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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출발자금, 진영을 초월해서 고민해 볼 만한 공약

주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by 이완

기회 격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상속 격차다. 부모가 소득이 많으면 그 자녀도 높은 가능성으로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 설령 자녀가 불리한 조건을 타고 났어도, 부모가 부유하면 그 문제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반면 가난한 부모는 자녀에게 유리함을 물려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녀의 불리함을 교정해 주기도 어렵다. 상속의 비중이 큰 곳에서 공정한 경쟁은 불가능한 셈이다.


상속 격차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기초자산제'다. 기초자산제란, 모든 국민이 생애 초기에 일정 규모의 자산을 축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 제도다. 정부가 자산을 현금으로 직접 지급하는 방식이 있고, 청년도약계좌처럼 저축 이자를 얹져주는 방식이 있다. 물론 청년도약계좌는 기초자산제라고 하기에 너무 까다로운 면이 있다. 기초자산제의 핵심은 국민이라는 이유로 일정 자본을 갖고 경쟁에 뛰어들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초자산제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자산 관리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소득 격차의 핵심 원인은 기회와 경제 권력의 격차이지만, 비합리적인 지출 역시 원인 중 하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지대추구 분위기가 팽배한 곳에서는 일부 청년이 충분한 지식 없이 주식과 부동산, 가상화폐에 투자하거나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실패할 기회도 필요하지만, 뻔히 보이는 실패는 막아야 한다. 각자의 선의와 합리적 판단만 믿고 설계된 제도는 나쁜 부작용을 일으키거나 사회적 반발 탓에 무너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준석 대표의 든든출발자금은 진일보한 정책이다. 기초자산제에 개인 책임을 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 내용은 이렇다. 우선 정부는 각자에게 별 다른 조건 없이 출발자금을 '빌려준다'. 그리고 학자금대출처럼, 출발자금을 받은 사람이 훗날 일정한 소득을 창출하면 조금씩 상환하게 한다. 이런 방식은 기초자산제의 무책임함을 다소 완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존 청년도약계좌보다 포괄적이고, 기초자산제보다 합리적이다.


가능하다면, 건실한 중소기업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성장자금을 빌려주는 것이 어떨까. 기업의 성장에는 좋은 인력과 기술 혁신이 필요한데, 둘 다 상당한 비용을 요구한다. 기업은 은행 대출과 주식, 채권 등 민간금융을 통해 자본을 확보하기 마련이지만, 민간금융은 규모가 작은 기업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만약 정부가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금융을 대대적으로 확대한다면, 기업은 디딤돌로 삼을 자본을 얻는 동시에 고용 창출과 함께 확장된 시장에서 사업 확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준석 대표의 공약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든든출발자금이다. 물론 작은 정부론자 답게, 이준석 대표는 지급 대상과 금액이 그리 크지 않게 설정할 것 같다. 하지만 정책의 틀을 잡아둔다면 훗날 어떻게든 확대하기 수월할 것이다. 누가 집권하든, 이준석 대표의 든든출발자금과 닮은 정책을 도입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나라의 재건과 도약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정부재정과 자산을 레버리지 삼는 정책금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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