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지그문트 <어떻게 수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수학적 이해의 희열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 다들 정교한 이론을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논리 퍼즐과 두뇌 게임 같은 이른바 취미 수학도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삼는다.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농담으로만 이루어진 철학 책을 상상할 수 있듯이 퀴즈로만 이루어진 수학 교과서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러커토시 임레의 수학 멘토 포여 죄르지는 이렇게 썼다. “기초적인 수학 문제는 모든 바람직한 다양성을 제공해 주며, 그러한 문제의 풀이를 찾는 연구는 특히 접근하기 쉽고 흥미롭다.”
이런 평이한 예제 두 가지를 들어보겠다. 둘 다 널리 소개된 낯익은 문제다.
1번 예제. 기차 두 대가 동시에 출발한다. 빠른 기차는 A에서 B로, 느린 기차는 B에서 A로 이동한다. 결국 두 기차가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첫 번째 기차는 그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 뒤에 B에 도착하고, 두 번째 기차는 첫 번째가 도착하고서 세 시간 뒤에 A에 도착한다. 문제: 첫 번째 기차는 얼마나 더 빠른가?
독자들 중에는 책을 덮고 직접 답을 알아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야말로 저자가 꿈꾸는 유형이다.
-카를 지그문트, <어떻게 수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노승역 역, 월북, 474~5
일전에 포스팅했던 <미적분의 힘> 덕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른바 수포자들을 위한 책이라는 문구로 작정하고 홍보했던 해당 서적 정도의 수준보다 약간 더 어렵지 않겠느냐는 느슨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크게 반성하게 되었다. 전부 이해하며 읽는 것도 아닌데 읽어나가는 진도가 매우 더딜 수밖에 없었던 것은 책의 수준과 밀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어려운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어느 정도 성취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전혀 성취감을 느끼고 있지 못하다. 나 같은 독자가 이 책을 감히 읽어도 되는 것일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 같은 독자도 이 책을 다 읽었다는 전제 하에 리뷰를 써도 되는 것일까? 이 책을 끝까지 읽도록 견인한 것은 저자가 원하는 수학적인 호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이 아니라 저자의 뛰어난 유머감각과 무궁무진하게 쏟아내는 유명수학자, 철학자들에 대한 일화들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책의 대부분은 위 인용문에서처럼 수학적 사고를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말했듯이 몇 번이나 저자 이름을 다시 확인했을 정도로 글을 무지하게 재미나게 쓰는 수학(철학)자가 수학과 철학의 상관관계(원제는 The Waltz of Reason으로, 철학과 수학이 때로는 엇박자가 나기도 하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왈츠를 추며 접점을 찾아나가는 모양새를 상상하며 읽었다)를 탐구해 나가는 책이다. 수포자도 재미나게 읽었던 부분은 다른 포스트를 통해 소개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극구 위의 인용구를 먼저 소개한 것은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핵심적 내용이 집약된 부분은 온갖 수학적 증명에 대한 이해를 그 나름으로는 쉽게 써 내려간 마지막 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상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이제는 수학에 의지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지만(예를 들어 모든 전자기기는 수학을 기반으로 하는 산물이다) 그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매우 소수일 것이다. 그건 우리의 탓이 아니다. 수학적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당함) 그 머리를 타고나지 못한 인간들은 어떤 식으로 수학을 이해해야 할까? 수학자들의 일화를 통해서? 살을 발라 숟가락에 올려 입에 떠먹여 주는 식의 책(미적분의 힘)으로? 나는 두 개의 방법 모두를 (자학적으로) 즐겼지만 솔직히 남은 것은 내가 살아생전 나 자신의 머리로 수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과 이에 대한 자괴감이 주를 이룬다. 뇌를 컴퓨터에 연결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나는 해볼 의향이 있는데, 9할은 그렇게 해서라도 수학적인 머리를 한 번 가져보고 싶어서다. 이 정도면 수학에 대한 짝사랑의 감정이 없지 않다고 볼 수 있겠다.
<어떻게 수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나의 짝사랑에 대한 격려인 동시에 비웃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어 제목을 결정했을 때 무슨 마음이었는지 출판사 사람들에게 묻고 싶을 정도다. (꽤 강렬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동일 출판사의 책이 있는 것을 보니 뚝심 있게 이 컨셉을 밀어붙인 누군가가 있겠구나 싶다.) 사실 마지막 장에 이르기 직전까지는 이 제목이 마냥 거슬리지는 않았다. 이해를 못 한다 해도 수학과 관련되어 파생되는 철학적 고민들과 이야기들이 이토록 풍부하다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뭐 그 정도로 받아들일 만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자, 이제 이 책을 정리할 만한 생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이고도 인문학적인 통찰을 내놓겠지,라는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을 때, 나는 좀 부끄러워졌다. 작가는 수학적으로 삶에 대한 통찰을 내내 내놓았다. 나는 그걸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진짜 언어는 수, 수학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이 무더운 여름밤, 이 자괴감부터 기록하기로 했다. 나는 내가 수학을 못하는 이유를 중학교 때 수학 선생이 너무 못생겨서였다거나 고등학교 때 수학선생이 여자애들 성추행을 일삼거나 뺨을 때리는 폭력 교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 아니다. 나는 위 인용문을 읽었을 때 책을 덮고 직접 답을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다. 지그문트 선생, 제가 댁의 책을 읽어도 되는 것일까요?
… 자, 독자여, 풀어보시라. 정답: 첫 번째 기차는 두 배 빠르다. 빠른 기차의 속력이 느린 기차보다 x배 빠르다고 가정해 보자. 두 기차가 교차한 뒤 느린 기차가 주파해야 할 킬로수는 빠른 기차의 x배이며 1킬로미터당 걸리는 시간도 x배다. 그러므로 느린 기차가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x제곱배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알다시피 빠른 기차는 교차점으로부터 한 시간이 걸렸으므로 느린 기차는, 네 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x제곱=4이니까 x=2다.
-위의 책, 475
순도 100퍼센트의 경멸의 표정. 마치 수학이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열심히 읽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슬픈 마음이 덜컥 들어서 (미쳐버린 듯한 날씨도 한몫한 것 같다) 꽤나 자학적으로 썼지만 이 책은 내가 아주 사랑하는 콜 선생의 <우주의 구멍>에 비할 만큼 재미있다. 수학적으로 접근하기 전에 독자가 계속 읽게 만드는 낚시 솜씨가 일품이다. 그 재미에 낚여서 미끼 좀 더 달라고 허우적거리며 책을 읽게 만든 지독한 사람… 하여튼 오스트리아 사람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또한 뭐… 얻은 것이라면 얻은 것이랄까. 이 얘기는 다음번 포스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