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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Apr 29. 2023

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우울해지는 날.

저는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일까요? 나름대로 제 생각과 근거를 읽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글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독자의 영역입니다. 제 글을 읽는 분은 제 의도와 다르게 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인물을 소개하려는 의도가 남의 생각만 앵무새처럼 따라한다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설득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제 알량한 지식을 자랑한다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글쓴이가 읽는 이의 영역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글쓴이의 의도를 몰라준다면, 글쓴이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과연 글쓴이의 책임을 잘 감당하는 사람일까요?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어디가서 글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자신의 강점을 인정받는 일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이 불편해 집니다. 과연 저는 정말로 인정받고 있는 걸까요? SNS에서 받는 인정은 너무 관대해서 못 미덥습니다. 제가 글을 잘 쓴다고 인정받는 사람이라면, 제가 쓴 글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태까지 그런 적이 많지 않습니다. 소득을 창출하지 못하는 일은 사회적 분업 속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일입니다. 물론 자원봉사처럼, 소득을 창출하지 못하는 일도 다른 사회적 가치에 도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조차 부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원봉사란 사치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분업에 참여해서 소득을 창출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저는 아직 글로 제 자신을 책임질 만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 글이 전반적으로 재미가 없다는 건 알지만, 이건 너무 추상적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재미가 없는 걸까요? 주류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글과 제가 각 잡고 쓰는 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재미를 살리기 어려운 주제라는 점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문장과 글 전반의 구성이 문제일까요? 스토리텔링이 부족한 걸까요, 아니면 첫 문장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이 부족한 걸까요?

어쩌면 제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는 편이 나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자신감이 과한 사람은 꼴불견입니다. 착각에 빠져서 세상을 내려다 보느니, 자기 의심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편이 낫습니다.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말이죠.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하는 건 우울한 일이지만, 이런 우울함이라면 모두에게 권장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자아 과잉 시대입니다. 모두가 자신을 과하게 치장합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뽐내기 위해서는 비합리적인 소비나 폭력도 서슴치 않습니다. 특히 SNS에 그런 잘난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관리되지 않고 지속되는 우울함은 병이지만, 한두 번씩 느껴지는 우울함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라는 신호입니다. 우울한 사람이 보다 현실적으로 판단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서 우울함을 외면한다면, 누구든 꼴불견이 될 수 있습니다. 꼴불견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기적으로 제 글 실력을 의심하며 우울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가서 글 쓴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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