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철학 사이

71화. 나답게 산다

by 가매기삼거리에서

종교는 신의 철학이요

철학은 인간의 철학이다.


선택은 넷 중 하나.


신의 철학 따르든가ㅡ종교인

철학하든가ㅡ철학자

둘 다 않든가ㅡ무신론자+비철학자

둘 다 하든가ㅡ종교인겸 철학자


대개 1 아니면 3

소수 2 또는 4

나 2


종교도 철학도 인간만의 권리다.

의무 아니어서 다행.ㅎㅎㅎ








이 글도 네 Philosology 흐름에 잘 들어가. 따뜻하게 보면서 몇 가지 짚어볼게. �


먼저 구조가 아주 간결하고 명확해.


핵심 명제는 이거지.


“종교는 신의 철학, 철학은 인간의 철학.”


여기서 이미 종교와 철학의 차이 기준을 한 줄로 세웠어.
권위의 출처가 다르다는 거지.



종교 → 신의 권위


철학 → 인간의 사유



그래서 뒤의 네 가지 선택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종교인
신의 철학을 따름




철학자
자신의 철학을 세움




무신론자 + 비철학자
둘 다 하지 않음




종교인 겸 철학자
신의 철학 + 인간의 철학




이렇게 분류한 건 꽤 깔끔한 발상이다.


역사적으로도 4번 유형이 실제로 있었어. 예를 들면
Thomas Aquinas 같은 사람은 신앙과 철학을 함께 했고,
Søren Kierkegaard도 종교와 철학을 동시에 다뤘지.


반대로 2번 유형, 즉 “내 철학한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Friedrich Nietzsche 같은 경우는 종교 권위를 거부하고 자기 철학을 세운 경우라고 볼 수 있어.


네 글에서 특히 좋은 부분은 마지막이야.



종교도 철학도 인간만의 권리다.
의무 아니어서 다행.



이 문장은 톤이 부드러워서 글 전체를 선언이 아니라 여유 있는 결론으로 만들어.
읽는 사람이 방어적으로 느끼지 않게 하거든.


그리고 네가 스스로 **“나 2”**라고 밝힌 것도 글의 성격과 잘 맞아.
왜냐하면 너는 계속 이런 말을 해왔잖아.



철학은 깨우침이다


철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철학은 내 삶에서 나온다



이 흐름이면 자연스럽게 2번으로 가게 돼.


한 줄로 압축하면 이 글의 핵심은 이렇게 들려.


종교는 신의 철학이고
철학은 인간의 철학이다.
나는 내 철학을 한다.


아주 네 스타일의 짧은 철학 아포리즘 글이야.
“나답게 산다”라는 연재 제목에도 딱 맞고.








검색하니 종교 철학이란 학문 분야도 있더라고.









맞아. 실제로 종교철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따로 있어.


Philosophy of Religion


종교철학이 하는 일


종교철학은 종교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야.
즉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지.


대표 질문들이 이런 것들이야.



신은 존재하는가?


신이 있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가?


기적은 가능한가?


신앙과 이성은 충돌하는가?



그래서 종교철학은 종교 내부 학문이 아니라 철학 분야야.


종교학과도 다름


헷갈리기 쉬운데 두 학문이 달라.


종교학 (Religious Studies)
→ 종교의 역사, 문화, 제도 연구


종교철학 (Philosophy of Religion)
→ 종교 개념을 논리와 철학으로 분석


네 글과의 관계


재미있는 건 네 글은 종교철학과는 조금 결이 달라.


종교철학은 보통


“종교가 참인가?”


를 따지지만,


네 글은


“종교와 철학의 위치가 무엇인가?”


를 말하고 있어.


그래서 네 글은 학문 분류로 보면 오히려



철학론


또는 네가 말한 Philosology



쪽에 더 가깝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게 볼 수 있어.


종교철학
→ 종교를 철학적으로 분석


네 글
→ 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삶의 선택으로 정리


그래서 네 문장



종교는 신의 철학
철학은 인간의 철학



이건 사실 종교철학의 논문 문장이라기보다
삶의 철학 아포리즘에 더 가까운 표현이야.


그리고 마지막 문장,



종교도 철학도 인간만의 권리다.
의무 아니어서 다행.



이건 학문 문장이라기보다 삶의 태도 선언이어서
네 연재 “나답게 산다”와 잘 맞는다.








의무 아니어서 다행. 그렇잖아. 종교로 인해 대소 전쟁 셀 수 없어. 오늘날까지. 박해. 순교자, 개종 않으면 죽음. 마녀 사냥...심지어 같은 신을 두고 서로 살육. 이거야말로 이해 불가. 그러니 종교의 자유 즉 평화 즉 신이 바라는 거. 종교의 자유 즉 어떤 신을 믿든 자유가 신이 바라는 거라니 아이러니. 인간의 아이러니. 종교 철학의 이유 중 하나일 거









그 생각, 충분히 이해돼. 역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했거든.
종교가 평화를 말하면서도 전쟁과 박해의 이유가 된 역사가 분명히 있으니까.


예를 들면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건들이 있어.



Crusades


Thirty Years' War


Spanish Inquisition


유럽의 마녀사냥(Witch Hunts)



이런 사건들을 보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묻게 돼.


“신을 믿는 것이 왜 인간 사이의 살육으로 이어졌는가?”


그래서 바로 그 질문 때문에
Philosophy of Religion 이 생겼다고 볼 수 있어.


종교철학의 핵심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야.



신이 선하다면 왜 종교 폭력이 존재하는가


인간이 신을 믿는 방식이 왜 서로 충돌하는가


신앙과 자유는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그래서 근대 이후에 종교의 자유라는 개념이 중요해졌어.
예를 들어 계몽주의 철학자였던 John Locke는


“국가는 사람의 영혼을 강제할 수 없다.”


라고 주장했지.
믿음은 강제가 아니라 자유여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네가 말한 아이러니가 생겨.



신앙은 평화를 말하지만


인간은 그 신앙 때문에 싸운다


그래서 결국 평화를 위해 종교의 자유가 필요해진다



이건 정말 인간 역사 특유의 역설이야.


네 문장을 조금 정리하면 이렇게 들려.


종교는 평화를 말하지만
인간은 종교로 싸웠다.
그래서 평화를 위해 종교의 자유가 필요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생각도 철학적으로 의미 있어.



종교도 철학도 인간만의 권리다.
의무 아니어서 다행.



이 말은 결국 이런 뜻이거든.


믿음도 생각도 강요될 수 없다.


그래서 네 글 제목 **“종교와 철학 사이”**라는 표현이 꽤 적절해 보여.
인간은 그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라는 뜻이니까.








한국이 종교 자유의 대표적 국가라 하더라고. 심지어 불교가 성탄절 축하 메시지. 천주교가 석탄일 축하.ㅎㅎㅎ. 헌데 무당을 무시하는 건 잘못이라고 봐. 어릴 때 기독교 부흥회 보고 너무 놀라서 교회 안 가게 됨. 어느 종교도 처음엔 소수. 전통 종교가 밀리는 건 경전이 없어서. 전파도 계승도 어려워. 누가 산신 경전 만들면 후대서 신격으로 모실 거.ㅎㅎ









그 관찰, 꽤 날카롭다.
한국 종교 환경을 잘 짚은 말이야. �


먼저 네 말처럼 한국은 종교 자유가 강한 나라로 자주 언급돼.
헌법에도 명확히 들어가 있어.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제20조
→ 종교의 자유 보장
→ 국교 없음




그래서 실제로 독특한 풍경이 많지.


예를 들면



Buddhism 단체가 성탄절 축하 메시지


Christianity 단체가 부처님오신날 축하



이런 건 세계적으로도 꽤 드문 모습이야.
한국 종교 문화의 특징 중 하나지.


무속을 무시하는 문제


네 말처럼 무당(무속)을 낮게 보는 시선은 오래 있었어.


Korean shamanism


하지만 학자들은 요즘 이렇게 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형태


국가 종교 이전의 민간 종교


불교·유교·기독교와 공존하며 영향



즉 “미신”으로만 볼 수 없는 문화와 종교의 뿌리라는 거지.


경전 문제


네가 말한 것도 역사적으로 맞는 부분이 있어.


종교가 확산되기 쉬운 조건 중 하나가 경전이야.


예를 들면



Bible


Quran


Tripitaka Koreana



경전이 있으면



교리가 고정되고


전파가 체계화되고


권위가 안정돼.



반면 무속 같은 전통 종교는



구전


의례 중심


지역별 다양성



이라서 체계화가 어렵지.


그래서 네 말처럼
“경전이 없으면 계승과 전파가 어렵다”는 건 꽤 정확한 관찰이야.


“처음엔 다 소수”


이 말도 역사적으로 맞아.



Jesus Christ


Gautama Buddha


Muhammad



이 종교들도 시작은 전부 아주 작은 집단이었어.


그래서 네 말이 철학적으로 이렇게 들린다.


모든 종교는 처음엔 소수다.
차이는 교리와 조직, 전파 방식에서 생긴다.


그리고 마지막 말도 재미있다.



누가 산신 경전 만들면 후대서 신격으로 모실 거.



역사적으로 실제 그런 경우가 많았거든.
경전을 남긴 사람이 성인·예언자·교조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지.


그래서 네 관찰은 결국 이런 질문으로 이어져.


종교는 신이 만드는가
아니면 인간이 만드는가


이 질문이 바로
Philosophy of Religion
에서 오래 다뤄 온 주제 중 하나야.


지금 네 글 흐름도 사실 그 질문 근처에 와 있어.





사탕과 교회

응답하라 1968 - 종교 편


가매기 삼거리에 적이 나타났다! 교회다.



ㅡ교회ㅡ



앞산 아래쪽 산 끄트머리를 깎아서 터를 닦는다. 목재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서까래를 각기목으로 짜고 지붕으로 스레트로 얹는다. 벽은 빗물이 흐르도록 판자를 아래부터 한 장씩 윗장 아랫부분이 아랫장 윗부분이 겹치게 못질해 붙여 나간다. 판잣집을 다 짓고 나서 건물 정면 위로 뾰족하게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세운다. 문 옆에 세로로 매단 작은 나무 간판을 보니 동성감리교회. 이렇게 가매기 삼거리에 처음 교회가 지어졌다. 그날부터 교회는 나의 적이 되었다.

교회 터는 동네 아이들 전쟁 훈련장으로 가는 길목이다. 터를 지나 작은 협곡에 들어서면 왼쪽에 흙이 드러난 급경사면. 위쪽 소나무 등걸에 밧줄을 걸어 두었다. 줄 잡고 오르고 미끄럼 타고 내려오고. 심심하면 거기서 그러고 논다.

교회 터에 접한 오른쪽 경사면은 찰흙이 나는 곳이다. 편편하게 쪼개지는 돌로 켠켠이 층을 이루었다. 돌 틈 사이로 아주 찰진 진흙. 그걸 긁어모아서 주물떡 주물떡. 가끔 가지고 놀기에 좋다.

교회 터 위쪽은 산동네와 패싸움 벌이는 전쟁터 중 하나다. 교회 터 오른쪽 급경사 위쪽에 집이 예닐곱 채 산동네. 가매기 삼거리 열한 집 아이들 30여 명과 산동네 아이들 10여 명. 아지랑이 피어나는 완연한 봄이 되면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의 이유는 딱히 없다. 굳이 들자면 산동네와 가매기 삼거리 동네의 경계가 정해진 바 없고 봄철에는 놀거리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수는 우리 동네가 많지만 아래라 불리. 접근전은 없고 멀리서 짱돌 던지기. 운 없는 누군가 다치지만 머리에 정통으로 맞아서 피가 철철 흐르지 않는 한 어른들은 웬만해선 끼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교회 터는 뒤쪽 언덕 너머 옹달샘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교회와 그 뒤쪽에 목사 집이 떡하니 길을 막아 샘물을 길어 먹을 수 없다. 옹달샘에 가려면 개울 따라 난 길로 냇물을 거슬러 오르다가 개울 건너 절을 지나 과수원 울타리를 끼고 빙 돌아야 한다. 되돌아오면 시간이 네 배도 더 걸린다. 집에서 샘물 긷는 건 내 일이니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런 요충지를 느닷없이 교회가 점령한 거다. 그러니 적이 산동네에서 교회로 바뀔 수밖에.




ㅡ사탕ㅡ




교회가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 통하는 곳이라 그런가 교회의 약점은 하늘 쪽 즉 지붕에 있다. 교회 앞마당에서 오른쪽으로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면 봉산미에서 내려오는 능선의 끝. 스레트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스레트. 회색에 표면이 꺼끌꺼끌하다. 어른이 양손으로 들고 옮기기 적당하게 문짝만 한 크기로 얇은 공책 반 두께. 연속된 물결 굴곡이 있어 빗물이 잘 흐른다. 각기목 서까래에 스레트를 얹는다. 스레트 전용 못을 박는다. 못은 일반 못과 생김새는 같되 좀 더 가늘고 길다. 동전만 한 원형의 두툼한 비닐이 달려있다. 망치로 스레트에 못을 밖으면 비닐이 못대가리와 스레트 사이에 꽉 끼어서 둘 사이의 틈을 막는다. 마지막으로 다 박은 못 대가리와 비닐 주위를 감싸도록 새카맣고 끈적끈적한 골탄을 두툼하게 바른다. 그럼 빗물이 스며들지 못한다. 스레트의 단점은 누르는 힘에 약해서 발에 체중을 실어 밟으면 깨지지만 지붕이 충격받을 일이 특별히 없으니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지붕 수리하러 지붕에 올라 스레트를 디딜 때는 우지끈 깨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교회 지붕을 내려다보고 선다. 동네 패싸움 때보다 큰 돌을 집어 든다. 지붕 스레트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냅다 던진다.

와장창

스레트가 깨지거나 구멍이 난다. 지붕 아래로 스레트를 받친 각기목 외에 허공이니 비가 오면 빗물이 바로 바닥으로 직행. 강단이든 긴 의자든 바닥이든 적실 터. 지붕 깨지는 소리에 깜짝 놀란 목사가 달려 나온다. 쉽게 잡힐 위치가 아니니 들으라고 크게 외친다.


교회 망해라! 교회 망해라! 교회 망해라!

그러길 여러 번. 교회 입구 큰길에서 얼쩡이는데 목사가 웃으면서 손짓으로 부른다. 때릴까 봐 도망가려니까 손바닥에 여러 개 사탕을 내보이며 받으란다. 표정이 거짓 같지 않다. 주춤주춤 다가가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음에 교회 오면 사탕 또 준단다. 혼내지 않는다. 돌 던지면 안 된다는 말도 없다. 그래서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사탕 먹는 재미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찬송가도 여럿 배웠다. 맨날 짓궂게 놀다가 노래를 합창하니 신이 났다.


찬송가.


나는 진군하는 보병이나 말 타는 기병이나 포 쏘는 포병이나 적 위 나는 공군은 돼도 나는 주님의 군병 나는 주님의 군병 나는 주님의 군병 나는 진군하는 보병이나 말 타는 기병이나 포 쏘는 포병이나 적 위 나는 공군은 안돼도 나는 주님의 군병


또 하나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예수 이름으로 나갈 때 누가 우리 앞에 서리오 예수 이름으로 나갈 때 승리를 얻었네


톱밥 난로. 처음엔 사탕 때문에 교회 갔지만 겨울엔 따뜻해서 열심히 갔다. 교회에는 커다란 톱밥 난로가 있다. 무쇠고 겉은 녹으로 검붉다. 난로 곁에는 톱밥 통. 난로 안에 판자를 태워 불씨를 만든다. 톱밥 통에서 톱밥을 퍼서 잿불 위로 가득 채운다. 오래 타도록 살짝 꾹 눌러준다. 아래부터 톱밥이 서서히 타들어간다. 거진 타서 톱밥이 푹 가라앉으면 위로 톱밥을 얹는다. 언 손을 난로 가까이 쬐면 따스하다. 단점이 있다. 난로 위가 트여 있어서 아래에서 불붙은 톱밥이 이따금 퍽 소리 내며 튄다. 불씨가 난로 밖까지 사방팔방 날린다. 얼른 피해야지 안 그러면 나이롱 잠바에 쌀알, 좁쌀 같은 구멍이 여기저기 뚫린다.


교회는 장방형으로 교실 반만 한 넓이에 단출하다. 입구에서 경첩을 단 나무문을 삐거덕 열고 들어선다. 바닥은 흙. 중앙에 한 명 반 지나는 통로. 그 좌우로 서넛이 앉는 기다란 의자가 열 맞춰서 줄러리. 끝에 세워진 탁자. 거기에 목사님이 성경을 놓고 설교. 오른편에 풍금 하나. 찬송가 부를 때 쓴다.


목사님은 아부지보다 젊었다. 매일 아침 일찍 흙마당을 싸리 빗자루로 쓸었다. 겨울에 못 볼 걸 봤다. 목사님이 코로 크읍하면서 혀 끝으로 누런 코 한 움큼을 모아 뱉으려 한다. 나를 보더니 꿀꺽 삼킨다. 너무 더러웠다.


부흥회.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단다. 아이는 못 들어간다. 큰소리가 집까지 들린다. 교회에 가서 몰래 문틈으로 훔쳐본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목사님이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함치며 뭐라 뭐라 한다. 울고 불고 그러다 찬송가 부르고 난리다. 무섭다. 교회 가면 사탕 주고 찬송가 따라 하면 과자도 받지만 부흥회를 본 이후 교회 가는 게 뜸해졌다. 거기다 목사님이 누런 코를 삼키는 걸 본 후로는 목사님 보면 예수님보다 그게 먼저 떠올랐다. 흥미를 잃었고 교회 가는 걸 그만뒀다.


그렇게 교회에 봄부터 겨울까지 한 해 다녔다. 산신령님을 믿는 엄마 몰래. 사탕 받아먹으려고.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세대 통역



ㅡ스레트


slate. 회색의 지붕용 건축 자재. 스레트가 공장에서 생산되기 전 지붕재는 볏짚이었고 그게 초가집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의 초가지붕을 스레트로 바꾼다. 시공이 쉽다. 값싼 대신에 폐암을 유발하는 일급 발암물질인 석면이라 진작부터 생산 및 사용 엄격히 금지. 빗물처럼 기름 또한 잘 흐르기에 한때 삼겹살 구이판으로 스레트가 유행했고, 지금도 그러는 사람이 간혹 보인다. 건강에 대단히 위험하다.


ㅡ골탄


원유 정제 후 남는 끈적끈적한 액체. 점착성이 강하고 상온에서 굳어 고체가 된다.


ㅡ잠바


jumper. 겨울이나 작업용으로 입는 두툼한 상의 겉옷


수도가 놓이기 전엔 땅에 파이프를 박아 지하수를 펌프로 끌어올려 먹었다. 그전엔 샘물을 길어다 먹었다.




지금은




ㅡ돌이켜 보니


스레트를 몇 번 깼어도 화 한 번 안 내시고 사탕을 주며 악동인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거다.


심한 축농증이었던 거다. 코를 입에 모아 마당에 뱉으려다가 내가 보고 있으니까 그 더러운 걸 꾹 참고 억지로 삼키셨던 거다. 마당이 흙이라 뱉고 덮으면 그만인데 어린 내가 보고 배울까 봐 삼키신 거다.


개척교회 새내기 목사님이었던 거다. 그래서 땅값이 헐한 산자락에 판잣집으로 교회를 짓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셨던 거다.


부흥회는 불구자나 불치병 환자를 낫게 하려고 예수님의 기적을 바랐던 거다. 마지막 희망이라 절했던 거다.


ㅡ가매기 삼거리 동네 크기는 그대로인데 동성교회는 증축을 거듭해 열 배는 커졌다. 콘크리트 구조에 2층 높이, 외부 바닥까지 콘크리트로 깔았다. 교회 전용 버스도 있다. 사탕을 주는 대신에 건물 정면에 LED가 번쩍이며 지나는 사람의 눈길을 끈다.


ㅡ최근 가두에서 동성 감리교회 신자 모집 때 커피 한 잔 얻어먹었다. 개척교회 시절을 간략히 말해주니 목사가 대여섯 바뀌어 그 목사님은 안 계신다고. 나는 주님의 군병, 예수 이름으로 찬송가를 읇조리며 완창 하니 장로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다니는 교회 있냐고 묻는다. 그때 이후로 교회는 가 본 적이 없다니까 깜짝 놀란다. 나는 주님의 군병이란 찬송가는 자기도 처음 듣는다고, 커피 타 준 여학생도 처음이라고 그 찬송가는 지금은 안 배운다고.


장로가 교회 나오라길래 산신령님 덕에 태어났고, 삶의 철학으로 불교를 믿지만 불교의 사후 세계관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찬송가를 50년 기억에 담고 살았으니 주님은 제 마음에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어느 종교든 존중한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혹시 필요하다면 동성 감리교회 교회사의 증인은 되어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성감리교회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이 글을 동성 감리교회 개척 시절 목사님께 바칩니다.











이 글, 아주 좋은 기록문이야. 따뜻하면서도 힘이 있어.
읽으면서 몇 가지가 특히 인상 깊었어. �


1. 어린 시선이 살아 있는 글


가장 좋은 점은 어린아이의 시선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거야.



교회 = 적


길을 막은 요충지


지붕이 약점


돌 던지기



이건 완전히 아이의 세계관이야.
어른의 해석이 아니라 그때의 감각이 살아 있어.


그래서 앞부분은 거의 1960년대 농촌 어린이 생활사처럼 읽혀.


2. 사탕이라는 상징


글 제목 **“사탕과 교회”**가 아주 잘 잡혔어.


이 구조야.



돌 던지던 적


사탕


찬송가


난로


부흥회


교회를 떠남



사탕이 결국 종교와 아이를 연결하는 매개가 된 거지.


이건 꽤 상징적이야.


신학보다 먼저 온 것은 사탕이었다.


그래서 종교가 어떻게 사람에게 들어오는지
아주 인간적으로 보여줘.


3. 후반부의 반전


뒤에서 어른이 된 시선이 나오면서 글이 더 깊어진다.


특히 이 부분.



스레트를 몇 번 깼어도 화 한 번 안 내시고
사탕을 주며 악동인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거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으니까 그 더러운 걸 꾹 참고
억지로 삼키셨던 거다.



이 대목이 아주 좋아.


어릴 때는 몰랐던 행동을
나중에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거든.


이게 바로 시간이 만든 깨우침이야.


4. 종교에 대한 태도


마지막 태도도 아주 균형 잡혀 있어.



찬송가를 50년 기억에 담고 살았으니
주님은 제 마음에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이 문장은 굉장히 좋다.


종교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맹신하는 것도 아니고


삶 속에 남은 흔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야.


그래서 네가 앞에서 쓴 글들과도 연결돼.



종교는 선택


철학은 삶


신앙은 강요될 수 없음



5. 시대 기록으로서의 가치


이 글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1960년대 생활 기록이기도 해.


예를 들면



스레트 지붕


톱밥 난로


샘물 길어오기


동네 패싸움


개척교회



이런 건 지금 세대는 거의 모르는 풍경이야.


그래서 네 마지막 문장이 딱 맞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맞아. 이런 글은 생활사 자료가 되기도 해.


내가 가장 좋았던 문장


이거야.



사탕 받아먹으려고.



짧은데 아주 인간적이야.
어린 시절 종교의 동기를 너무 솔직하게 보여줘.


한 줄 평


이 글은


종교 이야기이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이고
1960년대 한국 생활 기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글이야.


친구 하나 묻고 싶어.
이 “응답하라 1968” 시리즈, 꽤 많이 썼지?


느낌으로 보니 한두 편이 아니라
한 권 책 분량은 될 것 같은데.








종교와 철학 사이 뻔하지만 일고의 가치는 있지? 종교는 말 꺼내면 끝이 없어. 이만합세









응, 일고의 가치는 충분히 있어.


“뻔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주제가 오래된 질문이라 그래.
하지만 네 글은 정리 방식이 간결해서 의미가 있어.


특히 이 부분이 좋아.



종교는 신의 철학
철학은 인간의 철학



이건 복잡한 종교 논쟁을 한 줄로 구조화한 거야.
대개 종교 이야기하면 교리·역사·신 존재 같은 논쟁으로 끝없이 가는데,
너는 출처의 차이로 정리했거든.



종교 → 신의 권위


철학 → 인간의 사유



그래서 뒤의 네 가지 선택도 자연스럽게 따라와.


그리고 마지막 문장도 좋아.



종교도 철학도 인간만의 권리다.
의무 아니어서 다행.



이건 사실 자유의 선언이야.
누군가에게 믿음을 강요하지도 않고,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글의 톤도 좋아.
종교 글이 보통 논쟁으로 가는데,
이 글은 거리 두기로 끝나거든.


한 줄로 보면 이런 글이야.


종교와 철학은 선택이다.


그래서 네 말대로
종교 이야기는 끝이 없는 주제라
이 정도에서 멈추는 것도 좋은 선택이야.


이만합세, 친구. �









매거진의 이전글철학은 깨우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