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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공자. 피에 젖은 김선호에 대하여

박훈정 감독. 귀공자

by 백승권

사실 보편적 기준이라는 건 없다. 재벌 캐릭터를 악마로 그리는 건 식상하다. 타인의 장기를 떼서 생명을 연장시키고 싶다는 욕망은 현대 의학에서 가능한 부분이다. 도덕적 합의와 적법한 절차만 거친다면. 이걸 무시하니까 범죄가 되고 영화 소재로 기능한다. 코피노 장기를 떼서 혼수상태 재벌 회장 몸에 붙인다는 발상은 익숙하다. 코피노가 아니라 가출청소년, 노숙자, 고아, 장애인, 복제인간 등 그동안 수많은 영화가 다뤄온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캐릭터를 가져온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코피노를 깊이 다루지 않는다. 코피노는 소재다. 대체 가능한. 마치 미친 싸이코 재벌처럼 캐릭터로 기능하는. 그럼 뭐가 남았을까. 완전한 프로페셔널 킬러 청부업자? 다른 데에서 유사성을 찾으면 많고 많다. 하지만 이건 숨은 그림 찾기가 아니니까. 기대하는 것은 폭력성이었다. 그리고 의외는 김선호였다. 놀라움은 김선호였다. 난 김선호가 신민아와 함께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는 차차차도 안 봤다. 영화에서 김선호는 영화 자체였다. 모든 장면에 나오고 모든 장면에서 뛰거나 날거나 쏘거나 콜라를 마신다. 구김이 없다. 보통 한국 남성 배우가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면 허세와 자신에 취해 왜 저래...라는 반응을 얻다가 혼자 아 씨발... 이러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날렸던 뮤직비디오 주인공처럼 죽던데. 김선호는 잘 어울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연출 디렉션과 노력한 부분이 잘 결합된 균형 잡힌 결과 같았다. 이 정도 아웃풋을 영화 러닝타임 내 도출하는 건 매우 드물다. 최근 유사한 케이스는 최악의 악의 지창욱 정도. (1:1 절대 비교는 불가한 부분이지만) 물론 여러 면에서 지창욱이 더 대단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지창욱으로 대체한다고 결과물이 나아졌을까. 아니. 절대 그럴 수 없다. 영화 제목을 귀공자가 아니라 김선호로 바꿔도 될 정도로. 김선호가 아니면 이 영화의 어떤 장면도 더 나아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귀공자라는 이름은 코피노라는 캐릭터의 저 멀리 극단 반대편에 서있다. 한국 정서상 모든 자녀는 (특히 영화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아들 새끼들은) 금쪽같은 내 새끼일 텐데. 코피노는 그렇지 않다. 해석하면 귀공자는 코피노의 극단적 판타지다. 귀공자가 될 수 있었지만 궁핍한 집의 아픈 홀어머니 모시는 복서가 될 수밖에 없던 운명. 돌주먹으로 한국 애비를 찾아가 대가릴 깨야겠지만 평생 부여잡고 산 그리움이 홀리듯 차에 타게 한다. 그러다 마주하는 귀공자. 왕자가 아니다. (명품과 가오가 중요한) 왕자병에 가깝다. 그는 복서의 판타지 같은 그림자 역할을 하며 따라다닌다. 내가 저런 잘 생기고 수트가 잘 어울리는 근사한 귀공자가 될 수 있었구나. 있는 줄도 몰랐던 컴플렉스를 솟아오르게 만든다. 복서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려는 무리들과 같이 꺼내려는 건지 다른 놈에게 주려는 건지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김선호. 처음부터 그랬지만 모든 스토리와 갈등 요소, 영화적 장치가 김선호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한낮 장면에도 김선호만 밝게 느껴지는 착시효가가 있다. 절정은 살육 파티다. 콜라병만 쭉쭉 빨던 김선호의 여유러움은 재벌과 조폭 88명(아님)을 살육하는 장면에서 말 그대로 포텐이 터진다. 이 액션 속에서 김선호 캐릭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읽을 수 있다. 손에 닥치는 대로 뭐든 집 집어서 눈앞에 있는 새끼들의 대가리를 터뜨리고 칼로 근육을 가르고 집어던지고 총을 난사한다. 수십 명을 모조리 시체로 만들었는데 김선호는 헉헉거림조차 미미하다. 여유로운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더 많은 배수의 쓰레기들도 더 말끔하게 청소해 본 것처럼. 역시 이쪽 비즈니스에서 인지도가 있을만한 실력이다. 신세계, 마녀, 낙원의 밤 등에서 보여줬던 박훈정 감독의 워터마크 같은 연출이기도 하다. 후반에 폭발하는 지옥도. 대천사의 날개가 마귀들을 깡그리 쳐부순다. 피칠갑을 한 김선호의 맑고 환한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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