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의 존재 이유

7살 딸과 엄마의 취미 공유, 레고

by 북장

엄마, 레고로 역할놀이하자!


딸아이의 놀자는 말 중 제일 두려운 말, 역할놀이하자는 말이다.

그것도 레고로.


어른의 세계에서 레고는 설명서대로 조립해서 근사하게 전시해 놓는 장식이다.

그 장식을 보며 유년의 동심을 대리 만족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세계에서 레고는 다른 존재인가 보다.






딸아이에게 레고를 쥐어준 것은 손에 블록을 쥘 수 있는 아깽이 시절부터였다.

커다란 레고, 듀플로를 손에 쥐고 빨아먹던 원시 단계에서 블록을 꽂을 수 있는 유인원이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하지만 설명서대로 하나의 작품을 조립할 수 있기까지는 수많은 영장류의 단계를 거쳐야만 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듀플로를 꽂으라고 알려주는 곳에 맞추며 작품을 완성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듀플로로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괴상한 형태로 탄생시켰다.

네안데르탈인은 작은 클래식 레고를 꽂으며 집을 쌓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설명서를 보고 절차에 따라 만들었지만 온갖 짜증을 다 내었다.


레고 영장류가 진화하는데 근 3년이 걸린 것 같다.




처음으로 레고방에 가던 날, 드디어 딸과 취미 하나를 공유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세상은 핑크빛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레고라는 작품 뒤의 아이와의 세계를.


처음에는 레고를 빌렸지만 점차 사 모으는 것들이 늘어났다.

레고 하나에 10만원이 넘더라도 살 수밖에 없었다.

6살 딸아이는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앉은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앉아 그걸 완성해냈다.

어린아이가 레고 조립을 혼자 해내는 것이 마냥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만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완성된 레고를 절대 치우지 못하게 하는 것.

거실 한편에 늘어뜨려놓고 몇 날 며칠이고 자신의 상상을 역할놀이로 풀어냈다.

외동인 딸아이에게 집에서의 유일한 놀이 상대는 엄마.


그렇게 레고 작품들은 역할놀이의 소품으로 방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가 콩나물처럼 쑥쑥 자랄수록 아이의 세계관은 더 넓게 확장되었고 레고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엄마에게 레고는 만들기의 영역인데 딸아이에게는 역할놀이의 영역.

레고, 동상이몽의 취미이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