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존재

by 백승권

아무도 몰라.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서.

아무도 묻지 않고

물어도 답하지 않을 거라서


맹세한 적 없어도

깨지 않을 약속 같은 것.


어쩌다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더더욱 아무도 모르겠지.


글 그림 물체 기체 그림자

어느 형태와 흔적도 없이

같이 사라질 테니

아무도 모른 채

알려지지 않은 채


그런데

그렇다고 원래 없던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니에요.


잠긴 문 뒤에도 누군가 있듯

닫힌 입 안에도 언어가 있듯

두고 간 짐에서 주인이 있듯

남긴 커피에도 온기가 있듯

빈 의자가 그렇듯

엘리베이터가 그렇듯

동승석이 그렇듯

잘못 부른 이름이 그렇듯

쓰다 지운 메시지가 그렇듯

혼자 부르는 노래가 그렇듯

갑자기 뜨거워지는 눈가가 그렇듯

신호가 바뀌고 천천히 걷는 건널목이 그렇듯

하루에 몇 번 문득 멈추는 시간이 그렇듯

하루에 몇 번 문득 멍해지는 순간이 그렇듯


시선이 어느 한 곳 덩그러니 머무는 순간이 그렇듯

무명의 기침소리만 들려도 덜컥이는 심장이 그렇듯

볕이 눈부실 때 떠오르는 사진 같은 순간이 그렇듯


내가 사라진다 해도

아무 말 없이 생명의 시간이 멈춘다 해도

그렇다고 원래 없던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니에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닿지 않고

여기 지금 없고

아무도 모른다 해도

애써 정의할 수 없다 해도


불타 없어진 자리에

잿가루가 된 편지지 같다 해도


말하지 않아도

아무도 몰라도

내가 사라져도


원래 없던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니에요.


저는 앞으로도

이걸 표현하기 위해

여생의 많은 시간을

기꺼이 할애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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