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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Oct 23. 2024

[인턴 일지] #24. 현장 일기 (첫 가을)

파견) D+405 2019. 9.16. (월)

 

ㆍ 이번 주말에는 Poya Day가 금요일에 끼어서 모처럼 3일간의 연휴를 가지게 되었다. 원래 계획은 아침 점심 저녁 모두를 제공하고 밤에 알코올까지 주는 All Inclusive 호텔을 예약하려 했으니 늑장 부리다 애초 계획했던 곳은 가지 못하게 되었고 Bentota 지역에 있는 Centara Hotel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목요일 퇴근 후 기차를 타고 콜롬보로 향했다. 이번 2박 3일 동안 책을 한 권 완독 할 생각으로 책을 빌리러 KOICA YP 임수빈 선생님과 이수아 선생님을 잠시 만났다. 같이 커피 마시면서 책도 빌리고 간단한 안부를 전했다. 만난 지 적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니지만 이 두 분도 얼마 안 있으면 이 땅을 떠나는구나 싶었다. 저번에 약속을 하나 했었는데 KOICA YP들은 일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했고 그게 미안했는지 책이랑 음식들을 몇 개 챙겨 준다. 그간 있었던 일을 잠시 공유하고, KOICA 협력 의사로 파견되어 오신 오승윤 선생님과도 잠시 만나 뵈었다. 오랜만에 뵈어서 맥주 한잔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시간이 꽤 늦어지고 하나 보니 그냥 본인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셨다. 뜻밖이었지만 사모님도 나쁘게 생각 안 하셨는지 잘 자고 아침까지 잘 얻어먹고 나왔다.

 

다음날 Centara Hotel로 가서 운동하고,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별로 특이한 일은 없었다. 여태 대학 생활을 하면서 펜션이나 게스트 하우스는 많이 돌아다녀 보았지만, 리조트를 이렇게 자주 간 적은 처음이다. 스리랑카 생활을 하게 된 것도, 좋은 호텔을 많이 알게 된 것도 다 복이다.

밤에는 모두 다 우리 방에 모여 술 한 잔씩 했다. 회포를 풀기도 하고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추석 연휴를 리조트에서 재미있게 보냈고 독특한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ㆍ 요즘 하기 싫은 일이 너무 많다. 싫증이 나면 생각만 할 뿐이다, 그냥 안 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김미경 강사님이 말씀하시길, 성장은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한다고. 하기 싫은 일이라는 것은 곧 꼭 해야 하는 일이고, 그것을 이루어 내야 성장이 된다고 하신다. 예전의 나처럼 슬슬 행동으로 옮기자.

 

 


파견) D+415 2019. 9.26. (목)

 

 <인플루엔자 A / 입원>

  

ㆍ 지난 금요일, 업무 중 갑자기 KOICA YP 임수빈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 주 토요일에 KOICA 행사가 있단다. 주말에 할 일없으면 놀러 오라고 하셨다. 토요일은 딱히 일정도 없었고 행사 내용이 퀴즈 맞히기, 에코백 만들기 등 캐주얼한 내용이기에 소장님 가족 내외분과 갈 생각을 했다. 글로벌 청년 새마을 지도자 2기 단원들은 개인 일정이 있어 불참하고, 동규랑 같이 콜롬보로 향했다. 급하게 결정된 콜롬보행이기에 사모님께 양해 말씀을 드리고 늦은 시간 소장님 댁에 도착했다. 사모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동규를 위해 사모님은 떡볶이를 준비해 주셨고, 늦은 밤 콜롬보에 닿은 우리는 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다.

그날따라 기침이 왠지 크게 나더라. 오랜만에 콜롬보에 와서 먼지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원래는 그다음 날 일본 회사에 다니고 계신다는 '김성훈' 선생님과 맥주 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만남이 성사되어 저녁을 먹고 소장님 댁에서 맥주도 한잔했다.

 

ㆍ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사모님이 차려주신 떡국을 먹고 차를 탄 뒤 신규 새마을 인턴 단원들도 만나 행사 장소인 'Good Market'으로 향했다. 아침 9시부터 시작이라기에 9시 30분 정도에 도착했는데 아직 한참 준비 중이었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 시장을 잠시 둘러보았는데, 아기자기한 물건이 많았다. 음료도 사 먹고 빵도 사 먹고 놀다가 KOICA 행사도 준비되어 참석했다. 연꽃 인형도 만들고 퀴즈도 풀고 에코백도 만들고. 하루 아이들과 놀기 좋은 공간이었다. 상품도 가득 받고. Good Market 앞에 있는 KFC에서 콜라를 마시며 쉬었다. 그날따라 왠지 아이들이 날 잘 따라 주었다. 

 

점심으로 Dolce Italia로 가서 파스타 / 피자를 사 먹으니 피로가 몰려왔다. 전남 잠을 잘못 자서 그런가 Colombo City Center로 가서 소장님을 만나 잠시 휴식한 후 사무실로 가서 쉬었다. 무언가 몽롱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약한 몸살 기운이 있었는데, 저녁밥을 사 먹으니 또 괜찮았다.

소장님께 감기약을 받아먹고 또 잤다.

 

다음날 일어나도 상태가 그렇게 호전되지는 않았다. 조금 나은 듯해도 몸에 힘도 없고 축 처지고. 겨우 동규가 끓여 준 죽을 먹고 쉬었다. 소장님이 사주신 닭을 먹고 쉬고. 자고 일어나면 잠시 나은 듯했지만, 증상은 그대로였다. 열나고 머리 아프고, 콧물이 나서 숨도 쉬기 힘들고. 결국, 마을 복귀는 무리겠다 싶어 하루 더 쉬기로 했다.

 

ㆍ 다음날 일어나도 상태는 역시 호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증세가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했다. 뎅기열일 수도 있으니 피검사를 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위라지 직원의 의견에 Lanka Hospital로 향했다. 가는 길엔 증상이 더 심해졌다. 피검사, 의사 선생님의 진찰을 받고 응급약을 처방받은 후 사무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머리부터 상체까지 근육통이 일더니 멈출 생각을 않는다. 억지로 죽을 먹고 억지로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약을 먹는데 목 안으로 삼켜지질 않아 두세 개를 그냥 바닥에 뱉어버렸다. 그걸 본 인디카 직원은 다시 친절하게 새 약을 꺼내 내 입으로 정성스레 넣어주었다. 정말 아프고 괴로웠다.

살면서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너무 힘들었다. 겨우 잡고 있는 정신줄을 놓으면 정말 기절할 것 같았다. 

 

ㆍ 어느샌가 잠에 빠져들었는데 깨어나니 몸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아까는 숨을 헐떡이며 이야기를 했는데, 목은 갔지만 이야기를 술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회복되었다. 밥 먹고 쉬다가 검사 결과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별 증세가 없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내원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결과. 인플루엔자 A란다. 사실 폐렴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훨씬 위험한 병이었다. 그러고선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단다. 당일은 월요일이고 화요일부터 약속에 교육에 할 일이 산더미인데 급작스럽게 입원이라니. 외래 진료는 안 되는 듯했다. 입원해야 약물치료와 처방이 가능하단다. 현 상황을 SOS International에 알리니 입원을 권하신다. 소장님과 상의 후 입원을 하기로 했다.

 

ㆍ 사무실에 들렀다가 병원으로 다시 갔는데, 웬걸 입원할 필요가 또 없단다. 앞으로 의사를 2~3명 더 만나니 입원을 안 해도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도 확실히 입원해서 치료받고 싶고, 스리랑카의 병원도 궁금하고, 무엇보다 혹시 동규에게 병을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겁나서 입원을 결정했다. 수속을 거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고 생각보다 입원 실비도 너무 비쌌다. 하루 30,000루피 병실이 기본인데 그마저도 없어서 60,000루피가 넘는 방에 들어갔다. 소파에, 냉장고에, 독방은 처음이었지만 참 독특한 경험이었다.


ㆍ 방에 들어가니 간호사들이 이것저것 체크했다. 그러다가 내가 인플루엔자 보균자인 것을 알고 황급히 마스크를 쓰고 다시 온다. 방은 꽤 추웠는데 난방 기능이 없었다. 나를 입원시킨 위라지 직원과 동규를 보내고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샤워했다. 저녁은 누들과 닭고기 수프, 파파야 3조각이 나왔는데, 파파야만 입에 맞아서 더 달라고 했다. 무려 60,000루피(약 40만 원)의 병실이었는데, 침대 식탁이 부서져 있었다. 그래서 이불 위에서 그냥 먹었다. 약을 먹고 아까 주문한 파파야를 기다리는데, 한참이 지나도 안 오길래 간호사에게 문의했다. 조금만 기다리라더니 하는 말이 1 포션인 3조각을 더 먹으려면 120루피를 내라고 한다. 파파야 한 통을 사도 60루피 채 안 하는데 어이가 없어서 주문을 취소하고 침대에 누웠다. 갑자기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책상에 무얼 얹는다. 무어냐 물어보니 파파야란다. 아까 취소했다고 했는데 서비스로 줄 테니 괜찮다고 먹으란다. 그래서 먹었다. 맛은 있었다.

 

ㆍ 근 3일간 너무 많이 자서 그런가. 자려고 해도 해도 안 오기에 그냥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차도 가져다주고 해가 뜨니 아침밥도 나왔다. 침대 매트리스가 푹신하지 못해서 간이 매트리스까지 포갰고, 방 안은 너무 추워 이불도 3개나 덮었다. 아침밥은 샌드위치와 시리얼이 나왔는데, 매한가지 맛은 없었다.

 

ㆍ 신체 검진은 수시로 이루어졌다. 검사가 정말 많았다. 그리고 급식은 어땠는지 영양사 선생님이 직접 찾아와서 물어보셨고, 의사 선생님도 상태를 진단하러 가끔 오셨다. 거기에 청소하겠다는 분, 이불을 갈겠다는 분, 급식을 가져다주는 분까지 많은 사람이 내 병실을 들락거렸다. 의사 선생님이 언제 퇴원하겠냐 하기에 점심 먹고 가겠다고 했다. 근데 점심 생각이 별로 없어 주문을 안 했고 위라지, 마두랑가 직원이 나를 데리러 와서 나가려는데 퇴원 수속이 1시간 30분이나 더 걸린단다. 그리고 하루 있었는데 충격적인 병원비 100,000루피[약 700,000원] 이상이 청구되었다. 그나마 현금을 많이 가져와서 다행이었지. 그마저도 시간이 한참 걸려 겨우 퇴원했고, 점심으로 Independence Square의 Tsukiji Uichi로 가서 일식을 먹은 뒤 집으로 향했다.

 

ㆍ 이번에 아프면서 참 많은 사람이 도와주었다. 소장님, 동규, 위라지, 마두랑가, 인디카. 다들 정말 고맙다. 덕분에 빨리 낫고 회복될 수 있었다. 스리랑카에서의 입원. 참 독특한 경험이었다.

 

ㆍ 화요일의 약속은 취소되었고 교육은 금요일로 변경되었다.

 


 

파견) D+427 2019.10. 8. (화)

 

<벌써 일 년>


 ㆍ 마을 업무를 시작한 지 만 일 년이 지났다. 지난 일 년 동안 살며 처음으로 '업무'라는 것을 해 보면서 참 많은 성장을 했다. 먼저, '일'이라는 것의 체계를 배우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업무가 흘러가는 과정, 계획부터 완료까지. 예산을 집행하고 인적 관리를 하고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사람을 만나고, '입찰'이라는 것을 진행해 보고. 10만 원 집행해도 어쩔 줄 몰라하던 나는 어느새 몇백만 원을 쉽게 지출하는 나름의 성과도 많이 거두었다. 하지만 일이 익숙해져서 그런가. 이 업무에 '권태기'가 온 것 같다. 매일 같은 사람들과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고, 늘 그 시간에 퇴근해서는 내 방에서 매일 비슷한 밥을 먹고. 계속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낼 때도, 이따금씩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시간도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무료하다. 아침부터 시작하여 8시간의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집에서는 그저 재미있게 놀고 쉬고 싶다. 하지만 딱히 '밤 문화'라고 하는 것도 없을뿐더러 매일 할 수 있는 것은 독서에, 컴퓨터에 아니면 스마트폰. 운동을 할 수도 있지만, 업무가 끝나면 쉬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해져서 집 밖으로는 잘 안 나가게 된다.

 그래서 그런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시간이 영겁 같다. 언젠가 사라져 버릴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은 알지만 지금의 나는 확실히 많이 나태해졌다. 생활의 중심을 꽉 잡고 있던 고삐가 풀린 듯 무기력함은 계속된다.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쉰다기보다는 새로운 자극을 만나고 싶다. 일상에 힘이 될만한 톡톡 튀는 자극제. 그래, 자극이 필요하다. 별다른 새로움 없이 유의미한 잡무만 계속되니 정신이 쉽게 나약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ㆍ선신호 선생님 말씀으로는 이건 여행으로도 쉽게 해소가 되는 부분이 아니라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단다. 힘들고 무기력해도 버티고 또 버티면 새로운 힘이 될 무언가가 생길 것이라며. 그래, 일단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침대에서 좀 나오자.

 


 

파견) D+439 2019.10.20. (일)

 

ㆍ 저번 주, 이번 주 2주 연속으로 콜롬보로 나오고 있다. 무기력한 가택 생활을 조금이라도 청산하고 어떻게든 약속을 만들어 비어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채우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뻥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닌가 보다. 새마을 인턴 2기 김동호 단원은 결국 5일간의 휴가를 소진했다. 콜롬보에서 맛있는 식사와 커피의 몇 없는 유흥을 즐기고 싶은 마음일까. 크게 만날 사람도 딱히 할 일이 없더라도 무언가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도시로 나온 듯 보인다.

 

ㆍ 저번 주에는 두 개의 이별을 했다. 스리랑카로 귀국하고선 5개월간 꾸준히 만남을 가져왔던 KOICA YP 이수아 인턴이 임기 만료로 스리랑카 땅을 떴다. 잘 가라며 Taj Hotel에서 중식도 한 끼 같이 했다. 그리고 Colombo 테러 때 짐을 마저 못 싸고 귀국했던 '서정민' 봉사 단원도 잠시 만났다. 당시 미처 싸지 못했던 짐을 다시 싸러 들어오셨는데, 짐 정리하는 것을 조금 도와드리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잔뜩 받았다. 식사 한 끼를 같이 하고 다시 귀국. 공교롭게도 둘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

 

ㆍ 그래도 어느 정도 무료한 감정은 꽤 많이 해소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고민을 공유하고 작게나마 일정을 만드는 것. 내게는 조금씩 큰 힘이 돼 가고 있다. 물론 휴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확실히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ㆍ 무언가 항상 집중력이 흩뜨려지는 것이,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지 못해서인 듯한 느낌이 든다. 내 뇌에 휴식 시간을 주지 않은 듯.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핸드폰에 아이패드에, 계속 뇌가 노동해서 그런가. 그래서 당분간은 눈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에, 책을 읽을 때는 책에.

 

ㆍ 한 며칠간 무기력한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해져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 / 밥 / 잠 / 컴퓨터만 반복했다. 나는 잠이 정말 많은 편인데 잠도 올 때마다 잤다. 마음속에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하는 불안감은 있지만, 그저 말초 신경이 반응하는 대로 지내고 있다.

잠은 자도 자도 끝이 없을 줄 알았지만 계속해서 잠만 자니 더 이상 '더 자고 싶다'라는 마음은 점점 없어진다. 피로라는 게 이렇게 풀리는구나 싶다. 앞으로 피곤한 일이 생긴다면 아무 생각 없이 잠만 푹 자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ㆍ 사실 오늘의 일기는 스리랑카 콜롬보의 Kuuraku라는 일식 가게에서 썼다. 내 옆에는 중년의 일본인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말도 섞고 대화도 어느 정도 나누었다. 수준급의 일본어 회화 실력을 들으시고 깜짝 놀라신다. 일본어를 너무 잘한다며 한참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다가 내 음식까지 선뜻 계산해 주셨다. 감사했다. 이런 일들은 일상에 큰 힘이 되는 듯하다.

 

 


파견) D+445 2019.10.26. (토)

  

ㆍ 글로벌 청년 새마을 지도자 3기 단원들이 마을로 파견되었다. 1 / 2기와 달리 3기부터는 임기가 1년이다. 재미있게도 2기 단원들보다 6개월 가까이 일찍 계약이 끝난다. 다음 기수는 아마도 Walpola 마을로 파견될 것이고 새로운 단원들에게 인수인계를 마친다면 스리랑카에서 해야 할 일을 점점 마무리되지 않을까.

 

ㆍ 1 / 2 / 3기 단원 전부 주변 지형 정찰을 다녀왔다. Kurunegala, Pinnawala, Kegalle까지. Kurunegala 산 위에 불상을 처음 보았는데 높은 고도에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ㆍ 오늘까지 3주 연속으로 콜롬보에 왔다. 무료하게 주말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래도 매주 영양도 채울 겸 이렇게 올라와서 맛있는 음식에 맥주 한잔한다. 일상의 낙이 되는 듯하다.

 

ㆍ 우연히 다시 찾게 된 일본 음식점 Kyoto Mirai의 카운터석에 앉았다. 옆의 두 자리는 예약석이었는데 그 옆에 앉았다. 오랜만에 초밥도 먹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통화도 하고 놀고 있는데 옆의 예약 좌석은 저번에 한 번 우연히 뵈었던 일본인 커플이었다. 그렇게 한 번 더 기회가 되어 대화도 하고 조금은 친해졌다. 다음에 한 번 더 뵙자고 하신다. 커플이었는데 여자는 25살이라고 했고 일본 군마현에서 오셨다고 한다. 대사관에서 일하신다는데 내년 4월이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단다. 그렇게도 커플이 되는구나. 남자는 관서 사람으로 여기서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신다. 일본인 커플, 두 분, 나, 주방장 Naga 씨까지 해서 4명 재미있게 수다 떨었다.

 

 

 

파견) D+474 2019.11.21. (목)

  

ㆍ 귀국까지 일주일 남았다. 크게 실감은 나지 않는다. JLPT 시험 등록일을 놓쳐서 어쩌지 고민하다가 결국 한국행을 결심한 것도 벌써 두세 달이 지나고 시험은 벌써 무려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나름 공부한다며 책을 들춰 보았는데 실질적으로 문제를 푼 건 '독해' 부분밖에 없었다. 문법이니 단어니 하는 부분은 시험을 보름 앞둔 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때는 잘 몰랐는데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매일의 저녁 시간이 꽤 길다. 외국어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도 삶의 작은 활력이 되고 있다.

 

ㆍ 원래는 교환학생의 폭을 넓히려 JLPT 시험을 응시하려 했으나 공부하고 알아보다 보니 나에게도 '유학'의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IELTS 성적이 있다면 선택의 폭이 아주 넓어지더라. 그래, 젊고 어린 나이에 다시 새롭게 도전을 할까 생각도 든다.

JLPT 시험이 끝나면 곧 IELTS 시험을 준비할 것이고 시험 결과에 따라 일본 대학 원서도 한 번 넣어 볼까.

 

ㆍ 일에 매너리즘을 느껴 우울함을 느낀 것도 잠시 그래도 작고 사소한 변화로 삶의 활력을 찾아가고 있는 와중에 조합에 일이 하나 터졌다. 올해 8월부터 조합원들이 배지를 외상으로 하나하나 가져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외상 총액이 120만 루피를 넘어 버렸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다음에야 누군가가 나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고 45명의 조합원 중 임원 포항 44명의 조합원이 배지 외상값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사실 내 뒤에서 작은 비리들이 있을 것으로 추측은 했지만 이렇게 모든 사람이 저지르고 있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8월부터는 장부 관리도 잘 안 되어있었다. 내가 부임한 이후부터는 사실상 조합 운영에 모두 손을 놓은 듯 보였다. 앞에서는 잘 굴러가는 척, 잘 돌아가는 척이었지만 뒤에서는 전부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나 자신도 화가 나고,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아무도 내게 아무런 언질을 안 해 주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너무 사람을, 조합을 믿었구나. 조금씩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한다.

 

ㆍ 5개월간 같이 보낸 임수빈 인턴도 오늘 한국으로 떠난다. 정을 붙이고 지내던 KOICA YP들 모두 떠났다. 친구 만들기는 또 새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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