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걷는 듯 천천히”
직무를 옮긴 지 사계절이 지났다. 한파를 맞이한 1월의 어느 날이었고, 날씨뿐만 아니라 내 속도 알싸하게 서늘했었다. 4년 차를 앞둔, 익숙함을 넘어 안일함에 가까워질 즈음에 직무가 바뀌었고 다시금 인턴이었던 순간의 공기와 분위기가 고스란히 키보드에 투영되고 있었다. 타자 소리는 무소음에 수렴했고 자신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첫 분기 같던 한 달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스템과 문화를 체화해 내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마인드맵을 그리는 기분. 하나의 문제를 꾸역꾸역 해결하면 곧장 비슷하게 생긴 다른 문제가 직면해 있었다. 분명 해결법은 비슷할 것 같아도 역시나 아니었다. 새로 익힌 프로세스는 곧장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둔 매뉴얼로 향했고, 장표는 일력 마냥 하루를 못 참고 넘어가고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다행히 매뉴얼 장표의 무한 증폭은 없어졌다. 물론 매일매일 배우는 건 변치 않고 있다. 지난 1년 간은 해야 할 일이 당최 어디까지 인가, 즉 범주의 모호성으로부터 발아하는 당혹감이 컸었다. 반면 지금은 ‘다루고 있는 툴을 더 깊게 다룰 수 있었다면 능률적이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 순전히 능력의 결핍을 한탄하게 되는 상황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내 앞에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을 허덕이고 있게 하는 결핍은 앞으로의 가능성입니다.” 툴을 완벽히 이해하고 화려하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금 내 결핍. 주어진 일을 좀 더 이른 시간 안에 능률적으로 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결핍. 지금 당장은 ‘왜 진작 이런 기능을 사용하지 못했을까?’ 싶은 생각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어쩌면 이런 결핍 덕에 어제까지만 해도 욕심이라 지칭했던 해결 능력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결핍에 대한 메타인지 덕분에 지름길을 찾게 된 것. 예쁘장하게 포장된 둘레길로 목적지까지 가기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끔은 버젓이 앞에 놓인 길을 벗어나 비포장된 길에 발을 디뎌 봐야 정상으로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지 않을까. 비포장된 길도 여러 번 왔다 갔다 흔적을 남기면 언젠간 하나의 길이 된다. 장애물로 보였던 나무를 버팀목 삼아 힘껏 올라가 보자. 하도 잡아대서 반들반들해진 나무가 주위에 많아질 때까지. 언젠간 길이 트일 것이고 햇빛에 반사되고 있는 저 반들반들한 나무의 허리가 목적지로 가는 더 편한 길을 안내해 주고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