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도로시 이후의 삶은 이전과 많이 다르다. 그중 하나는 기록에 대한 입장이다. 도로시에게서 받은 자극이 글로 옮겨질 줄 알았다. 아니, 글에 대한 욕망은 옅어졌다. 글로 옮길 시간을 덜어내어 도로시와의 '지금 당장'에 쏟아붓는 게 중요해졌다. 나는 놀랍다.
책도 영화도 음악도 뭐든 중요하고 중요하지만 지금 도로시에게서 느끼는 감각과 비교하자면 형편없는 비효율의 대상들이 되어버렸다. 이따금 같이 즐기게 될 때 저것들의 부가가치가 치솟기는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결여보다는 간과해도 괜찮은 것들이 되어버렸다.
축약하자면 음악 책 영화 등으로 누릴 수 있었던 감성적 체험들의 총합을 도로시의 등장이 단숨에 넘어섰다고 해야 할까.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도로시가 아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책임감의 영역과는 다르다. 차라리 압도와 순응의 구도와도 같다.
도로시로 인해, 그동안 무지로 절뚝이던 눈과 입과 귀를 밝게 했던 작가 음악가 미술가 감독 배우 등은 모조리 패배했다. 언젠가 홀로 된 시간에 은밀히 스며들 수도 있겠지만 자극도 수용도 이전과 다를 것이다. 도로시는 점점 나의 더 많은 부분을 점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