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사진기에 담긴 오늘의 과거들

by 백승권

한동안 확신의 여지가 좁아져 있었다. 계획의 시도가 무력했다. 시간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도 곁에 있는 사람도 그리고 거기에 얽힌 많은 일들이 침묵과 한숨으로 나이만 먹고 있었다. 떠나봐야 소용 있을까. 다시 일의 영역으로 소환되지 않을까. 조바심과 두려움으로 머리 속이 매캐하였다. 새총 고무줄에 묶인 가죽 부분 같았다. 아무리 당겨도 고무줄과 붙어서 흔들리고 있었다. 좁히고 좁히고 좁히고, 같이 사는 여자는 불쌍했다. 가능성을 뾰족하게 만들려고 온갖 경우의 수를 이야기했다. 같이 떠날 수 있는 어떤 날에 대한 공상, 지하에서 우두커니 불빛을 잃은 자동차를 타고, 굉음과 함께 긴 시간 노면의 진동을 느끼고, 맑은 하늘 아래 선을 지켜가며 우리는 떠날 수 있지 않겠냐고. 날을 정하고, 그 날이 훼손되지 않길 기도했다. 며칠 내내 간절히 바랐다. 그 문이 닫히지 않기를, 발목을 비틀지 않기를, 시동을 걸 수 있기를, 두근거림을 감추며 손꼽았다. 일찍 잠들고 새벽이 지상에 닿기 전에 눈을 떴다. 우리는 문을 나섰다. 자동차는 도시의 경계 밖으로 달리고 있었다.

볕이 따가웠다. 선글라스는 갑갑했다. 앞차와의 간격은 멀었고, 목적지까지는 240킬로미터였다. 가속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불안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안전을 전제로 속도계는 세 자리의 지위를 지켰다. 1년 전 비슷한 코스에서 내가 운전하던 차는 길을 잘못 들었었다. 한 시간 더 먼길로 달려야 했다. 막힘은 없었지만 그만큼 일행들은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땐 지금보다 서툴렀고 지금이 그때보다 나은 건 별로 없었다. 곁에 앉은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에어백처럼 안전했고,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내비게이션처럼 지적이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와 내면, 감각과 스타일의 여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를 선택하고 내게 유일한. 팔뚝은 조금 경직되어 있었지만 발과 다리는 편했다. 밟을 곳과 밟을 때를 잊지 않았다. 음악을 틀었고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얼마 전만 해도 난 방해된다며 소리를 질렀다. 당장, 끄라고.

당도한 곳은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의 바다, 처음의 지명, 처음의 잘 곳, 처음의 서비스도 아니었다. 이번으로 네 번 째였다. 서울의 몇몇 식당을 제외하고 이렇게 빈번히 온 곳은 특히나 바다는 없었다. 부산도 겨우 두 번을 찾았을 뿐이었다. 바람이 거세고 온도가 낮아 파도 앞에 오래 서 있기는 무리였다. 내가 괜찮은 것보다도 아이가 추운 건 괜찮지 않았다. 여전했다. 한적함, 고즈넉함, 걸음이 느려도 뒤에서 압박하지 않는 풍광과 물결들. 신발 속에 모래가 조금 들어가도 파도 앞으로 더 가까이 가야 했다. 명명되지 않아도 정의되지 않아도 여전한 색과 움직임과 불규칙한 선, 면, 촉감과 소리, 그림자와 변화들, 새의 궤적, 해수면과 하늘 사이를 가늘게 쪼개는 금, 해변 위에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 보트의 줄과 여기가 관광지다 라고 과시하는 그네가 몇 개 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괜찮았다. 나무들의 높이와 바다의 면적은 그대로였다. 멀리 박힌 건물들의 실루엣과 새로 올리는 빌딩 옆에 애인처럼 붙어 있는 기중기. 좁은 도로 위를 가파르게 움직이는 차들과 신호 없는 교차로, 연인인지 부부인지 금지된 관계인지 알 수 없는 중년의 남녀와 호객의 목소리를 피해 우리는 허기를 채우러 갔다.

바다 앞에서 해물을 끓이고 회를 초장에 찍어야 ‘인증’이 되는 걸까. 10만 원짜리 모둠은 먹어줘야 토박이 상인들에 대한 이방인의 예를 다하는 걸까.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우린 전과 다른 메뉴를 조금 작은 목소리로 요청했다. 그렇게 생전 처음 느껴본 맛으로 바지락 칼국수를 들이켰다. 설명과 묘사를 금하겠다. 지금도 한번 더 먹고 떠나지 않은 것에 통탄한다. 어둠과 추위, 비까지 감당하며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은 둘다에게 꺼려지는 선택이었다. 숙소로 일찍 돌아와 편의점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 사도 먹지 않을 과자들을 계산했다. 타인들이 청소해준 공간에서 타인들이 세탁하고 정리해준 침구에 누워 TV를 켜고 휴대폰을 눌러댔다. 씻고 눕고 이야기를 멈추다 멈추지 않다 했다. 고요함이 길어져도 아무렇지 않았다. 강요도 쫓김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 있어도 괜찮았다. 어떤 위협과 불안을 무릅쓰고 멀리 떠난 자들에게 윤허된 여백 같았다. 간지러운 단어들을 활용하지 않아도 이런 고요 안에서 숨 쉬고 이를 감각할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평소보다 길었던 운전에도 피로가 덜했다. 사진기 안에 담겨 있는 오늘의 과거들.

체크인하기 전 조금 떨어진 곳으로 달려 커피를 마셨었다. 셔터가 빠르게 눌렸다. 피사체의 고결한 동선을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인공적일 필요 없었다. 그녀는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그녀였다. 언제나 완벽했고 완벽한 다음 날엔 더 완벽해져 있었다. 어떤 조명 어떤 의자 어떤 테이블 어떤 분위기 어떤 대기와 어떤 바람, 빛, 길. 하늘, 그녀의, 배경으로 활용될 뿐이었다. 어차피 모든 이미지화는 원본에 비하면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었지만, 최소한이었다. 쇠약해지는 기억력을 잡아두려는 알면서도 행하는 해프닝 같은 행동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녀에게 사진기를 들이대는 일이란, 그랬다. 어쩔 수 없는 일. 이기적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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