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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Mar 27. 2023

K - 사회주의가 필요한 이유.

마르크스가 아니라 우리의 뿌리에서 찾은 사회주의

에도 시대 일본에는 '국학'이 유행했습니다. 에도 막부는 '이학금지령(성리학 외 다른 유교 학파 금지)'을 내릴 정도로 성리학을 적극 보호했지만, 일부 학자들은 중국에서 유래한 성리학보다 일본의 토속 사상을 계승하려 했습니다. 일본의 역사와 고전을 연구해서, 일본만의 정신을 찾으려 한 것입니다. 그 결과물이 국학입니다. 일본인에게 익숙한 전통을 다룬 만큼, 국학은 막부와 지방 다이묘, 심지어 농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국학은 매우 국수주의적인 학파였지만, 훗날 메이지 유신을 폭발시키는 부싯돌이 되었습니다. '일본 다움'을 강조한 국학파 학자들은 일본 전통 종교를 깊이 탐구했고, 그 중심에는 천황의 혈통까지 이어지는 일본 신화가 있었습니다. 국학파는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이자 일본의 가장 오래된 통치자인 천황의 권위를 굉장히 강조했는데, 이게 19세기에 막부의 존재 근거를 흔드는 명분이 된 것입니다.

원래 막부는 천황이 임명한 정이대장군, 즉 오랑캐를 몰아내기 위한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쇼군)의 사령부였습니다. 그런 막부가 천황의 칙허도 없이 서양에서 온 오랑캐에게 항구를 열어주자, 에도 막부의 강압적인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던 하급 사무라이들은 막부의 권위에 흠집이 났다고 여겼습니다. 막부를 향한 불신은 보다 정통성 있는 존귀한 존재에게 권력을 넘기자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막부 이상으로 존귀한 존재는 천황 뿐이었습니다.

사무라이들은 일본 다움을 강조한 국학을 받아들여서 '존왕양이' 사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존왕', 천황의 권위를 지키고, '양이', 오랑캐(서양인)을 몰아내서 일본 다움을 지키자는 생각이 당시 일본의 위기와 맞물려서 확산된 것입니다. 막부는 국학의 후원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흐름을 적극적으로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실력에서도 지방 다이묘에게 밀리고 있던 막부는 명분에서도 밀리게 되었고, 결국 천황을 앞세운 사무라이들에게 모든 것을 넘겨줘야 했습니다.

일본에서 국학이 천년, 오백년 넘게 자리잡은 불교와 성리학과 대등한, 또는 우월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뿌리'가 일본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내집단 편향을 갖고 있습니다. 누구나 내가 속한 집단의 의견이 다른 집단에서 넘어 온 생각보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당시 일본인은 낯설고 어려운 불교와 성리학보다는, 토속적인 일본 신화와 고전을 다룬 국학을 더 쉽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심각하게 왜곡되거나 힘을 못 쓰는 이유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마르크스주의는 낯설고 어려운 사상입니다. 용어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공부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모됩니다. 북쪽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당시 한국인 정서에 맞게 마르크스주의를 다듬어서 확산시켰고, 남쪽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순수함을 고집하다가 대학 정치 동아리 외에서는 힘을 못 쓰게 되었습니다.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역사적으로 권위 있고 훌륭한 사상가가 많았습니다. 임시정부 때부터 나라의 방향성을 설계한 조소앙 선생, 우리나라 첫번째 헌법에 사회국가원리를 도입한 유진오 선생, 해방 후 우리나라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끈 조봉암 선생, 우리나라 헌법에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추가하고 6.25 전쟁이 한창일 때에 노동법 도입을 관철시킨 전진한 선생 등은 해외의 사상을 배우고 응용해서 우리나라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사회주의자가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려면, 국민의 내집단 편향에 저항해서는 안 됩니다. 내집단 편향은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과 카우츠키에 대해 설파하기 보다, 우리나라의 독립 영웅들이 어떤 나라를 꿈꿨는지, 우리나라의 뛰어난 사상가들이 첫번째 헌법에 어떤 가치를 담았는지, 현대에 사는 우리가 그 정신을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는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뿌리'에 호소해야 합니다.

뿌리는 식물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도 뿌리가 없다면 허공으로 흩날릴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와의 단절, 뿌리뽑힘은 목적 상실 만큼이나 사람을 공허하게 합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보면, 이는 꽤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회주의자는 사회주의가 국민과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는 점을 알려야 합니다. 자본론을 설교하기 전에, 우리나라 첫번째 헌법의 사회국가원리, 이익균점권을 서론에 둬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사회주의를 보다 편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리의 영웅이 가리킨 방향은 그 자체로 권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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