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과 최선 그 너머에 정답이 있었다. 교환학생에 가는 것
아주 먼 길을 돌고 돌아, 하버브리지 앞 야외 레스토랑에서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마치 불가마 사우나에 온 느낌이다. 허나 땀으로 절여진 몸을 감각하는 것도 지금은 인생 최고의 호사로 느껴진다. 나는 지금,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면적이 넓은 나라, 지구상 가장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나라, 그곳에서도 가장 유명한 명소 바로 앞에서 여유롭게 늦은 런치를 즐기고 있으니까.
호주라는 거대한 땅에 와 있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나는 원래 교환학생을 포기한 사람이었다. 호주라는 선택지는 인생에 쓰여있지도 않았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통장 잔고는 해외 생활에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끝없는 대지의 한복판에 서있다. 수많은 고민 끝에 쉽게 포기했던 교환학생 기회를 다시 마지막 티켓으로 잡을 수 있었고, 인생의 새로운 선택지로 호주를 새겼으며, 지난 6개월간 열심히 인턴 생활을 하여 차곡차곡 경제적 능력을 올렸다.
과연 어떤 여정과 계기로, 먼 나라 호주에 교환학생을 올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그 여정을 허심탄회하게 소개해 보겠다.
나는 사실 나는 2년 전까지 교환학생을 포기했던 사람이었다. 포기를 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코로나 19로 인해 교환학생에 갈 수 있다는 희망조차 꾸지 못했다.
두 번째, 코로나가 잠잠해질 시점에도 발 빠르게 준비를 하지 못하여 적절한 지원 시기를 놓쳤다.
두 번째 이유의 경우 조금 더 자세한 맥락이 있다. 22년에 3-1학기를 종강한 후 딱 한 번은 '교환학생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시험을 한 번 응시한 것이다. 여름 방학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원래 iBT 토플보다 쉽고 저렴한 3만 3천 원짜리 ITP 기관 토플을 봤다. 그러나 아쉽게도 부실한 준비로 인해 기관토플 점수는 최소 성적 기준보다 10점이 낮게 나왔다. 보통 3-1학기에 마지막 교환학생을 갈 수 있는 학기인 '4-1학기' 파견을 준비하기에, 3-1학기에 그 기회를 잡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교환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위의 계기로 교환학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같은 시기에 한미 WEST 미국 어학연수 + 인턴 공고를 발견해 하이에나같이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봤다. 행운스럽게도 최종 합격까지 하게 되어 비행기 티켓 표까지 구매하기 직전이었지만 프로그램의 안전성 + 기대 조건이 불확실하여 그 어학연수+인턴 프로그램도 포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에게는 여전히 작은 불씨가 살아있었다. '해외 생활 + 교환학생 파견 + 어학 실력 향상'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는 것. 그것이 코로나 19로 인해 자연스럽게 감춰졌을 뿐 여전히 살아있는 간절함과 희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단지 내 진정한 마음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뿐. 나는 3-2학기가 끝난 2022년 겨울에, 마지막 4학년의 한 해를 앞두고 인생 최대의 고민을 했다. 나는 원래 학교를 1년 다니고 졸업한 다음 바로 취업하는 선택지를 떠올렸다. 그 이유는, 그냥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선택하니까.
그런데 그 관념에 대한 브레이크를 걸어준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엄마였다. 엄마가 대뜸 '교환학생을 갈 수 있는 기회'는 있냐고 물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교환학생? 갈 수는 있지. 그런데 일 년이나 휴학해야 해. 일 년 전에 신청해야 하거든. 근데 나는 졸업할 시기가 다가왔는데 그런 도전을 해도 되나? 너무 늦는 거 아닌가?'
대뜸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은 내 일 년을 송두리째 바꿨다. '내가 네 나이였으면, 너의 시기였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 1-2년 늦는다고 조급해할 필요 전혀 없는데. 왜 도전을 안 해보는 거야?'
차선과 최선 그 너머에 정답이 있었다. 교환학생에 가는 것. 무모하게 1년 휴학을 하더라도 '도전을 해봤냐', '그저 포기했냐'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한 학기 교환학생에 간다고 1년을 준비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늦은 일 또는 큰 도박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럼에도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새로운 대학교로 입학을 하지 않는 이상 교환학생은 정말 마지막 기회니까. 그렇게 휴학을 해서라도 내가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 언어를 배우고, 새 문화를 습득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으면. 그 준비하는 1년은 오히려 그 어떤 해보다 값진 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년은 그야말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준비의 해였다. iBT 토플 시험 응시, 교환학생 신청, 합격, 준비, 인턴 생활을 계기로 교환학생이라는 꿈에 열 발자국 다가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악명 높은 30만 원짜리 iBT 토플을 준비하기 위해 3개월간 공부에 매달렸다. 혼자 문제집을 풀고, 인강을 듣고, 학원을 다니고, 끊임없이 예비 테스트를 보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영어 성적을 확보하니 자연스럽게 4-1학기 교환학생 파견 모집에는 합격을 했다.
그런데 부족한 것은 '금전'이었다. 나는 최대한 부모님의 지원 없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해외에 나가길 원했고, 내가 어떻게든 대략 천만 원을 모아서 한국을 뜨길 바랐다. 그러던 중 너무 감사한 기회로 예전부터 꼭 한번 일해보고 싶은 회사에서 인턴 공고가 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절한 타이밍, 9월에 입사를 했고 교환학생 파견 직전 6일 전까지 인턴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만약 휴학을 1년 동안 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을 충분하게 준비할 수 있었을까. 지나고 보니 무모하게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결정이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보람차고 뿌듯하기만 하다.
또한 행운의 티켓이 하나 더 있었다. 2022년에 내가 국가우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장학생에 선발이 되면 2년 동안 전액 장학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교환학생의 특성상 파견교가 아닌 본교에만 납부를 하면 되었고, 장학생은 0원 등록이 가능했다. 따라서 해외 대학교에서 공부하더라도 학비 없이 파견을 가기 때문에 교환학생에 드는 학업 비용은 사실상 없다.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을 벗어나 남반구. 호주에 도착한지도 벌써 2주가 다 되어간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환상적이다. '믿을 수 없다'.
기숙사와 학교에서 전 세계 친구를 사귀고, 함께 시티 여행을 하고, 학교를 다닌다. 한국에서도 똑같이 학교에 가고 친구를 사귀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환경은 완전히 새로운 성질을 띄고 있다. 새로운 마인드, 새로운 태도,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 호주는 '새로움'과 더해 '다양성'이 만난 나라라서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존중받으며 살아간다.
거기에 더해 호주를 대표하는 화창한 하늘과 눈부신 햇살, 청아한 바다 빛, 친절한 사람들과 친구들. 모든 것이 러블리하다. 이 모든 것에 놀라움과 충격, 감사함을 느낄 따름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서 독립적이고 때로 의존적으로 살아갈 나의 생활이다. 난생처음 본가에서 벗어나 1인실에서 자취를 시작한다. 그것 자체로도 나에게는 챌린지고 미션이다. 잘 챙겨 먹고, 스스로를 케어하고, 학업을 이어나가고, 열심히 여행할 계획이다.
호주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에 소중한 추억과 깨달음이 있기를. 이곳에서 보낼 5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어떤 빛깔의 페이지들을 만나게 될까. 경이로움에 빠르게 뛰는 심장과 설레는 손끝을 감각하며 하루를 또 시작해 본다.
머나먼 길을 미로처럼 돌고 돌아서 만난 환상의 오아시스. 호주에서 새로운 여정의 기록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