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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Dec 02. 2021

반도체 글로벌 밸류체인의 붕괴 가능성

미-중 간의 경쟁이 글로벌 밸류체인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정권이 교체할 시점이 되면 사회 다각에서 정책 제언을 모은 책들이 출판되곤 한다. 최근에 출판된 '정책의 시간 by 원승연 외 (생각의 힘) (첨부 이미지 참조)'도 그런 책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앞으로의 첨단 산업 분야에서의 G1-G2 분쟁이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혹은 글로벌 밸류 체인)에 대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아래와 같이 예측하고 있다.

최근에 출간된 '정책의 시간 (생각의 힘)'

"기존의 미중 경쟁이 자유무역과 다자체제라는 네트를 가운데 두고 벌이는 배구였다면, 이 종목은 더는 미국에 유리하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배구의 규칙을 더 잘 활용해온 것은 중국이었다. 미국으로서는 자유무역체제 아래에서의 산업 경쟁력을 넘어, 현재 미국이 가진 다양한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게임, 가령 이종격투기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 이익이다. 미중 간 게임의 종목을 배구에서 이종격투기로 바꾸는 것, 이것이 중국과의 체제대결을 선언하고 신냉전 구조를 구축하는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미중 간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진행되고 있다는 해석도 등장했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시장이나 생산능력을 활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미국에도 이로울 게 없다. 미국이 추구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이라기보다는 중국과 글로벌 가치사슬 사이의 디커플링이다. 즉 중국이 글로벌 가치사슬을 활용하는 비용을 높임으로써, 그 안에서 빠르게 위상을 높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미국의 의도라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두 번째 문단은 반은 맞고 반은 좀 아닌 것 같다. 원문에서 언급했다시피 미-중 디커플링은 글로벌 밸류체인과 따로 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다. 다만 미국이 주도하는 산업에서의 글로벌 밸류체인이 그간 잘 작동했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던) 이유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시장이자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었던 점, 그리고 두 역할 모두 굉장히 크게 성장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밸류 포션 이야기를 따로 심층적으로 다루기도 했지만 (https://brunch.co.kr/@sjoonkwon0531/103), 중국은 이미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2위의 시장이자 최대 생산기지고,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글로벌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도 최대의 반도체 교역 상대국이다. 미국 역시 다른 산업에서는 적자일지 몰라도, 적어도 반도체 관련해서는 꾸준히 중국에 대해 큰 이익을 보고 있는데, 만약 미-중의 디커플링이 중국을 아예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떼어 놓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은 물론, 미국도 비용의 급상승으로 인한 피해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의 대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은 상황이고, 특히 한국에 있어서 반도체 회사들 뿐만 아니라 첨단 IT 관련 산업들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것, 그리고 계속 높아지고 있던 상황은 우려할만한 위험 요인은 맞다. 그렇지만 그것은 글로벌 밸류체인 내에서 경로 다변화를 통해 획책할 일이지, 플레이어 (노드) 하나를 완전히 떼어내는 방향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지금 글로벌 반도체 산업, 그리고 나아가 IT 산업에 점점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형국인데, 만약 중국의 완전한 밸류체인 탈락이 정말 현실화되면 급등하는 비용으로 인해 밸류 체인은 붕괴될 위험도 있다. 2021년 바이든 정부 들어 미국이 전략적으로 반도체 산업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부 생산 시설 (예를 들어 10 나노 이하급 파운드리)를 자국으로 리쇼어링 하거나 동맹국들의 업체를 파격적 대우를 해가며 적극 유치하는 것은 당연히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그렇지만 미국이라고 해도 반도체 산업의 A-Z까지를 모두 독립적으로 이끌고 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정치와 이념을 떠나, 경제적 실익이 너무 확실하기 때문이다.


사견이지만, 미국이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중국이 글로벌 밸류 체인의 활용 비용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국이 주도하는 밸류체인의 키 플레이어로서 남기되,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제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지금 실행하고 있는 기술 제재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기술 IP 선점과 표준 선점, 그리고 무역 제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이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빠짐으로써도 비용은 급상승하지만, 그들이 밸류 체인에서 고비용 구조로 남게 되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방식 역시, 전반적인 비용의 상승을 불러오고, 일부 산업의 자국 전략화를 추구하게 되면 비용은 더 상승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이든 lose-lose 게임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라면 자국의 영향력과 국익을 지키면서도, 중국이 밸류체인 안에 남아 있게 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으로 가장 실리적인 방식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중국이 경제적 원리가 아닌, 정치적 원리에 기대 이러한 미국 주도의 시스템에서 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는 시점에서는 이미 글로벌 밸류 체인의 안정성을 논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 될 것이다. 중국이 미국에 대항하여 자국의 영향력이 투사될 수 있는 지역이나 국가들 중심으로 밸류 체인을 만들 가능성도 있고 (물론 생긴다고 해도 미국 주도의 체인에 동급으로 올라서려면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다.), 나아가 표준 선점을 중국의 방식으로 이끌고 갈 수도 있는데, 설사 그것이 중국이라는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은 자국의 내수 시장과 지속적인 성장 잠재력을 기대하며 버티기 전략을 취할 수도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미국 주도의 밸류 체인에 속한 회사들, 국가들은 철저하게 전략적 판단을 다양한 시나리오에 맞게 취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회사 대 회사, 국가 대 국가, 산업 대 산업의 연결고리에서의 자금과 기술, 에너지와 소재의 흐름을 모니터링해야 하고, 언제든 불확실성이 증폭될 수 있음을 상정해야 한다. 미-중의 G1-G2 다툼에 대해, 두 세력의 time-scale이 확연하게 차이 날 수 있음, 산업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 기존 산업의 상호 의존도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 disruptive 기술의 출현 빈도가 증가할 수 있음 등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미국은 짧으면 4년 만에 정권과 국가 정책이 바뀔 수 있지만 중국은 10년-20년의 호흡을 가져갈 수 있고, 기존의 제조업 중심 첨단 산업의 성장은 이제 IT, 그중에서도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심으로 phase가 바뀌고 있고, 기존의 수요-공급에 맞춘 밸류 체인은 신기술이 파괴적으로 창출하는 시장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새로운 수요로 대체될 수 있으며, 신개념 기술은 언제든 출현하여 기존의 산업이 하루아침에 붕괴될 수 있음을 더 적극 고려해야 한다.


한국 같이 수출 주도로 산업을 일으키고 앞으로도 국부의 많은 부분을 외국과의 교류에서 창출해야 하는 나라 입장에서는 이러한 전략적 판단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프레임을 미-중 간의 갈등에만 맞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문명의 변화 방향과 무게중심의 이동, 기존의 시스템의 변화 가능성, 그리고 계획을 언제든 상황에 맞게 고치고 또 고쳐서 다시 실행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차기, 차차기 정권에서 더 실속 있게 고려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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