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쯤. 오지 않는 잠. 마침 목도 말라 방 밖으로 나옴. 게스트하우스는 처음. 라운지 쪽 정수기 생각에 조심히 라운지로 향함. 혹시 다른 사람들이 깰까 봐 최대한 조용히 물을 마시고 컵도 씻어둠. 다시 방으로 와서 문을 열었는데 잠겨있음. 잠깐 물만 마실 거여서 방 키, 핸드폰 전부 놔두고 온 건데, 문이 자동으로 잠김. 불현듯 처음 와서 옷 갈아입을 때 문을 잠그려고 했는데 잠금장치가 없던 게 기억남. 닫기만 하면 잠기는 문이었구나.
시간은 어느덧 3시 30분. 맨몸으로 홀로 라운지에 남겨진 나. 어떻게든 방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라운지를 수색하기 시작. 마치 방탈출을 하는 느낌으로 정보를 수집. 일단 카운터가 다시 열리는 시각은 아침 8시. 이대로 8시까지 기다릴 순 없다. 내 방에는 창문이 있었지만 거기로 들어가긴 역부족. 게다가 창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건 너무 수상.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장님을 잠깐만 깨워서 문만 여는 방법을 선택. 카운터 근처에 있는 방들 중에 호실 번호가 적히지 않은 방문 발견. 정황상 100% 저기가 사장님의 방. 초인종을 눌러보았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음. 방을 잃은 충격에 내 귀가 먹은 게 아니라면 그렇다! 초인종은 작동하지 않는다.
문을 두드리는 건 옆방이나 다른 투숙객 분들이 깰 것 같아서 시도하지 않음. 만에 하나 그 방이 사장님 방이 아닐 수도 있고. 다시 라운지로 돌아와 계속 고민. 사건은 다시 원점. 라운지를 둘러보니 식탁 같은 곳에 스피커와 연결된 휴대폰 발견. 배터리는 완충 상태. 우선 폰을 켜본다. 다행히 문자와 전화가 되는 휴대폰. 카운터 책상에서 발견한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기 시작. 신호는 가는데 카운터에 있는 전화는 안 울림. 사장님 개인전화로 전화가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짐작. 두 번을 해도 안 받음. 사건은 다시 원점.
시간은 어느덧 4시. 8시까지는 아직 4시간이나 남았고 무엇보다 일정을 소화하려면 지금 자야 하는데. 초조. 결국 라운지에 있는 유일한 소파에서 자기로 결정. 쿠션을 이불 삼아 덮어본다. 베개로 쓸 쿠션 같은 건 사치. 왜냐면 라운지가 너무 추웠기 때문. 심란함을 달래며 잠을 청해 보지만 도저히 잠이 안 와 뒤척뒤척. 1차 잠 시도 실패.
그러다 갑자기 발자국 소리. 누군가 온다. 일단 급히 자는 척을 하고 동태를 살핌. 물을 마시러 나온 투숙객인 모양. 물만 마시고 갈 줄 알았는데 근처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하는 모습을 실눈으로 확인. 화분에 가려 얼굴이 제대로 안 보이는데 남자로 추정. 이 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 투숙객이 많은 것 같아 잠시 고민. 모든 공지가 영어로 되어있고 실제로 체크인할 때도 사장님이 외국인이 훨씬 많이 온다고도 얘기하심.
만약에 외국인이면 이 상황을 영어로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봄. 소파에서 일어나서 그쪽으로 감. 자연스레 바로 옆 의자에 앉음. 한국인이길래 약간 안심하고 편하게 말을 검. 적어도 이유를 한국어로 설명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겠지.
혹시 투숙객이냐고 말을 붙임. 구차하게 상황설명을 다 하고 방에 남는 이불 있으면 가져다 달라고 부탁함. 이 상황이 웃긴지 매우 웃더니 흔쾌히 가져다 주심. 나도 이러고 있는 내가 웃겨서 웃음. 배게까지 갖다 주시고 감동. 왜 안 자냐고 물으니 잠자리가 바뀌니 불편해서 아마 안 잘 것 같다며 라운지에서 계속 핸드폰을 하심. 일단 배게와 이불을 들고 다시 소파로 복귀. 2차 잠 시도.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고 방금 전에 말을 거느라 잠이 깨버림.
약 20여 분간 눈을 감고 고민. 자연스레 잠들기를 바랐으나 정신이 멀쩡. 결국 다시 일어나서 책장에 있던 책을 한 권 들고 자연스레 옆 의자에 가서 앉음. 안 주무시냐고 먼저 말 걸어주심.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잠이 안 온다고 실토. 시간은 5시를 향해 가는 중. 3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다행히 나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8시에 사장님과 만나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들어옴.
요약 : 새벽에 목이 마르면 참고 그냥 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