다. 그런 백조를 따라잡으려 나는 애를 썼다. 길게도 써보고, 비슷한 느낌을 흉내 내려고도 해보고, 감상문 과제에 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런데도 뽑히지 않았다. 백조가 되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나는, 여전히 닭이었다.     



호수에서 우아하게 헤엄치는 백조들 사이에서 헤엄치고 있는 '닭'인 나를 발견한 거예요.

각 직업에는 백조와 닭이 있어요. 

제가 제일 슬프다고 생각하는 건 닭이 백조를 쫓다가 백조가 못 되고 죽는 게 아니라, 

닭이 닭답게 못 살고 죽는 게 너무 슬픈 일이라고 생각해요. -키, 말하는 대로 中      


노력해도 안 된 다면, 닭이 쓸 수 있는 글을 쓰자. 나는 따라잡기를 포기했다. 있어 보이려는 노력도 접었다. 어쩌면 체념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고 몇몇 구절을 빌려다 내 생각을 썼다. 정말 감상(鑑賞)문을 썼다. 매주 강의실에 올 때마다 하던 기대를 접고 수업을 듣던 날, 여전히 빔프로젝터 스크린은 켜졌고 몇몇의 감상문이 상단에 올라왔다. 교수님은 차근차근 한 문단을 읽어주셨다. 그 문단은 닭인 내가 쓴 글이었고, 처음으로 스크린에 띄워진 감상문이었다. 어설프지만 진짜 내가 담긴 글이 읽히던 날 나는 내가 닭이 맞다는 사실을 인정했었다.      


그 뒤로 학기가 끝날 때까지 잘 쓴 사람은 여전히 잘 썼고 나는 여전히 못썼다. 그래도 기뻤다. 문창과도 아닌데 문장이 뭔지, 소설이 뭔지, 감상이 뭔지 알 게 뭔가. 소설은 원래 정답이 없는 하나의 우주인 것을. 이 본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건 뿐이라는 걸 배웠다는 걸로도 마지막 학기는 충분히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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