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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슈 Nov 29. 2024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 생에 가장 어린 꼬마 선생님 (1)

#1. 아이는 그저 인정받고 싶었을 뿐.     


   이제 막 초임 상담사가 된 젊은 전문상담사에게 있어, 자신의 직장과 직무를 선택할 수 있을 만한 권리란 얼마나 주어질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우리 상담사들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저 미래에 더 멋진 내 모습을 기약하며,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상담사 자격증을 따자마자, 당장 내가 취직할 수 있을 만한 상담 기관을 찾기에 급급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시골의 어느 작은 시 단위의 지역에서 출장 상담사로 취업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 이미 다양한 봉사 경험을 통해서 혹은 짧은 시간 단위의 일자리를 통해서 적은 수의 상담 경험은 보유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공식적인 상담 기관으로서의 취업은 역시 그곳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설렜다.

   기관의 이름을 밝히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다. 단지 국가 산하의 기관 중 하나였다는 사실만 얘기하고 싶다. 그쯤이면 충분할 것 같다.     


   상담사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초반에 받은 케이스 중 하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였다. 

   워낙 오래된 일이다 보니, 그 아이는 지금쯤 훌쩍 자라 성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무척 똑똑한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하기에 분명 본인이 원하는 꿈을 이루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도 해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소가 지어진다.     


   그 아이의 상담을 의뢰한 곳은 읍 단위의 작은 마을에서였다. 

   내가 취업했던 시군구 단위의 시보다도 더 작은 읍 단위의 시골 마을. 동네가 워낙 좁다 보니, 그 상담을 의뢰한 사람도 다름 아닌 그 마을에 딱 하나 있는 교회의 목사님이셨다.     


   아이에 대한 상담 의뢰 사유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의 따돌림 문제. 

   그렇다. 아이는 다름 아닌 은따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처음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작은 시골 동네에서 왜 그렇게까지 된 걸지 궁금증이 많이 올라왔다. 하지만 아이를 만난 지 딱 1회기의 상담 만에 나는 그 아이에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선생님은 어디 사세요?”     

 목사님의 손을 잡고, 상담실에 들어섰던 아이가 인사를 하자마자 물어본 첫 질문이 이거였다.     

“응. 선생님은 실제 사는 집은 여기는 아니고, 원래는 저기 OO이 집이야.”

“OO이면 도시 아니에요? 큰 도시.”

“음. 은준이도 아는구나? 맞아. OO은 여기보다는 좀 큰 도시야. 맞아.”

“어쩐지.”

“응? 뭐가?”

“저도 서울에서 왔거든요. 원래 작년까지는 서울에 살았었어요. 근데 엄마가 좀 아파서… 근데 여기 사람들은 촌스럽거든요. 옷도 얼굴도. 시골이라 그런가. 근데 선생님은 안 촌스러워요! 그래서 알았어요! 헤헤.”     


   아이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를 만나기 전 교회 일을 돕던 집사님과 잠깐 미팅을 했을 때 전해 들었던 당부가 떠올랐다. 

   집사님은 안경 낀 얼굴에 무척 마른 외형이었고, 조용한 말투를 사용하는 분이셨는데, 보이는 모습처럼 나에게 아이에 대해 언질을 줄 때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말투를 사용하셨었다.     


―그… 상담 선생님이시죠… 오늘 목사님께서 요청하신.

―아, 네네. 저예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여기에서 집사로 일하고 있는 이선우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평소에 아이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좀 많아서요… 그래서 은준이에 대해서도 잘 알고. 그래서 좀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 괜찮으실까요?

―아, 네. 아이가 아직 안 와서요. 말씀 편하게 해 주세요.

―사실 아이가 좀 따돌림을 당하는 것 때문에 저희가 목사님 하고 같이 논의해서 상담 의뢰한 거긴 한데요. 아마 아이 만나 보면 금방 눈치채실 것 같아서요… 아이가 되게 똑똑해요. 서울에서 와서 그런지 또래 아이들보다 선수 학습도 많이 되어 있구요. 여기가 워낙 시골이라. 그렇게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애들은 별로 없거든요. 근데 그래서 좀…      


   잠시 말을 멈추고 내 눈치를 살피던 집사님은 이내 입술을 잠시 앙다무는 표정을 지어 보이신 후, 말을 계속하셨다.     


―아이가 좀… 잘난 체가 심해서요. 

―네? 잘난 체요?

―네. 저희야 뭐 어른이고 성인이니까. 애가 저희한테도 뭐라 할 때가 있긴 한데 그러려니 하거든요. 애니까요. 근데 애들은 사실 그렇지가 못하잖아요. 기분도 나쁘고… 그래서 애들이 대놓고 그러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여기가 시골이고, 워낙 마을이 좁아서 막 대놓고 따돌리는 건 좀 그렇거든요. 근데 싫은 건 싫은 거니까. 애들이 은근히 은준이를 피해서…

―네에… 그렇군요…

―그렇다고 다른 애들이 모두 나쁜 애들이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아, 네네. 그렇죠. 그렇다고 볼 순 없죠.

―그저 은준이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근데 애들한테 자꾸 잘난 체하고 말을 안 예쁘게 하다 보니까… 그래서 애들이 좀 피해서요. 아이가 저희한테도 좀 그래갖고, 아마 선생님한테도 무례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요. 근데 아이니까 좀 이해해 주시면… 그리고 선생님께서 아이 좀 잘 살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나에게 고개까지 숙여가며 아이를 부탁했던 집사님의 진지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집사님의 잔상이 마치 아이의 뒤에 든든하게 서 있는 또 다른 한 명의 부모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무교지만, 아이가 정말 좋은 교회에 다니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 후 나는 아이에게 상담 동안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물어봤고,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음… 제가 하고 싶은 건 다 돼요?”

“물론. 선생님은 은준이 상담 선생님이니까. 은준이가 원하는 걸 최우선으로 할 거야!”

“헤헤. 그럼 선생님 와이(WHY) 책 알아요?”

“와이 책? 그게 뭐야? 선생님은 잘 모르겠는데.”

“에이, 그런 것도 몰라요? 그럼 제가 선생님에게 가르쳐줘야겠네요!”

“선생님한테 가르쳐 준다고? 어떤 걸?”

“와이(WHY) 책이요! 그 책에는요.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것도 엄청 많이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재밌으실 거예요!”

“아, 그래? 그렇게 재밌어?”

“네! 근데 저는 그걸 다 외우고 있거든요. 근데 저는 나중에 학교 선생님이 꿈이거든요. 그니까 제가 선생님 가르쳐 드릴게요. 저희 상담 때 마다요!”     


   그렇게 첫날부터 나는 아이와 사제 지간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첫 수업부터 하나는 배우고 가야 한다며 어떤 나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였는지, 아니면 가장 오래된 나무였는지 그랬던 것 같다. 


   설명하는 내내 아이의 눈은 마치 밤하늘에 박힌 별님처럼 반짝반짝 예쁘게도 빛이 났다. 자기보다 한참 나이 많은 제자를 둔 스승으로서 그 제자가 열심히 수업을 들어주니 무척 뿌듯해하는 것도 같았다. 그날, 아이가 첫 수업이라고 명명한 상담 시간이 끝나자마자, 아이의 얼굴에서는 마치 후광이 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사실 아이의 사연은 이랬다.

   본래 서울에서 태어나 어느 시장 근처에서 살아왔던 아이와 아이의 부모는 부유하진 않았어도 나름 평온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이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왔고, 원래는 부모가 같이 서울에서 장사를 했었는데, 어머니의 그러한 건강 상태로 인해 모든 장사를 접고 결국 시골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골에서도 어떻게든 생계는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는 인근 농가의 농사일을 도우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 어머니는 교통사고 이후 찾아온 우울증 때문에 바깥 외출도 거의 하지 못하게 된 채 집 안에서 가사를 하는 정도의 생활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아이에게는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에 갔다 온 후 자기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거나, 또 자기를 제대로 보살펴 줄 만한 어른이 집에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이 어머니는 약물 치료로 인해 대다수의 시간을 수면 시간으로 보낼 때가 많았고, 때로는 아이에게 화풀이를 할 때도 잦았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변해버린 어머니를 지켜보던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아이는 그저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어느 날 급격히 변해버린 가정환경과 그로 인해 자신을 도저히 이전과 같이 신경 써 줄 수 없었던 부모의 달라진 모습들. 거기에 더하여, 갑작스러운 이사 때문에 완전히 달라진 환경에서의 적응 문제까지… 아이가 그 상황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전에 이미 아이의 세상은 너무 많이 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점차 세상에서 한 없이 작아져 버린 것 같은 자신의 존재감 때문에…      


 ‘저는 여기 있어요.’     


  ―라며, 아이는 계속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외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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