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
총균쇠. 일단 두껍다. 글씨는 깨알 같고, 그림이나 사진은 거의 없다. 두꺼운 책을 읽을 때면 중간중간에 사진이나 그림이 나오면 어쩐지 위안을 얻곤 하는데. 그래도 작가가 독자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린 듯하다. 책의 3분의 1 지점과 3분의 2 지점에 원주민 사진 약 15장을 연속으로 삽입해주었다. 이 페이지를 술술 넘기는 맛이 쏠쏠하다. 15페이지를 힘 안 들이고 읽었다는 안도감이랄까. 어쩐지 사진 속 '뉴기니의 포레족'이 젊었을 때 '클린튼 이스트우드'처럼 잘생겨 보이기까지 한다. 표지는 정말 쳐다보기도 싫은 백과사전처럼 생겼다. 그런데 난 이 책을 읽기로 선택했다. 처음에는 이 책을 선택하고 읽고 싶은 이유가 분명히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책을 3분의 2 가량 읽고 있을 때 즈음 난 그만 그 이유를 잊어버렸다.
총균쇠는 분명 훌륭한 책이다. 퓰리처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퓰리처 상도 받았고, 학계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살아남은 자의 승리의 역사’로 읽힐 수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세계 굴지의 기업들도 필독서로 선정하기도 했다. 우리의 빌 게이츠도 2015년에 추천 도서로 선정했다. 우리나라 책 시장은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스티브 잡스 같은 양반들이 추천한 도서라고 하면 깜빡 죽는다. 나 역시, 그리고 여지없이 그 물결에 휩쓸렸지만. 이런 건 세계적 추세일지도.
과학자들, 특히 ‘진정한' 과학자들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전문 용어로 ‘꼴통 기질’이라고도 하는데, 궁금한 게 있으면 우주 끝까지 좇아가서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끈질긴 근성이 있다는 점이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도 지렁이 똥을 40년이나 관찰해서 그 비밀을 풀어냈다.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물론 연애를 이런 식으로 한다면 정말 피곤하겠지만, 과학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뇌공학자 정재승 교수도 연애는 ‘꽝’이었지만, ‘진정한’ 과학자로서 자질은 충분하다. 소싯적에 그는 섬유질이 많은 똥은 정말 물에 뜨는지 늘 궁금해했다. 어느 날 소개팅녀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널 사랑해, 니 똥이 물에 뜨는지 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차였다. 애석하게도 그녀의 똥이 정말 물에 뜨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과학에 대한 집착. 멋지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난 ‘진정한 과학자’가 되기 위한 소질이 단 1도 없음에 정말이지 절감한다. 내 똥을 수십 년이나 관찰했지만 냄새나고 더럽고, 거의 대부분 가라앉고 가끔 물에 뜬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다. 물에 뜰 땐 왜 뜨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역시 내가 아는 한 '진정한' 과학자이다. 뉴기니에 사는 그의 친구 얄리의 질문에, 대충 얼버무리고 슬쩍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도, 25년이나 매달려 총균쇠를 완성했다. 그는 1만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떤 원시인이 씹다 버린 콩이 인류사에 미친 위대한 업적(어쩌면 위대한 재앙)에 대한 비밀을 풀어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콩은 거의 어벤저스의 인피니티 스톤보다 더 강력한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95%를 몰살시키는 계기가 되므로.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얄리의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제레드는 여러 분야의 학문을 통합해야 하고 그 작업은 다수가 아닌 오직 1인이 해야 한다고 하면서 본인이 적임자라는 깔때기로 서문을 연다. 우리는 제레드가 작문, 의학, 생태학, 언어학, 역사학, 생리학, 분자 생리학, 진화생물학, 생태 지리학 등을 두루 섭렵했다는 사실을 본인 입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런 그이기에 이렇게 통찰력 있는 역사서가 나온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진화생물학과 생태 지리학 등은 인류 문명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또한 언어학을 전공한 덕분에 좀 더 심도 깊은 민족의 이동사도 알 수 있게 된다. (언어학) 덕분에 책의 분량이 100페이지 이상 더 늘기도 했지만.
제레드의 한 가지 더 훌륭한 점은 바로 좋은 질문을 한다는 사실이다. ‘왜 대륙간의 격차가 벌어지게 됐는지?’, ‘왜 백인이 무기, 균, 기술 등을 먼저 갖게 됐는지?’, ‘왜 아프리카, 뉴기니, 아메리카에서는 작물화나 가축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는지?’, ‘가젤은 왜 가축화가 안됐는지?’ 등과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그의 끊임없는 질문은 독자의 궁금증과 맞물리면서 책의 다음 장을 넘겨보게 하고 싶게 만든다. 그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 저변에는 백인이 흑인보다 유전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종 차별의 논리를 깨부수려는 바른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퓰리처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퓰리처 상’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사실 난 인종 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백인이 흑인보다 우수한 것은 유전자가 아닌 환경 때문이라고 확고히 믿는 편이다. 하지만 백인과 흑인을 놓고 좀 더 선호하는 쪽을 택하라고 하면 아마도 난 백인을 선택할 것이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 역시 표면적으로는 백인이 유전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인종 차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티란티노 감독의 영화 ‘장고’에서 디카프리오가 해골을 가지고 흑인과 백인의 차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장면, 그리고 최근 조던 필 감독의 영화를 보며 완전히 지울 수 없는 인종차별 문제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류의 잘못된 과오를 바로 잡고 진실로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더디고 힘든 일인지.
총균쇠는 대륙간 민족의 차이를 오늘날의 현상적 결과가 아닌 역사적 사실 속에서 밝혀내기 위해 1만 3천 년의 인류사를 다룬다. 총균쇠는 역사서이지만 제러드의 말처럼 ‘지겨운 사실들의 나열’은 결코 아니다. 생각보다 재밌다. 정말 술술 넘어간다. 중간중간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많고,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도 많다. 놀이동산만큼은 아니더라도 지적 즐거움을 마음껏 향유하게 해 준다.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의 작은 군대 168명이 잉카제국의 8만 군대를 물리치고 알타우알파를 사로잡게 되는 이야기는 정말 영화를 보듯 절정에 이르러 매우 흥분하게 만든다(물론 이 장면은 너무나 가슴 아프고 슬프고 잔인하고 분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흥미진진함은 그 부분에서 절정을 이루고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이 책을 깎아내리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내 수준과 역량의 한계라는 점을 미리 밝히면서, 뒤로 갈수록 솔직히 씹던 껌 또 씹고 또 씹는 기분이 든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책을 끝까지 읽는 게 잘하는 짓일까, 이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내가 역사에 좀 더 관심이 깊었더라면 더 많은 즐거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저 그냥 그런 일반 독자로서 겨우 겨우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뿐이었다. 혹시 나와 같은 일반 독자 중에 '글자 읽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거나 '글자 수를 세는 게' 취미가 아니라면 3분의 2 지점에서 이 책을 덮어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난 700페이지를 끝까지 다 읽었다. 그리고 난 책을 덮을 때 뿌듯함과 약간의 우월감을 느꼈다. 뭔가 해낸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순간 난 깨달았다. 나는 '글자 읽는 일'에 희열을 느끼는 인간임을.
리뷰를 쓰겠다고 마음먹고 쓰기 시작한 이 글을 이만큼이나 썼는데 책에 대한 핵심 내용은 단 한 줄도 안 썼다는 데 스스로 놀랍다. 물론 여기까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없겠지만, 혹시, 만의 하나라도 여기까지 읽으신 분 중 이 책의 주제와 요약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다른 리뷰를 검색하시길, 아니면 그냥 직접 책을 읽으시길 바란다. 아니 3분의 2만 읽으시라. 인류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냄으로써 당신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의 삶의 지평은 당신의 작은 방에서 드넓은 운동장으로 확장됨을, 만약 당신이 낙천주의자라면 반나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혼수상태란 과연 무엇인가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갖게 될 것이다. 최소 3번.
물론 당신이 혼수상태에 빠진다고 해도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퓰리처 상도 수상했고 빌 게이츠가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