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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r 19. 2017

도로시에게 향하는 버스 안에서

류이치 사카모토 Playing the Piano 앨범을 들고 간다

집에 가는 버스를 1시간 넘게 기다렸다. 도로시 새 옷이 담긴 쇼핑백과 도로시 식빵이 담긴 쇼핑백과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는데 우연히 구한 류이치 사카모토 Playing the Piano 앨범을 들고 간다. 그래서 기분이 괜찮다. 몸은 뭐 뭘 해도 피곤 해질 테니. 내일은 도로시 책 사러 간다. 도로시는 얼마 전부터 내게 마구 뛰어와 내 양다리 바깥쪽을 꽉 붙잡고 얼굴을 파묻는다.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양 어깨 위에 다리를 걸쳐 태워주면 양 손으로 내 양볼과 턱을 만지작 거린다. 안경을 자주 벗기려고 하고 어깨를 토닥토닥한다. 아내와 재밌게 읽은 그림책을 내게 가져온다. 표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큰소리로 구연하며 내가 읽어준다. 특히 재밌어하는 부분은 "뚀, 뚀" 다시 읽기를 요청한다. 요청은 멈추지 않고 뚀, 뚀, 뚀, 뚀 읽어준다. 크아 아앙 괴물 소리를 내면 따라 하며 자지러진다. 색연필로 방바닥에 그림을 그린다. 물티슈로 닦아내는 걸 보여줬더니 따라 한다. 세밀한 얼룩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박박 지운다. 먼지 한톨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주워오면 입에 넣기 전에 달라고 해서 버린다. 창밖 풍경 보기를 좋아한다. 자동차, 사람들, 강아지, 새. 자전거가 지나가면 따이! 따이! 소리 지른다. 따르릉따르릉이란 뜻이다. 강아지가 지나가면 멍 무이!! 멍멍멍 무이!!! 소리 지른다. 새가 창밖 가지에 앉으면 난리 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문 유리를 두드리며 째짹,째째짹!!!온몸을 뒤흔든다. 트럭과 포클레인도 좋아한다. 거품 목욕하는 것도 좋아한다. 온기가 식을까 봐 따뜻한 물을 계속 부어준다. 거품을 좋아해서 자꾸 손바닥을 내밀며 달라고 한다. 그걸 몸에 바르고 얼굴에 바르며 좋아한다. 목욕을 마치고 바디로션 바르는 것도 좋아한다. 볼에 찍어 바른다. 드라이기는 피하려고 한다. 기계음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이 있다. 감기 걸릴까 봐 몸을 안고서 머리를 말린다.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기저귀 채우고 위아래 옷은 다 입은 상태. 발가락을 세우고 팔을 뻗어 고리를 잡고 내려 문을 연다. 물을 먹이고 다시 놀 거리를 찾는다. 간식을 먹인다. 버스는 아직 동네로 도착하지 않았고 도로시는 아마 잠들었을 것 같다. 내일은 차창밖 풍경을 즐기며 도서 전시회에 갈 거다.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가는 중에 낮잠을 조금 자면 좋겠다. 도로시가 커가며 아내는 팔이 점점 더 아파진다. 잠에서 깨면 도로시는 엄마를 찾는다. 같이 깨어 달래지만 예민한 새벽에 아빠 손길은 두 번째다. 아내만이 도로시의 울음을 달래고 품에 안아 다시 재울 수 있다. 난 물을 가져다 먹인다. 아내는 도로시 곁에 누워 계속 토닥인다. 다시 깨도 아내는 도로시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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