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만나러 갔어요.
흰 얼굴, 작은 몸, 휠체어에 앉은
까만 눈이 반짝거렸어요.
그의 남편은 오래전 지상을 떠났어요.
그의 자녀 중 한 명 아주 오래전 떠났어요
그의 자녀 중 또 다른 한 명은 몇 년 전 떠났어요.
한때는 그도
배고프다 울던 갓난아기였겠죠.
빨간 볼로 웃으며 달려오던 네 살이었겠죠.
두근거리는 심장 부여잡던 소녀였겠죠.
2년 만에 마주한 나를 보며 느린 목소리로
예뻐... 탈랜트 같어... 티비 나오는 가수 같어..라며
2년 전과 비슷한 찬사를 정성스럽게
반복하며 건넸어요.
일곱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다시피 한 나는
오만하게도 같은 호칭의 그들을 향한
태도와 대화에 익숙하고 능숙하다 자처하며
낮게 숙여 방긋 웃고 눈과 손을 맞잡으며
그의 존재와 생존에 대한 고마움을
다소곳이 표현했어요.
이런 화려한 칭찬을 다시 들을 줄 알았다면
노래 한 곡 준비할 걸 그랬다며 농담을 터뜨렸어요.
같이 있던 1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지인들은 같이 웃었어요.
그의 지난 어린 날과 소녀시절,
364일을 다 짐작할 수 없지만
여럿이 마주 앉아 함께 했던 몇십 분 동안
우리는 많이 웃었고 그는 밝고 귀여워 보였습니다.
전보다 눈물보다 웃음이 훨씬 많아 더 좋았고.
생존의 어느 시점부터는
하루라도 더 살게 되는 만큼
하루라도 더 살지 못하는 지인의 소식을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삶과 일상에 대해서
언젠가는 그조차도 들리지 않을 매일에 대해서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런 생각은
2009년 할머니의 친척분
장례식장에 대신 참석하며
또렷해졌고.
사무치게 그리울 정도는 아니지만
안부가 궁금한 얼굴들이 있어요.
조금 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도 있고.
그중 대부분은
인사 메시지 한번 보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소식을 듣지 못하겠죠.
잊히지 않아도 연락 없이 지내겠고.
내가 누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은 적어요.
내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고
그저 다만
멀리서라도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