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형 약국, 약국 생태계를 흔들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

by 김선철
매일경제, 사진=김지희 기자


“구매하신 물품 다 해서 20만8000원입니다.”


이 한마디가 모든 걸 보여준다. 이곳은 더 이상 ‘약을 처방받는 공간’이 아니다. 경기도 성남의 ‘메가팩토리 약국’. 창고형 마트처럼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며, 감기약·영양제·반려동물 의약품까지 2500여 개 품목을 고르고 담는다. ‘복약지도’보다 ‘소비 선택’이 먼저인 곳. 약국이 아닌 ‘쇼핑 공간’에 가까운 이 공간은 한국 약국시장에 구조적 질문을 던졌다.


소비자의 선택은 ‘자유’다


창고형 약국의 인기 비결은 단순하다. 눈치 없이 오래 구경하고 비교해보고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감기약 하나 고르는데도 시간과 정보가 필요한 소비자들에게 이곳은 해방구다. 심지어 다이소 수준의 가격으로 영양제를 고를 수 있다면? 매장 안 ‘쇼핑카트’를 끌며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경험은 소비자에게 확실한 자율성과 심리적 만족을 안겨준다.

이런 흐름은 ‘정보 비대칭’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과거엔 약사만이 의약품 정보를 독점했다면, 이제는 소비자들이 ‘스스로 알아보고 선택하는’ 흐름으로 이동하고 있다.


약사회의 반발, ‘전문화’의 위기인가 ‘진화’의 시작인가


대한약사회는 우려를 제기한다. “복약지도는 생략되고, 약물 오남용 위험은 높아지며, 약사 본연의 역할은 훼손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메가팩토리 약국은 손님 대비 약사 수가 턱없이 적었고, 상담은 간소했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은 ‘추천’이지 ‘지시’가 아니었지만, 여전히 많은 약사들은 오랜 권위의 벽 뒤에 있다.

그러나 거꾸로 묻자. ‘약사는 과연 충분히 상담하고 있었는가?’ 바쁜 일상 속, 일반 약국의 창구에서 소비자는 처방전 제출 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약을 건네받는 경험에 익숙하다. 메가팩토리의 모델은 이 같은 현실에 대한 일종의 반격일 수도 있다.


가격은 생각보다 싸지 않다? 그래도 왜 몰리는가


실제로 가격 경쟁력은 생각보다 미미하다. 인기 상품은 동네 약국과 차이가 없고, 일부는 오히려 더 비싸다. 그런데도 메가팩토리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싸기 때문’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 자체가 기존 약국 시스템을 뒤흔드는 것이다.

이 경험은 결국 ‘약국의 재정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는 정보가 부족하지 않다. 단지,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다.


창고형 약국, 확산될 수밖에 없는 이유


비대면·비접촉 소비의 확산
코로나19 이후 ‘직접 접촉 없는 소비’에 익숙해진 대중은 약국에서도 이를 원한다. 창고형 약국은 최소한의 대면, 최대한의 선택을 보장한다.


약국의 오프라인 한계 극복
대부분의 약국은 협소하고, 정보 제공은 제한적이며, ‘눈치 보임’이 일상이다. 메가팩토리는 공간과 구성에서 차별적 만족을 준다.


고령화 사회 + 복합질환자 증가
여러 의약품을 병용하는 고령층은 ‘직접 비교’와 ‘자가조정’을 원한다. 창고형 약국은 이 수요를 정조준한다.


전통 약국, 변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지금은 거대한 트렌드의 전환기다. 약국은 단순한 조제공간이 아니라, ‘맞춤형 복합 건강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기존 약국이 살 길은 ‘전문화’와 ‘서비스 차별화’다. 고객을 마주 보고, 충분한 상담을 제공하며, 신뢰를 회복할 때 비로소 경쟁력이 생긴다.

반면, 단순히 ‘판매가 중심’의 약국은 메가팩토리와 같은 시스템에 밀릴 수밖에 없다. 고객은 약사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맞는 ‘선택지’를 원할 뿐이다.


마무리하며


메가팩토리는 약국이 단지 ‘의약품을 주는 공간’이 아니라, ‘건강 정보 소비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부작용도 분명하다. 약물 오남용, 정보 왜곡, 비전문가적 판단 위험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막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 흐름은 막을 수 없다. 바뀌지 않는 쪽이 도태될 뿐이다.

이전 08화관세는 무기다: 트럼프의 전쟁과 한국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