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정 분야에서 완벽주의가 강하다. 대표적으로는 글쓰기. 논술, 논문, 보고서 등 논리적인 형식을 요하는 글에 대해 완벽주의가 심하다. 국어교사였던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만 그전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 (일상적인 생활글은 너그러움. 또 이런 성향에 걸맞게 국어 과목 중에서는 문법을, 학창 시절엔 수학을 가장 좋아했다.)
가령 상담 대학원 다닐 때, 학점이 짜다는 연구 보고서 쓰는 수업에서 수강생 중 유일하게 A+을 받았는데, 몇 달간 온종일 그 글쓰기만 생각만 하고 살았다. 쓴 글을 합평하는 시간에는, 내가 논술 채점위원도 아닌데 자꾸 다른 사람들 글에 빨간펜 긋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껴서 내적 갈등이 심했다. 고쳐쓰기 원리에서 벗어난 글을 계속 읽다 보니 숨통이 갑갑해서, 내가 못된 거 같은 느낌에 자책도 했다. (국어교사들 사이에서 있었을 땐 잘 못 느꼈던 갑갑증..)
나의 이런 강박적 성격은 교과 교사 시절 지필 고사 출제와 검토, 생기부 작성, 아이들 자소서 검토 등을 할 땐 크게 유용했다. 적성에 맞기도 했고. 이외에도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생각하곤 하는데, 담임할 때 학급에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들이 있으면 하루 종일 그 아이들만 생각했고 계속 상담했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노력파에, 성실한 사람은 아니다. 되게 덜렁거리고 굉장히 빈틈이 많은 사람인데 유독 몇 분야, 꽂힌 주제에 대해서만 강박이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내가 꽂혀 있는 일을 빼고는 구멍이 숭숭 뚫린 사람이란 이야기이기도 하다. 뭐에 꽂힐 땐 그것만 보이니깐 삶의 균형감각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문제다.
아무튼 지금 이러한 완벽주의가 발현되는 영역은 인테리어인데 하루 종일 이 생각만 하니 정신적으로 상당히 지쳐서, 지금은 이런 나 자신을 좀 제어하고 싶다. 속으로 "stop"을 자꾸 외치며 자신을 제어하려 노력 중이다. 업자분들이 내게 논문 쓰듯이 인테리어 공부를 했냐고 하셨는데, 조사하고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해서 확신 있게 결정을 내리는 성격도 아니다. 결정을 내리지 않는 P 성향인데 마감 시각이 임박해서야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결정 지연'은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내적 압박감과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에 쓴 것 외에도, 인테리어하면서 내 성격이 정말 많이 드러나기에 모 업체 분과 대화하면서, 나에 대해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았다. 내가 결혼을 늦게 한 원인을 이것에서 찾을 수도 있다. 뭔가를 잘 해야겠다 결심한 분야에 대해서 나는 ㅡ
1. 생각이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이럴까, 저럴까 등등 수많은 경우의 수들을 생각한다.
지난번 한 업체에 고민되는 부분들을 이야기하니, "그걸 왜 고객님이 고민하세요? 고객님은 업체에서 할 고민들을 미리 본인이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라는 얘길 듣고 번쩍했다. 맞아, 내가 그렇구나. 공사의 디테일한 부분부터 업체 사람들 마음이나 입장까지 너무 다방면으로 고려하는 것 같다고, 그렇게 살면 너무 피곤하지 않냐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2. 온갖 선택지를 찾아놓는다. 인테리어 가격적 상담만 30군데쯤 받으며 선택지를 늘려 놓았다.(턴키/개별 공정/컨설팅 업체 다 합쳐) 이후 인테리어 하면서도 여러 변수와 대안들에 대해 너무 생각을 많이 해놓는다. 가령 화장대 디자인만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고민한다. 아래 서랍장은 몇 개로 할 것인가, 앞에 거울 수납장을 할까? 안 이쁜데? 그럼 옆에 펜던트 조명 넣고 원형 거울을 걸까? 그럼 수납은 어떡하지? 위에 플랩장을 넣고 조명 거울을 넣을까? 뒤판은 템바보드로 할까, 말까? 서랍장은 목찬넬로 할까, 손잡이를 할까? 등등... 뭐 하나 선택할 때마다 이러니 참 피곤하고 나와 일하는 업자 분들도 환장할 노릇인 거다. 업자들은 보통 흔히 본인들이 해왔던 것들을 제안하기 일쑤인데, 내가 또 그걸 선뜻 받아들이는 성격도 아니고 까다롭기까지 하니 말이다.
3. 결정을 보류한다.(결정을 안하고 있다.)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것이다. 결정을 안 하는 것. 실컷 선택지를 넓혀놓고 생각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의사결정을 선뜻하지 않고 망설인다. 망설이는 시간이 굉장히 긴데, 그 망설이는 시간 동안에도 각 대안들의 장단점을 계속 생각한다. 가령 사소한 결정 -필름 색상, 싱크대 상판, 필름 시공 영역 등- 이런 작은 결정도 빨리 안 한다.
4. 한 번 선택한 것을 자꾸 바꾼다. 결정 지연보다 더 골 때리는 것은 이것. 마음이 갈대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 한 번 결정 내린 것을 다시 반복해서 곱씹어 보고 결정을 번복하는 것.
딱 이런 성격이 내 결혼 시기를 상당히 늦추게 한 원인이다. 대학원 선택 시에도 결정을 안 하고 계속 보류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 모든 원인은 완벽주의 때문이다.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더욱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어디 가서 욕먹을 이야기겠지만, 결혼 전 남녀 관계에서 이런 패턴을 반복했었다. 내게 좋다고 고백한 이성들에게 확답을 내리지 않고 어물쩡거리며 시간을 끌어댔고 애매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사귀잔 이야기나, 결혼을 전제로 만나잔 이야기 등이 부담스러워서 최대한 지연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물론 맹목적으로 순수했던 20대가 지났을 때였고, 막 싫지도 막 좋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나왔던 태도였다. (대부분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는 것이 문제) 결혼같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결혼에 대해 무서운 소문을 너무 많이 들어서였고, 완벽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는데,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어차피 100프로 만족이란 것은 없는데, 내가 너무 욕심도, 겁도 많았다는 것을. 2-30대 나는 내 깜냥 대비 이성에게 인기가 꽤 많은 편이었는데, 나같은 성격에 이런 인기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던 거 같다. (내 친구 한명은 내게 좋은 기회 많이 날렸다고 했는데 지금의 남편이 운명인가보다.)
최근 인테리어 하면서 여러 업자 분에게, 그리고 우리 엄마에게도 이런 이야길 들었다.
어떻게 모든 걸 선택할 때 100프로 만족해야 되느냐고. 90프로 만족하면 안 되는 거냐고.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면서 또 바꾸면 되는 것 아니냐고. A를 선택하나, B를 선택하나, 인생 사는 데 그렇게까지 큰 차이 없다고.
왜 나는 이토록 이런 작은 결정 하나하나가 어려울까? 필름지 샘플북 가져가서 화이트 계열 시공 사진들을 쭉 주말 내내 하루 열 시간씩 찾아볼 일인가? 이와 관련하여, 연세대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님 책이나 정신과 의사인 하지현 선생님 책을 본 적이 있는데 귀결은, 역시나 완벽주의 성격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논리를 요하는 글쓰기 검토를 좋아하고 잘하는 이유는 '계속 수정이 가능하다'라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 또는 타인이 쓴 글을 계속 검토해서 고쳐 쓰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글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한 번의 선택이 아닌 여러 번의 수정으로 '완벽'에 가까운 완성물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 인생이, 내 인생이, 그렇게 수정이 가능하지 않단 생각이 날 붙들어 매고 있는 것 같다.
결국은 완벽주의, 강박, 우유부단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이것만큼은 절대 실수하지 않겠단 완벽주의로 인해 선택지를 늘려놓고 검토하고 검토하다 보니 내 생각에 갇혀버리고 의사결정은 지연된다.
실은 최상의 선택을 하기 위해 의사결정을 지연시키지만 지나고 보면 내가 대안으로 올렸던 또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졌을 거 같지는 않다. 그 당시 그토록 고민해서 결정한 선택도 최선이거나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직업 선택할 때나 대학원 결정할 때나 혼자 장단점 표를 만들어 머리 싸매고 고민했지만,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내 인생이 엉망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게 더 좋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정신과 의사 하지현 선생님 글에서 이런 내용을 봤던 것이 기억이 난다. 선택하는 데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에너지를 쏟아버리면, 결국에는 지쳐서 막판에 엉뚱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정말 최악은 내가 그렇게 인생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인데, 그런 생각까진 안 하려고 한다. 신께서 내게 최악을 주진 않으셨으리라 믿는다.
내게 필요한 일은, 내 인생관에 크게 중요치 않은 일에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것이다. 생각을 비우고 틀리면 좀 어때 하는 마음으로, 과감히 살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