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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Jun 06. 2023

E형 인간이 보는 I형 인간

오늘의 책은 [I형 인간의 사회생활]

밀리 에디터 클럽 미션을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이었는데, 읽기를 마지막날까지 미뤄두고 있었던 터라 오늘에야 완독 했다.

처음엔 I형 인간의 사회생활을 내가 알 이유가 있을까 싶어 책을 시작하기가 망설여졌다.

나는 극 E형 인간이기도 하고, 책 제목이 E형 인간의 사회생활이었어도 남의 사회생활 비법(?)을 안다고 내게 좋을 게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보니 괜한 편견이었다. 분명 내게도 와닿는 말들이 있었으니까.

도대체 언제쯤 미루어 짐작하기를 멈추고 열린 태도로 뭐든 받아들일 수 있어질까.

이 자체로 한번 더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흔히들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말 솔직함이 능사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사적인 문제를 탁자 위로 꺼내놓고 두루두루 돌려보며 한 마디씩 거들어야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끼리 관계를 돈독히 다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사적인 문제를 바깥으로 표현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성향이 아닌, 가급적 다른 일로 잊어보려 노력하는 회피형 인간은 이럴 때 집 안의 막힌 배수구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일터까지 따라붙은 것 같은 괴로움만 커진다.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이렇게나 괴로운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를뻔했다.

E형 인간들 역시 그 종류가 다양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데 불편함이 없을 뿐이지 그런 주제의 대화를 하나같이 즐기거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리라고 생각된다.

난 어디 가서 나이조차 밝히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보수적인 사람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괴로움 없이 그런 대화에 참가할 수 있다.

위 글을 읽고 저자가 너무 진심으로 들어주느라 이렇게까지 괴로운 게 아닐까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에서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의 범위가 정해져 있고, 그건 그들에게 높은 확률로 '그냥' '할 수 있으니까' 하는 이야기일 텐데 대단히 애써서 들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지극히 내 관점에서의 의문이 들었다.

나는 대화를 할 때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솔직하면 나도 솔직하게, 적극적인 태도엔 나 역시 질 수 없으니 그만큼 적극적으로.
무조건 일대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서는 통에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도 내 마음의 온도는 무시하고 머리부터 써서 대화를 이어가느라 어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읽다 보니 저자는 나와 다른 마음이었다.

의식이 흐르는 프로세스가 이토록이나 다르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저자는 상대가 솔직하면 나도 솔직하게. 적극적인 태도엔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맞춰주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식의 방식의 대화를 선택하지 않는 건 상대가 얼마만큼 솔직했는지 그걸 타인인 내가 알아챌 방법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이를 말하는 게 상대에겐 1 레벨의 정보라면, 내게는 4 정도의 레벨일 수도 있는 것이기에 애초에 상대와 솔직함 정도를 맞춘다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기에 괜히 상대에 맞추느라 내 안의 솔직함을 기준치 이상으로 꺼내기보다는 각자 할 수 있는 말만 주고받으며 내가 괴롭지 않기를 택하는 게 나를 위한 정답이 아닐까 생각하며 행동해 왔다.

타고난 유연성이 좋지 못한 사람이 무용 수업 첫날부터 다리를 일자로 찢을 수 없듯, 어떤 사람에겐 사회성도 여러 해에 걸쳐 꾸준히 단련해야 하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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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기질까지 숨겨가며 어울리려고 애썼지만 언제나 찬물에 다 녹지 않은 알갱이처럼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단단한 소속감에서 비롯된 안정감을 느낄 수 없었다. 단 한순간도.

하지만 이 부분을 읽고는 다른 프로세스가 당연하게 작동되는 사람이라면 난처하겠다고 생각되었다.

사회성이 길러지는 영역인지는 알 수 없다. 타고나길 E형인 내가 생각만으로 의견을 보탤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찬물에 다 녹지 않은 알갱이처럼 부유하는 기분이라는 말은 왜인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세상은 점점 연결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괴로움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불편한 사람과는 관계를 이어가려 노력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그걸 이제야!) 단순한 이치를 깨달았다. 너무 많은 관계는 독이 된다는 메시지를 설파하는 자기 계발서가 넘쳐날 때만 해도 남의 일 같았지만 내 몸이 아우성을 치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어영부영 끌고 왔던 복잡한 관계망을 단순화하기로 했다. 기준은 딱 하나, 만나면 체하지 않는 사람! 미련한 20대를 훌륭히 버텨낸 내 위장의 노고를 기리며 사람들을 정리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한 결단이었다.

손절은 자주 정답이 되는 세상이다.

손절을 하기에 앞서 모두가 검블유에 나오는 대사를 한번 읽어주면 좋겠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개새끼일 수 있다"는 조금은 과격한 대사인데 참 맞는 말이어서.

물론 대놓고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내 행동이 누군가는 매우 매우 싫고 불편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누군가 내게 손절을 요청(?)하거나 요청하려는 게 느껴지면 재빨리 눈치채고는, 내가 손절을 원하는 상대가 그러길 바라듯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아무렇지 않은 척 제갈길을 가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 손절 역시 주고받는 것이어야 하는 게 마땅하니 말이다.


알고 있다. 길어도 서너 달, 많아도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사이이기에 부딪칠 만한 사건이 없어 유지가 가능한 관계라는 것을. 목적이 있는 모임에서 만난 이들이 끝까지 서로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양질의 시간을 함께 보내보자는 암묵적인 합의를 맺은 사이이기 때문임을.
어떻게든 이 시간을 좋은 기억으로 남기겠다는 약속이 이 자리에 모인 우리를 좋은 사람이 되도록 독려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알지만 두 눈 감고 서로 속아주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공개하지 않은 모습까지 들추지 않는다. 그게 바로 모임의 첫 번째 규칙이다.

모임에 자주 참가한다는 저자는 모임이라는 형태가 주는 안정감을 자세하고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더 나은 나를 꺼내 보일 수 있는 곳.

양질의 시간을 함께 하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하는 곳.

작가의 말마따나 사라진 인류애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책을 읽으면서 더 많은 회사들에 점심시간을 이용한 소모임 같은 게 생겨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경유해 만난 모든 사람을 '회사 사람'으로 통칭하는 대신 개개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한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직원들에게 이 정도의 비빌언덕을 만들어 주는 게 회사의 복지라면 나는 좋을 것 같다.

사내 동아리와는 다른, 그보다 더 라이트 한 그런 소모임을 말이다.


이런저런 곳에서 만나게 되는 인맥에 대해도 말하고 있는데, 저자는 인맥은 중요하지만 상호교환이 가능할 때부터 의미가 생긴다고 말한다.

조직에서 일할 때는 월급이 회사의 유일무이한 장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준비 없이 덜컥 혼자 일하기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쩌면 월급은 물론, ‘동료’야말로 조직에서 일할 때만 누릴 수 있는 복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한 회사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전화를 걸어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있고, 때로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거나 아이디어를 품앗이해주기도 하다니.

이런 시각도 있었다.

퇴사를 하고 난 입장에서 생각하니 정말이었다.

회사사람들과 연락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대화 주제가 더 이상 회사는 아니니.

소속된 곳이 다른 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제한된다는 것을 대화 중에 느낄 때는 퍽 서운하기도 하지만 내가 내 손으로 조직의 일원이길 포기한 것이니 어쩔 수 없음을 내게 이해시키곤 한다.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용기’라고 말한 다랑이 덧붙인 설명은 이러하다. 반대되는 의견일 때도 솔직할 수 있는 용기, 폐 끼칠 각오를 하고서라도 내 역량에서 벗어나는 업무는 덜어내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 마지막으로 일단 일이 시작되면 내가 동료보다 더 많은 일을 하더라도 괜찮다는 태도로 임하는 용기.
이날 다랑과 대화를 나누면서 잊어버릴까 급히 메모했다. ‘협업=용기’라고. 협업을 할 때면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컸던 이유가 말끔히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그동안 용기를 제때 발휘하지 못해서 힘들었던 거구나! 

저자는 굉장히 사교적인 편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내향형 사람이라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고 오는 것이거나 혹은 그럴 필요도 없이 물처럼 자연스러운 관계만 선호한다고 말하지만.

내 시선에서 저자는 누구보다 타인과 함께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모임에 나가길 멈추지 않고 협업을 계속하며 타인과 룸메이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동안 사람을 만나는 게 거북하고 두려웠다. 내향인이라 사교활동에 피로를 느끼는 성향이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만남을 두려워하는 감정은 처음이었다.
한동안 내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했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날이면 전날부터 심장이 두근대고 식은땀이 나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어딘가 고장이 났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을 만나 내 상황을 설명하고 생각을 말해야 하는 상황이면 증상은 더 심해졌다. 이상할 정도로 생활 전반에 긴장도가 높아졌다. 그때부터 충분히 안전한 사람들과 최소한의 시간만 함께했다.
두려움을 잠재워줬던 건 언제나 다정할 준비가 되어 있던 친구들이었다. 다정한 격려가 쌓이다 보니 다시 사람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책의 마지막이 이런 결론이었다는 게 좋았다.

사라진 인류애를 이야기하면서도 사람들로부터 오는 다정한 격려 덕분에 회복했다는 결론.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밀리 에디터 클럽의 5차 미션, 책에서 한 문장을 고르라는 것에 대한 내 답은 위의 문장이다.

"두려움을 잠재워줬던 건 언제나 다정할 준비가 되어 있던 친구들이었다. 다정한 격려가 쌓이다 보니 다시 사람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I형뿐만 아니라 그냥 사람이 싫다가도 좋은 사람들 모두에게 유의미하게 다가올 책이기에 추천하며, 오늘의 독후감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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